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354] 동남풍과 주역의 괘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의 지혜와 신통력이 극적으로 발휘되는 대목은 적벽대전의 동남풍이다. 뜬금없이 갑자기 동남풍이 불어와서 조조의 수군을 궤멸시킨다. 호풍환우의 초능력인가? 공명은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서 동남쪽에서 불어올 수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계절적으로 이때쯤 되면 바람의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데이터에 바탕한 예단이었다는 것이다.
데이터의 승리였다. 그 데이터, 단서는 어디에 나온단 말인가? ‘참동계 강의’의 저자 남회근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 괘를 그 단서로 든다. 괘의 첫 번째 대목에 ‘이섭대천(利涉大川)하니 선갑삼일(先甲三日)하며 후갑삼일(後甲三日)이니라’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 달의 달력에 갑(甲)이 들어간 날 3일 전과 3일 후로 동남풍이 분다는 암시가 들어 있다.
적벽대전이 벌어진 계절은 음력 10월이었다. 10월은 절기상으로 ‘입동’이라서 겨울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하지만 ‘소양춘(小陽春)’이기도 하였다. 10월 한 달 동안은 며칠간 몹시 춥다가 사흘쯤은 따뜻해지는 기간이 있다. 소양춘이 되면 바람이 바뀐다. 북서풍이 불다가 이때가 되면 동남풍으로 방향이 바뀐다. 그렇다면 10월 중에서 어느 날부터 이 소양춘이 와서 바람의 방향이 바뀐단 말인가? 시작 날짜가 언제인가가 관건이다. 음력 달력에 보면 매 날짜마다 60갑자로 일진이 표시되어 있다. 갑자, 을축, 병인, 정묘, 무진, 기사 식으로 말이다. 주역의 산풍고 괘에서는 그 기준점을 암시하고 있다. 바로 일진에 갑(甲)이 들어간 날이다. 공명은 이 산풍고 괘를 보고 동남풍의 날짜를 계산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단을 쌓아놓고 바람이 불어오기를 바라는 퍼포먼스를 했다.
주역의 괘에는 ‘선갑삼일 후갑삼일’이라고 나오지만, 그건 그냥 책에 나오는 내용이고 과연 실전에서 그대로 바람이 불 것인지는 본인도 100% 장담은 못 하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확률은 70% 정도 되지 않았을까. 주역의 데이터는 7할 정도를 보증하고 나머지 3할은 운에 달렸다고 봐야 한다. 만약 그 3할이 작동하지 못하면 바람이 불지 않을 것이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조조 군대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공명은 제단을 쌓고 천지신명에게 빌 수밖에 없다. 다행히 바람은 불기 시작하였다. 삼국지 원문에 보면 ‘갑자기(甲子起)’라는 내용이 나온다. 갑자(甲子)일부터 깃발이 나부끼기 시작하였다는 말이다. 주역은 자연과학적 데이터까지 포함한 점서(占書)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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