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공룡섬
김정수 시인 2022. 7. 4. 03:04
꿈에서 발자국이 나왔습니다
그대로 밟고 올라서자
화를 냈습니다
어째서 자신의 무릎을 함부로 밟는 거냐고
도대체 생각이란 게 있는 건지 물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정강이뼈인 줄 몰랐다고 해명해야 했지요
그는 화를 내고 가버렸습니다
다시 가지 않는 언덕에
흰 철쭉이 피었습니다
윤지양(1992~)
한 강연 자리에서 시인을 처음 만났다. 강연 중 시인은 느닷없이 모자를 벗어 “이게 무엇일까요”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당연히 모자였지만, 시인은 다른 대답을 원하는 듯했다. 모자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보아뱀이란 답이 나왔고, 대부분 침묵했다. 다시 가방에서 향수 3개를 꺼낸 시인은 모자와 함께 향기를 맡아보라 했다. 차례가 왔을 때 들고 있던 연필로 모자를 돌렸다. 모자에 밴 향수를 맞혀보라는 거지만 시인이 다른 대답을 원한다 지레짐작했다.
이 시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무례함과 소통의 부재를 다루고 있다. 양해조차 구하지 않고 “밟고 올라서자” 이유도 모른 채 화부터 낸다. “도대체 생각이란 게 있는” 것이냐는 호통은 상대에 대한 모욕이다. 발자국을 밟았는데 “무릎을 함부로 밟”았다 하고, “그것이 정강이뼈인 줄 몰랐다” 서로 엉뚱한 말을 한다. 해명도 듣지 않은 채 “화를 내고 가버”린다. 이 모든 건 꿈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현실은 더 지독하다. 관계의 단절은 상처에 깊은 발자국을 남긴다.
김정수 시인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경향신문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총장이 총장실서 여교수 수차례 성추행 의혹…경찰 고발
- 김건희 여사 참석한 2시간짜리 행사에 1억원 쓴 복지부
- 피프티피프티 측, 워너뮤직에 200억대 손배소 청구
- 김태흠 “한동훈이 ‘어떻게 당대표 욕하냐’라더라, 내가 확 돌았다”
- ‘파우치’ 발언 KBS 박장범 앵커 “디올백을 왜 명품이라고 불러야 하나”
- [단독] 김건희 ‘황제 관람’ 국악 공연 참석자 섭외, 대통령실이 직접 챙겼다
- 가자지구서 구호품 맞아 숨진 세 살배기···“원조 대신 존엄 원해”
- 한정석 선방위원 사퇴 “극우는 나 하나, 이제 심의에 시비 걸지마라”
- 설악산서 강풍에 쓰러진 나무에 등반객 깔려 3명 사상···강릉 주문진 일부 지역 한때 정전
- 매년 수천건 사건 몰리는데, 검사들은 ‘사퇴 러시’···“조직 와해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