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거수기로 전락한 전기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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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전기 요금 인상을 열 번 요청했지만 단 한 번만 승인받았다.”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국민의힘 정책 의원총회에서 정승일 한국전력 사장이 했다고 전해진 말이다. 올해 한전 적자가 3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공기업 사장이 대규모 적자를 정부 탓으로 돌린 것이다. 뼈를 깎는 자성보다 “우리는 할 만큼 했다”는 자세에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전기 요금 결정 구조는 한전 사장이 이런 발언을 ‘당당히’ 할 만큼 맹점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날 한전이 발표한 3분기(7~9월) 전기 요금 kWh(킬로와트시)당 5원 인상이 단적인 예다. 앞서 한전은 지난달 16일 연료비 연동제에 따른 요금 인상과 추가 대책에 관한 협의를 정부에 요구했다. 가스·석유·석탄 등 연료비가 급등하면서 인상 요인은 30원 넘게 발생한 터였다. 하지만 물가에 끼치는 영향을 우려한 기획재정부의 기류에 결정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결국 기한을 일주일 넘긴 27일에야 5원 인상으로 결정 났다.
특히 전기 요금 체계를 심의·의결하는 전기위원회는 ‘5분 대기조’로 기다리다 정부의 결정을 추인하는 ‘거수기’로 전락하며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위원회로 산업부 장관이 최종 결정권을 가진 현실에서 정부의 입김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기위원회를 금융통화위원회처럼 정부에서 독립시켜 위상을 강화하는 일이 제대로 된 전기 요금 결정의 시작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은 주(州) 공익사업위원회(PUC)의 규제가 법률보다 우선한다. 독일·영국·프랑스·일본 등도 별도 기구가 전기 요금을 결정한다. 독일 연방네트워크기구의 결정은 감독 기관인 에너지부도 번복하지 못한다. 물론 전기위원회가 힘을 가졌다고 해서 무작정 요금만 올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도 곤란하지만 지금처럼 유명무실한 기구로 존재하는 것은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선거와 지지율 때문에 ‘전기 요금 인상은 없다’고 고집해 우량 공기업인 한전을 부실하게 만들고 국민에게 큰 부담을 남겼다. 한전은 이제 와서는 “정부가 승인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요금 인상이 거부됐을 당시, 경영진이 직을 걸고 저항했다거나 노조가 반발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 한전의 부실은 정권에 코드를 맞춘 채 책임을 떠넘긴 한전과 주무 부처인 산업부, 물가를 최우선에 놓은 기재부의 합작품이다. 그리고 이 같은 구조를 그대로 두고서 앞으로는 과거보다 나은 결과를 기대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한전의 적자와 대규모 부실 해결은 전기위원회가 독립성을 강화하고, 공정하게 전기 요금을 결정하는 게 그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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