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문화 관점에서 본 보수동책방골목

조봉권 기자 2022. 7. 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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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책방골목 번영회, 토론회 열고 상생 길 모색
상황 어려워지고 있지만 문화 관점 접근 계속돼야

지난달 29일 ‘보수동책방골목 사람 중심 도시재생 커뮤니케이션 라운드 테이블’이 보수동책방골목문화관에서 열렸다. 부산 중구 보수동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회장 이민아 낭독서점 시(詩)집 대표)가 주관한 이 토론회는 주제가 ‘보수동책방골목과 책 잇는 마을 네트워크의 가능성’이었다. ‘보수동책방골목’이라는 지명을 수도 없이 듣고 또 말해야 했던 이 자리에서 솔직히 만감이 교차했다. 주최 측의 절실하고 절박한 마음도 느꼈다.

보수동책방골목을 오래 연구한 대전세종연구원 세종연구실 이재민 박사가 기조 발표했다. 한국도시재생학회장인 부산대 우신구(건축학과) 교수, 허양군 대영서점 대표(전 보수동책방골목번영회장), 박인숙 삼진이음 사무국장이 제언자로 나섰고 기자도 제언자로 이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했다. 박인숙 사무국장의 발표는 인상 깊었다. 보수동책방골목의 서점과 사장님들에 주목하는 사진전을 기획하면서 철저히 ‘과정 중심’ 태도를 지킨 사례를 그는 들려줬다. 그런 태도·방식을 통해 이곳 상인과 예술가 사이의 신뢰 관계를 만들었고, 책방골목이 시민과 ‘문화’로 호흡하는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허양군 대표의 의견도 경청할 만했다. 보수동책방골목이 책을 파는 상업 공간임과 동시에 부산 정체성과 매력을 간직한 문화공간임을 이곳 상인들은 잘 알며, 그런 공공성과 문화 가치를 살리기 위해 협력하고 있음을 허 대표는 역설했다.

‘지역문화’ 관점에서 보면, 보수동책방골목은 현재 큰 위기에 처했다.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책방들이 세 들어 있던 여러 건물이 팔리고 헐렸으며 그 자리에 주거 시설을 짓고 있다. 대우서점을 비롯해 역사와 경륜을 자랑하던 책방들이 이미 많이 사라졌다. 50여 곳이던 서점은 현재 30여 곳으로 줄었고 이런 흐름은 더 빠르고 강해질 것으로 많은 사람이 예상한다. 6·25 한국전쟁 때를 기점으로 잡아도 70년 전통을 이어오던 문화자산인 보수동책방골목은 우리 시대에 사라질 수 있다. 더 큰 어려움은 요즘 책이 유통되는 방식·상황 자체에서 온다. 독자가 책을 사는 통로는 온라인으로 완전히 기울다시피 했다고 대다수 전문가가 말한다. 대형 오프라인 서점도 비틀댄다. 온·오프라인을 결합해 독자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접근이 아니면, 작은 책 공간이 살아남는 건 점점 어려워진다는 예측이 천하를 통일한 기세다. 심지어 “거기 가서 책 산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 내 주위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바뀌었다. 편의시설도 모자라 접근이 어렵다. 보수동책방골목 전망은 아주 어둡다. 나도 별 관심 없다”고 ‘쿨하게’ 말하는 문화인도 는다.

그런 차원에서 이날 라운드 테이블에서는 이재민 박사의 기조 발표와 우신구 교수의 제언에 더욱 주목하게 됐다. 이 박사의 기조 발표는 책방골목 안팎 상황을 종합했고, 우 교수는 더 상세히 그간의 전개를 설명하며 대안을 냈기 때문이다. 우 교수는 “2013년께 보수동책방골목 재생과 활성화 연구를 진행했다. 그때 우리 팀은 나름대로 면밀히 검토한 끝에 공공기관(중구 또는 부산시)이 책방골목 내 건물을 몇 곳 매입해 핵심 거점 공간을 만들고 거버넌스 조직을 꾸려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자는 제안을 제출했으나 좌절됐다”고 설명했다. 지나간 이야기를 뒤늦게 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자는 이 대목을 들으며 안타깝고 뼈아팠다. 그때 상황을 나도 조금은 알기 때문이다. 당시 부산 문화계의 다른 전문가들도 ‘아무리 생각해도 딴 방법이 없다. 구나 시가 일부 공간 자체를 매입해 핵심 거점 시설을 꾸려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방식은 낯설고 안전하지 못하다고 여겨졌으며, 담당 행정기관은 망설인 끝에 단념했던 기억이 있다. 이젠, 그런 핵심 거점 시설을 만들 수 있는 공간조차 찾기 어렵게 됐다.

문화예술 행정·정책은 때로 과감해야 한다. 창의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산처럼 문화의 민간 영역이 약한 도시는 부산시 등 예술문화 담당 행정기관이 필요할 때 ‘크레이지(crazy) 모드’가 될 필요가 더 크다. 보수동책방골목 내부에 공공적 바탕의 핵심 거점 공간을 마련하는 대신, 안전하게 바깥쪽에 책방골목문화관을 신축하는 방식을 택한 때를 즈음해 부산의 문화정책은 더 조심스럽고 자잘해졌다. 그러는 사이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서는 공공적 매입을 통한 과감한 문화재생 방식이 퍼져나갔다.


나는 시대와 상황이 바뀌었으니 보수동책방골목은 포기하자는 의견에 반대한다. 거기 부산의 정체성·역사·삶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문화다. 그런 문화자산을 잘 가꾸는 도시가 문화도시다. 지금이라도 더 좋은 방법은 없을지 함께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보수동(寶水洞)은 보배(寶)로운, 보석 같은 물(水)이 흐른다고 보수라는 이름을 얻었다. 현대 도시에서 보물의 핵심 요소에 문화자산이 당당히 들어간다. 책은 문화의 상징이다.

조봉권 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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