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 위 聖人 아닌, 인간 김대건 그렸어요”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동상 위의 김대건 성인을 세상 속으로 끌어내려 스물다섯 살 청년으로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전기 작가 이충렬(68)씨가 김대건(1821~1846) 성인의 삶을 정리한 전기 ‘김대건-조선의 첫 사제’(김영사)를 펴냈다. 이씨는 그동안 ‘간송 전형필’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 ‘아, 김수환 추기경’ ‘신부 이태석’ 등의 전기를 발표한 작가. 그가 김대건 신부 전기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인물’이 김대건이라는 생각 때문. 천주교 신자들조차 ‘솔뫼 출생, 마카오 유학, 새남터 순교’ 정도만 알고 있더라는 것. 이 작가는 천주교 교회사 연구 기관인 한국교회사연구소의 협업과 감수를 거쳐 이번에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인가한 ‘정본(定本) 전기’를 냈다.
책은 시간 순으로 흐른다. 눈에 띄는 것은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신학생 선발 이전 김대건의 삶과 마카오 신학교 과정을 복원한 점. 이 작가는 김대건의 부친과 순교자들의 신문 기록에 한마디씩 남은 증언을 종횡으로 연결해 김대건 가족이 솔뫼에서 서울 청파를 거쳐 경기 용인 교우촌으로 옮겨간 사실을 복원했다. 하루 3시간씩 라틴어 수업이 있던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의 교과과정, 라틴어-프랑스어-한자 사전을 가지고 라틴어를 익히는 과정 등은 당시 신부들과 신학생들의 편지 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했다. 조선 입국 전 페레올 주교가 김대건에게 삭발례부터 수문품, 강경품, 구마품, 시종품, 차부제품, 부제품을 거쳐 신품(사제품)을 주는 각 단계도 촘촘히 기록했다. ‘군난(窘難·박해)’ ‘천주의 안배(按排·보살핌)’ ‘因父 及子 及聖神之名 亞孟(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등 당시 신자들이 쓰던 용어도 살렸다. 등장인물의 나이는 만 나이, 날짜는 양력으로 환산해 독자가 읽기 쉽게 정리했다. 김대건이 마카오로 간 경로, 페레올 주교를 모시고 황해를 건너온 뱃길, 어영청 감옥에서 새남터로 끌려가던 길 등은 지도로 수록했다.
이 작가는 “책상 옆에 항상 당시 지도와 김대건이 잡혀서 신문받은 해주감영 그림 등을 붙여놓고 ‘이미지 답사’를 무수히 하고 감정이입하면서 집필했다”며 “모든 장면이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지지 않으면 자료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논문의 각주(脚注)를 따라가다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일쑤. 세세한 일을 살리기 위해 모은 자료도 책에는 한두 단어만 반영될 때도 많았다. 그는 “마우스로 위아래 오르내리며 논문을 읽다 보니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배길 정도”라며 웃었다. 올해 초부터 마지막 수개월은 아예 한국교회사연구소에 책상 하나를 얻어 집필했다. 이메일 보내고 받는 시간도 아끼기 위함이었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바로 옆방의 조한건 소장 신부를 비롯한 교회사 전문가들에게 달려가 “이 부분 맞냐?”고 확인 후 반영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점과 점으로 흩어져 있던 김대건의 삶은 선으로 연결되고 마침내 혈색이 도는 초상화로 완성됐다. 감시를 피해 육로와 해로로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는 모험가적 용기, 사제로서 두 달 남짓 신자를 만나 미사를 드리고 성사(聖事)를 베푸는 장면에선 신앙의 간절함이 생생하고, 순교 모습에선 장엄함이 느껴진다. 김대건을 주인공으로 한 19세기 중반 한국 천주교회사로도 손색없다.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순교를 앞둔 상황. 김대건 신부는 신자들에게 이런 편지를 남긴다. “부디 서러워 말고 큰 사랑을 이루어, 한 몸같이 주님을 섬기다가 사후에 한가지로 영원히 천주 대전에 만나 길이 누리기를 천만천만 바란다. 잘 있거라.”
이 작가는 “새남터에서 희광이(망나니)에게 ‘그럼 치시오. 나는 준비가 되었소’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을 정리하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고 말했다.
2020년 겨울 집필을 시작한 이 책은 당초 작년 8월 김대건 성인의 탄생 200주년에 맞춰 출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집필 과정에서 추가할 내용이 계속 나타났고 “늦더라도 제대로 정본 전기를 만들자”며 완벽을 기해 10개월 늦게 나오게 됐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제주 서귀포 해상 어선 전복돼 1명 실종·3명 구조... 해경, 실종자 수색
- “계기판 어디에? 핸들 작아”... 이혜원, 사이버 트럭 시승해보니
- 의대생 단체 “내년에도 ‘대정부’ 투쟁”…3월 복학 여부 불투명
- “죄를 만들어 선고하나” Vs. “대한민국 만세”... 판결 순간의 서초동
- “명태균, 창원산단 후보지 주변 땅 권유”...민주당 의혹 조사
- 부천도시공사 소속 40대 직원, 작업 중 15m 아래로 추락해 숨져
- 자산가격에도 못미치는 삼성전자 주가, 언제 회복하나
- ‘8억 뜯긴’ 김준수 “당당하다... 잘못한 거 없어” 입장 밝혀
- 현직 강남경찰서 강력계 간부, 음주운전하다 교통사고
- 신진서, 커제에 반집승… 삼성화재배 8강 중 7명이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