[시론] 김종철의 농본주의가 그립다

2022. 7. 4.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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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들어오려는 산업폐기물시설, 채석장, 송전탑 등 때문에 수년째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농민들을 만나다보면 "우리들 사정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된다.

정치인·공무원뿐만 아니라 언론인·지식인 가운데서도 현장 농민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떠올리는 분이 있다.

우리 사회가 큰 틀의 방향 전환을 하려면 공동체 운명을 결정하는 의사결정 과정인 '정치'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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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들어오려는 산업폐기물시설, 채석장, 송전탑 등 때문에 수년째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농민들을 만나다보면 “우리들 사정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얘기를 자주 듣게 된다. 정치인·공무원뿐만 아니라 언론인·지식인 가운데서도 현장 농민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떠올리는 분이 있다.

6월25일은 <녹색평론> 발행인이었던 고(故) 김종철 선생 2주기였다. 기후위기가 날로 심각해지고 식량위기도 현실화하는 상황을 보면서 그분의 빈자리가 새삼 크게 느껴진다.

김종철 선생은 생태사상가로 알려졌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농본주의자라 할 수 있다. 생태·환경 같은 단어가 유행을 타고 있지만, 핵심을 ‘농(農)’에 두는 지식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선생은 “지혜롭게만 실행한다면 거의 영구적으로 인간다운 삶의 영위를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생존·생활 방식이 농사”라고 주장했다. 지금의 기후위기를 낳은 것은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와 지하자원을 대량으로 사용하면서 경제성장만 추구한 결과이므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흙과 농사에 바탕을 둔 문명으로 전환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종철 선생의 농본주의는 지금 한국사회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사상이다. 심각한 위기가 눈앞에 닥쳤는데도, 대한민국 정치는 여전히 경제성장주의에 집착하고 있고, 농사·농촌·농민을 홀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도 각자생존·승자독식 사회가 되고 있다. 선생은 공생공락(共生共樂) 사회를 추구했다. 그래서 우애와 환대의 문화를 강조했고 기본소득에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민주주의자이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큰 틀의 방향 전환을 하려면 공동체 운명을 결정하는 의사결정 과정인 ‘정치’가 합리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선거를 중심으로 한 대의제 민주주의에는 비판적이었다.

얼마 전 끝난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봐도 그렇다. 이번 선거에서도 여전히 더 많은 개발과 더 많은 경제성장이 중심에 있었다. 기후위기와 식량위기 시대에 가장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농사·농촌·농민은 거대정당과 후보자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선생이 생각한 민주주의란 민중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다스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자치를 강조했고,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추첨제 민주주의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이 헌법 개정, 기후위기 같은 중요한 의제들을 토론하는 숙의(熟議)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선거를 해야 한다면 민심이 그대로 반영될 수 있는 비례대표제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선생은 정직한 비관주의자였다. 근거 없이 낙관하는 것은 위기의 시대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선생이 2019년에 낸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녹색평론사)> 서문 마지막에 이런 글귀가 있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나무일망정 우리가 인내심을 가지고 물을 길어 붓기를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그 마른 나뭇가지에 푸른 싹이 돋아나는 기적을 보는 행운이 우리에게도 찾아올지 누가 알겠는가.”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를 보면서 ‘도대체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요즘이다. 그러나 그냥 포기하는 것 역시 ‘섣부른 오만’이기에, 선생의 말씀처럼 기적을 바라며 지금 할 수 있는 실천을 묵묵히 해나가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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