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국민의 '알 권리'와 국가의 설명 책임
국민의 ‘알 권리’는 자유주의 체제의 기본적 인권이다. 정부의 극단적 정보통제가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는 역사적 반성 위에, 그 ‘알 권리’의 가치는 날로 고귀하다. 많은 나라가 국민의 국정참여를 확대하고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려 애쓰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세계는 오늘 ‘열린 사회’의 거대한 흐름 위에 있고, 우리 역시 ‘정보공개법’을 시행한 지 벌써 4반세기다.
민주주의 모범국가 미국엔 ‘선샤인 액트’라는 법이 있다. 쓰기 편하게 ‘햇볕법’, 실상 공개행정을 촉진하는 법이다. 공식 명칭 ‘Government in the Sunshine Act’, ‘햇볕 속의 정부 법’ 정도로 보면 그 뜻은 명확하다. ‘선샤인’은커녕 ‘글루미’(gloomy·음울한)에 가까운 우리 사정으로 보면, 그쪽의 행정에 아직 더 공개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짐작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투명한 공개행정이라 할지라도 더 공개돼야 할 영역은 남기 마련이다. 이게 이 법의 본뜻이다. 이 법은 공공기관의 회의도 미리 공표된 시간과 장소에서 열며, 공공의 참석을 원칙으로 하도록 규정한다. ‘모든 권력의 원천은 국민’이며, 정부는 그 권력 행사의 투명성·개방성과 함께 국민에의 ‘설명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 명확한 전제를 강조하는 취지다.
우리가 추구할 민주주의는 개방의 요구를 재촉한다. 민주주의는 생리적으로 비밀주의와는 더불어 숨 쉴 수 없다. 현대 정보사회에서 그 비밀주의로는 눈앞의 내일을 예측할 수 없고, 그 예측 불가능성은 국민의 불안, 사회의 혼란을 부추긴다. 정책결정 과정도 비밀 속에 있고 행정의 잘못과 부정부패도 국민의 눈앞에 캄캄한 사회, 생각해 보라 얼마나 음울하고 불안할 것인가.
최근 ‘해수부 공무원 서해 피살사건’ 논란은 그 ‘알 권리’의 실상을 확인할 단적인 사례다. ‘진실 조작성 월북 공작’인가, ‘전 정권 지우기식 음모’인가? 우리 국민이 북한 해역에서 표류하다 북한군의 총격으로 살해·소각당했다. 이건 ‘사실’이다. 정부는 그의 ‘생명 보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그 표류를 왜 ‘월북’으로 규정했는가? 이건 밝혀야 할 ‘진실’이다. 국가의 존립 이유며 지도자의 기본책무를 따질 중대 사건이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 음울한 비밀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진실’을 밝힐 ‘정보’다. 그 정부는 관련 정보의 공개를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물론 때로는 정부가 정보공개를 거부할 순 있다. 단, 거부 요건은 까다롭다. ‘중대한 국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 등이다. 그 추상적 표현의 해석도 정부가 독점할 수 없다. 알 권리의 침해 우려 때문이다. 그렇다면 졸지에 ‘월북자 가족’으로 전락한 유족의 원(願)·한(恨)을 외면하며 정보 공개를 거부한 사유, 법원의 자료공개 결정을 거스르며 대통령기록물로 묶은 사유는 뭔가?
정부가 국민이 궁금해하는 정보를, 탐탁지 않은 사유로 공개하지 않은 예는 적지 않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 그 한때의 훈령을 들어 ‘국민의 알 권리’, 그 묵중한 헌법적 가치를 묵살했다. 대통령 부인의 옷값 공개 요구에, ‘공익 보호’를 들어 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법원의 ‘공개’ 판결을 외면했다. 국가가 국민의 의문을 풀어주진 못할망정, 가진 정보를 감추려 국민과 싸우는 모양새는 또 뭔가?
이번 논란은 이념이나 정략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그 누가 진실을 독점할 수도 없다. 국가의 존재이유, 국민의 인권보호, 국민의 알 권리를 되물어야 하는 논란 아닌가. 굳이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이제 어떤 정부든 그간의 음습한 비밀주의를 딛고 밝은 햇볕 아래 국가의 설명 책임에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러지 못할 까닭도 없지 않나.
20세기의 대표적 지성 칼 포퍼는 ‘열린사회-닫힌사회’를 예로 들어, 전체주의 체제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자유주의 체제를 적극 옹호했다(‘열린 사회와 그 적들’). 그는 직설했다. 우리가 인간으로 남고자 한다면, 오직 하나의 길, 열린사회로의 길이 있을 뿐이라고. 우리, 권력이 진실을 독점하는 전체주의로 갈 것인가, 국가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자유주의로 갈 것인가? 지금 우리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할 것인가?
차용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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