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돌봄'에 갇혀 비극적 선택..발달장애 가족에 국가는 없었다

장예지 2022. 7. 4.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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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피고인이 된 부모들
발달장애 가족 살해·미수 판결문 12건 분석
막다른 길에서 무너지는 가족들
"나 죽으면 누가.." 비관이 '잘못된 선택'으로
12건 판결 중 절반이상이 집행유예
법원 "구속보단 장애아이 맡아야"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이 5월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죽음을 강요당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에 대한 추모제’에서 헌화하고 있다. 지하철 삼각지역 안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영정 6개가 놓여있다. 신소영 기자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안에는 얼굴이 없는 6개의 영정이 놓인 분향소가 있다. 올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거나, 부모에 의해 세상을 떠난 발달·중증장애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다. 발달장애인 가족들은 돌봄 부담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지금의 복지체계가 바뀌지 않으면 비극을 막을 수 없다고 외친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계속되는 비극 속에서 자신들이 ‘객체’가 되고 있다며 “장애인 당사자의 삶의 결정권”을 주목해달라고 한다. <한겨레>는 왜 이러한 일이 끊이지 않는지, 반복되는 비극을 멈추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두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발달장애인 살해·미수 12건의 판결문을 분석하고, 20~30대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빠와 아이는 ‘그날’에 대해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발달장애를 가진 9살 아들과 삶의 마지막 선택을 하려고 했던 아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빠를 영문도 모르는 채 바라보던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1심 재판장은 ‘그날’에 대해 “피고인이 자살을 결심함에 있어서 피해자(아들)에게는 그 어떤 책임도 없다. 피해자는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며 아빠의 행동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했다. 다만 둘을 지켜본 가족은 ‘고립감’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냈다. 모든 수사와 재판이 끝나고 한숨 돌린 ‘피고인 아빠’의 여동생은 지난달 13일 <한겨레>와 만나 발달장애 자녀가 있는 가족의 고단함과 막막함을 털어놨다.

세 자녀를 둔 아빠는 건강 문제로 일을 그만둔 뒤 주식 투자를 하다가 큰 빚을 떠안게 되면서 막다른 길로 몰렸다. 실직 상태였던 그는 거액의 채무를 갚지 못했고 극단적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평소 자신이 도맡아 돌보던 막내아들이 눈에 밟혔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와 일상을 꾸려나가는 게 막막하고 버거울 때가 많았는데, 남은 가족이 아이를 잘 보듬을지 의구심이 들었다고 한다. 결국 잘못된 결정을 했다. 지난 1월 아들을 데리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다른 가족에게 발견돼 목숨을 잃지 않았다. 아빠는 경찰에 자신의 범행을 모두 인정했다. “피고인은 자신이 사망할 경우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피해자(아들)를 제대로 부양해 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아빠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 판결문에 담긴 범행 동기다.

가끔 대신 아이를 돌봐온 여동생은 조심스레 말했다. “예전엔 부모가 아이와 같이 죽는다는 걸 절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오빠와 아이가 겪어온 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걸 남은 가족들한테 주고 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끔찍한 일이 일어났지만, 지금도 아이가 오롯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아빠뿐이다. “아빠가 구속됐을 때 아이는 그 좋아하던 딸기를 사줘도 먹지 않고 시무룩했어요. 한달 만에 아빠 얼굴을 보니 이전으로 돌아가더라고요.” 사건 당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는 여전히 아빠를 따른다. 매일 아침 특수학교를 오가는 일상이 아무렇지 않게 다시 시작됐다.

‘그날’ 이후 아빠가 수사와 재판을 받고 일상으로 복귀한 6개월 사이 비슷한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3월2일 경기도 수원에서 40대 여성이 지적장애인 7살 아들을 숨지게 했다. 같은 날 경기도 시흥에서는 홀로 돌보던 발달장애인 20대 딸을 살해하고, 자신은 극단적 선택에 실패한 50대 여성이 붙잡혔다. 5월23일 인천 연수구에 사는 60대 엄마도 30년 넘게 병간호한 발달장애인 딸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 실패했다. 같은 날 서울 성동구에서는 40대 엄마가 발달장애 치료를 받는 6살 아들을 안고 자택에서 뛰어내렸다. 지난 5월26일 용산 대통령실 근처인 서울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에 마련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엔 이들의 영정이 한달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겨레>는 앞서 장애인 가정에서 벌어졌던 비슷한 사건의 법원 판결문을 찾아 이러한 비극이 왜 발생하고, 어떻게 반복되는지 분석했다. 장애인 가정의 사정을 들여다볼수록 같은 질문은 반복된다. 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위기가 닥쳐오자 무너진 양육자들

<한겨레>는 법원 판결문 방문 열람을 활용해 장애인·가족·살인 등의 열쇳말로 2009~22년 발달장애를 가진 가족을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 한 12건의 사건 판결문을 찾았다. 아버지 5건, 어머니 6건, 형제는 1건이었다. ‘피해자’인 발달장애 가족의 나이는 0~9살 3건, 10대 2건, 20대 3건, 30대 1건, 40대 3건이었다.

