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옥의 시시각각]한전이 대출금리 끌어올린다고?

하현옥 입력 2022. 7. 4. 00:46 수정 2022. 7. 4. 05: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적자 공룡' 한전, 눈덩이 손실에
인플레 압력에도 전기요금 인상
한전채는 시중 자금의 블랙홀로
하현옥 금융팀장

요즘 금융시장에서 의외의 뜨거운 감자는 한국전력이다. 그렇지 않아도 들썩이는 물가를 더 자극하는 데다 시중 자금의 블랙홀로 금리를 뒤흔드는 복병이 됐다. 탈(脫)원전과 오랜 전기요금 동결로 ‘적자 공룡’이 된 한전의 발걸음은 아슬아슬하다.

물가에 비상이 걸리며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근로자의 임금 인상 자제까지 언급할 정도지만, 한전은 지난 1일부터 전기요금을 kWh(킬로와트시)당 5원 인상했다. 연료비 조정단가 조정 폭을 연간 최대(5원)까지 올린 것이다. 지난해 7월 기준 가구 평균 전력 사용량(256kWh)을 감안하면 1280원을 더 내야 한다.

전기와 가스 요금 인상에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26일 “6월 또는 7~8월에 6%대의 물가 상승률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6%대 물가 상승률(전년동월대비)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1월(6.8%) 이후 처음이다. 오는 13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사상 첫 ‘빅스텝(0.5%포인트) 인상’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물가와의 전쟁에 돌입한 한국은행이 당분간 전의를 더 불태울 수 있단 의미다.

금리 상승을 부르는 한전의 나비효과는 이것만이 아니다. '국민주(株)'에서 '국민채(債)'로 타이틀을 바꿔 단 한전이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한전채는 요즘 금융시장에서 가장 ‘핫’한 투자 상품이다. ‘초우량 등급에 고금리’라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며 완판 행진 중이다.

한전채는 정부가 지급을 보증한다. 신용등급은 초우량 등급인 트리플A(AAA)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한전채 3년물 민평금리(민간채권평가회사 평균금리)는 연 4.086%를 기록했다. 1년 전(1.6%)보다 2.5배가량 높다. 금리가 뛴 건 물량이 쏟아진 영향이다. 채권값이 떨어지면 채권금리는 오른다. 한전은 올해 상반기(1~6월)에만 14조2000억원의 채권을 발행했다. 매달 2조원 넘는 채권을 발행한 셈이다.

문제는 한전채 금리가 치솟으며 발생하는 시장 왜곡이다. 채권을 발행해 자본을 조달해야 하는 입장에서 비슷한 등급에 금리를 더 주는 한전채로 자금이 쏠려가면, 금리를 더 높일 수밖에 없다. 한전채의 인기가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를 끌어올린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주담대 고정금리의 지표금리인 은행채 5년물(AAA) 금리가 4%대에 육박한 데는 기준금리 인상뿐 아니라 한전채의 인기도 한몫했다는 풀이다. 한전채 구축효과로 일반 기업 등이 채권 발행 등을 포기하기도 한다.

한국전력은 지난 1일부터 전기요금을 kWh(킬로와트시)당 5원 인상했다. 사진은 지난달 15일 서울 시내 한 주택가에 설치된 전기 계량기의 모습. 연합뉴스


물가를 자극하고 금리도 밀어올리는 한전의 마뜩잖은 행보는 천문학적인 적자 탓이다. 한전은 올해 1분기(1~3월)에만 7조7869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지난해 연간 영업손실(5조8601억원)을 벌써 넘어섰다. 증권사가 추정한 올해 영업손실 규모는 23조1400억원으로, 최대 30조원 적자 전망까지 나온다.

한전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난 건 비싼 값에 전기를 사와서 본전도 안 되는 싼값에 파는 장사를 해와서다. 그동안 전기요금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정승일 한전 사장은 지난달 27일 국민의힘 정책의원총회에서 “지난 정부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열 번 요청했지만 단 한 번만 승인받았다”고 밝혔다.

반면에 전기 생산원가는 급등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한전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 자회사가 원전 비중을 낮추고 비싼 태양광과 풍력, LNG 발전을 늘렸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치솟은 국제 에너지 가격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빚(채권 발행)을 내 이를 메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제 결산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싼 전기 값을 즐긴 대가, 무책임한 정책의 부메랑이 우리에게 센 이자를 붙여 정산을 요구하고 있다. 우량 기업이 부실화하고, 언제나처럼 그 틈바구니에서 생긴 과실(초우량 채권의 고금리)은 소수의 몫이 됐다. 물론 언제나처럼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하현옥 금융팀장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