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두 개의 미국

선우정 논설위원 2022. 7. 4. 03: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자주 나라를 뒤집어 놓았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권위가 강하지만 문제적인 법원으로 꼽힌다. 유명한 흑역사가 남북전쟁 직전 ‘드레드 스콧 대 샌더퍼드’ 판결이다. 흑인을 노새와 말과 같은 사유재산으로 규정하고 노예해방 조치를 위헌 판결했다. 노예제에 대한 반세기 이상의 정치적 타협을 무너뜨리고 미국 사회의 갈등에 불을 질렀다.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된 판결이다.

▶이 판결이 요즘 논의되는 것은 연방대법원이 또다시 나라를 뒤집었기 때문이다. 낙태의 헌법적 권리를 부정한 데 이어 정부의 온실가스 규제와 총기 휴대 규제에 제동을 걸었다. 1970년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반세기 동안 여성 낙태권에 공감대가 이뤄졌다는 인식이 미국 일부에 있었다. 이 때문에 낙태 판결을 둘러싼 파문이 특히 크다고 한다. 역사를 거꾸로 돌렸다는 것이다. 낙태 반대론 쪽에선 태아의 생명권을 부정한 52년 전 판결이야말로 노예의 인격을 부정한 165년 전 판결처럼 미국 역사를 거꾸로 돌린 과오라고 말한다. 이래서 연방대법원 판결이 다시 미국을 두 쪽 냈다는 얘기가 나온다.

▶판결 직후 미국 주 정부의 절반이 서둘러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반면 절반은 반대로 낙태의 권리를 강화하고 있다. 남동부와 중부는 판결을 옹호하고 북동부와 서부 해안은 판결에 반발한다고 한다. 낙태를 금지한 지역에 가까운 주들이 낙태를 원하는 여성의 ‘피난처’를 자처하는 것도 옛날과 비슷하다. 남북전쟁 직전 노예제에 반대한 미 북부 주들은 노예의 피난처를 자처했고 이 때문에 노동력을 북부에 잃은 남부 주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뉴욕타임스는 판결 후 미국의 이런 현상을 두고 ‘미 합중국(the United States)’이 아닌 ‘미 분열국(the Disunited States)’이라고 했다. “미국이 두 개의 나라로 갈라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이 두 쪽 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민자에 의해 일자리를 잃은 백인 노동자의 ‘앵그리 화이트’ 현상이 백만장자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인종 갈등, 빈부 갈등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해묵은 보혁(保革) 갈등까지 격렬한 양상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뉴욕 맨해튼에 한때 18개 언어가 난무했다고 한다. 국가 형성 과정을 보면 언제든 분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라가 미국이다. 하지만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분열 위기를 반복해 겪으면서도 결국은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단합해 세계 최강이 됐다. 그만큼 축적된 통합 노하우가 많은 나라다. 지역 갈등, 세대 갈등, 젠더 갈등,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팬덤 정치를 생각하면 사실 한국 입장에서 미국 걱정은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