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률의 이 한 곡의 노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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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부터 세종특별자치시에 근무하면서 관심을 가진 것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신동엽시인이었다.
그것은 신동엽이란 시인의 '금강'이라는 서사시였다.
많은 분들이 신동엽시인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를 좋아하고 그 의미의 소중함을 가슴에 안고 살아왔을 것이다.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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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던 고등학교 시절, 데모(지금 용어로 말하면 ‘운동권’)하는 선배가 쭈굴쭈굴한 학교 가방에서 꺼내며 자랑스럽게 보여준 시집(복제되서 다 닳은) 한 권이 있었다. 그것은 신동엽이란 시인의 ‘금강’이라는 서사시였다. 그 선배의 표현에 의하면 대단한 시집이며 금서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시인과 나는 그 후로도 계속 접점이 형성됐다. 싱어송 라이터를 꿈꾸는 내게 신동엽 시인은 또 한 분의 ‘라보니’였다
세월이 흘러 신동엽시인은 점점 잊혀져 갔지만 충청도(세종시)에 오면서 시인의 고향이 충남 부여라는 생각이 떠올랐으며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란 것을 알았다
그 사실이 시인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라는 시를 노래로 만들었던 40여 년 전의 과거로 나를 소환하였다
신동엽 시인이 음악하는 내게 준 충격은 대단했다
싱어송 라이터의 미래를 꿈꾸던 내게 '가사'의 중요함을 일깨워준 분이 신동엽시인이다. 음악활동 초기에는 멜로디를 만들고 구성하는데 온 힘을 쏟았고 가사는 그저 적당히 만들면 되는 치장물로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습작 초기에 내가 듣기에도 뭔가 한참 부족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노래가 많았다. 나는 그 이유를 나의 음악적 재능이 부족함으로 치부하고 그럴수록 음악 능력을 키우는데 온 시간을 쏟았다
그러다가 신동엽 시인의 시를 읽기 시작하면서 내 생각에 큰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특히 '껍데기는 가라'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라는 시인의 시를 노래로 만들면서 귀중한 가르침을 받았다
시인의 2편의 시는 아주 쉽게 노래로 만들어 졌다. 약간 과장하면 몇 번 읽기만 했는데 노래가 완성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곰곰이 그 이유를 생각했다. 결론은 시어의 정갈함과 명료함 그리고 리듬감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삶의 주장을 하면서 쓸모없는 단어가 하나도 없는 깔끔함 그래서 시인의 언어가 쉽게 해석되는 아름다움 그리고 그 아름다움이 연결되니 자연스럽게 노래가 완성된 느낌이었다.
내가 이전에 노래를 만드는 프로세스에 정확히 반대되는 방향에서 노래가 완성됐다. 이것은 전혀 다른 느낌이었고 내게는 엄청난 혜안을 주었다. 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이 오직 하나라고 알고 있는 것과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은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로 나의 '노래 만들기' 작업은 그 만큼 쉬워졌고 다양해졌다. 멜로디 위주의 창작 작업도 계속 진행했지만 가사 또는 시어를 중심에 놓고 많은 노래를 만들었다
많은 분들이 신동엽시인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를 좋아하고 그 의미의 소중함을 가슴에 안고 살아왔을 것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굳이 여기서 시를 평하고 논하지 않겠다. 단지 음악으로 표현된 나의 해석을 느껴주면 감사하겠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 속 구름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를 돌아보곤 한다. "너는 오늘 하늘을 보았니? 아니, 보려고 노력했니?" 라고….
[김종률 재단법인 세종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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