피고인이 된 아버지, 어머니, 형제는 대부분 장애인 가족 돌봄을 전담하던 이들이었다. 길게는 수십년씩 장애인 가족을 돌봐온 이들은 앞선 사례처럼 병을 얻거나 실직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등 위기가 다가오자 속절없이 무너졌다. 범행 동기(복수 분류)는 본인 또는 다른 가족의 건강 악화(5건), 경제적 부담(3건), 우울증(3건), 비관·절망(2건), 양육 부담(1건)으로 나타났다.

삶의 위기를 맞은 이들은 자신이 사라지면 발달장애를 가진 자식이나 형제가 혼자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며 비관했다. 2018년 대전에서 뇌병변 장애 소두증이 있는 아들(당시 29살)을 키우던 아버지는 자신이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아 2차 항암치료와 병원 입원을 앞둔 상황에서 아들을 죽인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이듬해 2심에서 징역 4년형이 확정된 뒤 숨졌다. 2015년 지적장애 1급인 아들(당시 41살)과 집에서 생활하던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했다. 고혈압과 관절염, 척추디스크 같은 지병이 있는 자신이 나이가 들어 곧 사망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도 죽으려 했으나 아내에게 발견됐다. 자폐성 장애인인 자신과 동생을 돌보는 어머니가 괴로워한다는 사실에 낙담해 동생을 살해한 형도 있었다. 2017년 대전에선 발달장애 동생이 죽으면 어머니가 편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생을 죽이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뒤 재판에 넘겨진 사례가 있었다.

“우리를 받아줄 곳이 더 이상 없어요”

현재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를 지키는 이들은 정부에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 확립’을 요구한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지원체계 부재가 이들을 막다른 길로 몰고 간다는 사실은 판결문 곳곳에 드러난다.

2018년 중증 자폐성 발달장애인인 아들(당시 41살)을 살해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 아들만 사망한 어머니 사례가 그렇다. 3살 때 받은 자폐 판정으로 기초적인 언어소통만 가능했던 아들은 특수학교를 다니던 고등학생 시절 폭력 성향이 심해져 결국 자퇴했다. 이후 20살 때 증세가 악화돼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난폭 성향으로 퇴원을 권유받거나 입원 연장을 거부당하는 일이 잦았다. 국내에 자폐성 장애인을 위한 전문시설이나 병원은 거의 없다 보니, 20년 동안 전전한 병원만 10여곳이었다. 2018년 새로 찾은 병원에서도 소란을 피워 손을 결박당하거나 벽을 때리며 물건을 던졌다. 진정제를 맞은 뒤 겨우 잠이 든 아들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더 이상 아들을 받아줄 정신병원이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 기력이 쇠하는 자신이 더는 아들을 간호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휩싸여 비극적 결말을 택했다.

발달장애 자녀를 온종일 돌보게 되는 상황에 부닥치자 ‘살해 뒤 극단 선택’을 결심한 부모도 있었다. 2020년 부산에서 중증 지적장애·시각장애 딸(당시 46살)을 살해한 어머니는 딸이 특수학교에서 초·중·고를 마치게 하는 등 치료와 돌봄에 오랜 시간 전념해왔다. 딸은 20대 들어 회사에 취직했지만 잦은 돌발 행동과 무단이탈 등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는 그런 딸을 데리고 직업 재활원을 다니기도 했고, 딸이 취업한 회사에서 함께 일하기도 했다. 2020년 코로나19 영향으로 딸이 다니던 회사 경영 사정이 나빠졌다. 일을 나가지 못하는 딸을 24시간 돌봐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딸을 돌보며 우울증을 겪고, 수시로 가족에게 “사는 것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던 어머니는 결국 딸을 살해했다. 자신은 극단적 선택을 했지만 실패했다.

6월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1번 출구에 마련된 발달·중증 장애인 추모 분향소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주최로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신소영 기자

‘그날’ 이전으로 다시 돌아간 아빠

12건의 발달장애 가족 비극사 절반 이상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살인미수의 경우 4건 중 3건, 살인의 경우 7건 중 4건이 집행유예였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해야 할 사회적 지원체계 부재와 ‘가해자’들의 돌봄 부담을 법원이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그날’에 대한 법원 선고 뒤 그는 다시 9살 아들의 아빠가 됐다. 지난 3월 법원은 아빠에게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형을 유예하며 아들이 아버지 보호 없이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지원체계가 허약하다는 것을 감형사유로 삼았지만, 모든 돌봄 책임은 다시 아빠에게로 돌아갔다. 재판부는 “장애가 있는 아들의 지속적인 보호와 양육에는 피고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실형을 선고해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보다는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대신 보호관찰을 통해 아들을 올바르게 양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판사의 바람처럼 아빠는 아들을 계속해 돌볼 수 있을까. 여동생은 오빠 가족이 앞으로 또 다른 고립에 처하진 않을지 걱정이 크다. 아직 말을 잘하지 못하는 아이가 학교 등 공동체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쉽게 답을 찾지 못한다. “오빠는 이 아이가 더 나아져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보살펴야 하는 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는 정부 지원도 받고 학교에도 다니지만 성인이 된 뒤 사회 속에서 잘 살 수 있을까요? 장애 가족이 더 이상 갇혀 있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가족에게만 무거운 짐을 지우는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아빠는 ‘그날’ 이전을 다시 살아가게 됐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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