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영구결번' 박용택 "우승 반지 없지만 팬 사랑 끼고 은퇴한다"
박용택 KBSN 스포츠 해설위원(43)이 뜨거운 눈물과 유쾌한 웃음으로 뒤늦게 현역 생활을 공식 마무리(?)했다.
프로야구 LG 트윈스는 3일 서울 잠실 구장에서 열린 ‘신한은행 SOL’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와의 대결을 박용택 은퇴 경기를 치른 뒤 등 번호 33의 영구결번식을 진행했다.
박 위원은 이날 특별 엔트리 자격으로 1군에 등록돼 3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전(?)했었다. 직접 시구를 한 뒤 좌익수로 이동했다 심판의 ‘플레이볼’ 선언과 동시에 후배 김현수와 교체됐다.
경기가 끝난 뒤 전광판의 양옆으로 ‘33번’과 ‘포에버 미스터 트윈스’가 적힌 대형 통천이 내려왔고, 구장 전체가 암전됐다.
흰색 수트를 입은 박 위원은 현역 때 등장 음악인 가수 김범수의 ‘나타나’에 맞춰 두손을 번쩍 들어 팬들에게 인사하고, 큰절을 올렸다. 패션 감각이 뛰어난 박 위원은 19년간 입었던 유니폼을 떠올리게 하는 줄무늬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등장부터 ‘울보택’, ‘울음택’이란 별명답게 붉어진 눈시울로 벅찬 감정을 드러냈다.
이어 차명석 LG 단장의 영구 결번 선언과 함께 박 위원이 마운드 쪽에 마련된 버튼을 누르자 폭죽이 터졌다. 33이 새겨진 깃발은 잠실 구장에 게양됐고, 뮤지컬 배우 카이(본명 정기열)가 뮤지컬 ‘지킬 앤드 하이드’의 대표곡 ‘지금 이 순간’을 열창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박 위원에 앞서 LG의 영구결번식을 치렀던 김용수와 이병규도 등장해 꽃다발을 전달하며 축하했다. 박용택의 초등학교 때 야구를 권유했던 최재호 강원 강릉고 감독도 운동장을 찾았다.
박 위원과 현역 때 한솥밥을 먹었던 이들의 축하 영상도 이어졌다. 김용달 전 코치와 손주인 삼성 라이온즈 코치, 키움 히어로즈 정찬헌, 이동현 SBS 스포츠 해설위원 등이 제2의 인생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박 위원은 이후 마이크를 잡고 마지막 메시지를 전달했다. 중간중간 울컥하면서 감정을 추스르기도 했다.
“LG의 심장 박용택”이라며 큰 소리로 인사한 그는 “대본은 집어치우겠다”면서 선수 인생의 마지막 무대에 선 채 처음 야구를 시작하던 날을 떠올렸다.
박 위원은 “1989년 11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생겼다”며 “감독님이 ‘야구 선수로 성공할 수 있다’며 8개월 정도 쫓아다니셨다”고 회상했다.
계속해서 “아버지가 엘리트 농구 선수셨다”며 “운동이라는 게 노력만큼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아셨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야구를 하면 그때부터 인생은 야구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이야기하라’고 하셨다”며 “1990년 6월3일에 야구를 시작한 뒤 하루도 즐겁게 한 적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더불어 “야구를 너무 사랑한다”며 “내 인생은 야구”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데 야구를 즐겁게 해선 안 되더라”며 “내가 안 즐거웠어도, 여러분이 즐거웠으면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 위원은 또 “입단했을 때 야구장 우측 폴 쪽에 41번 김용수 선배님의 유니폼이 걸려있었다”며 “그게 나의 막연한 꿈이었다”고 기억했다.
아울러 “병규형, 내 롤모델이었고 때론 라이벌이었다”며 “내 목표였고, 넘어보고도 싶었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병규형이 은퇴할 때는 영구결번이 확실한 목표가 됐다”며 “그리고 오늘, 지금 이 순간, 내가 3호가 됐다”고 감격해했다.
그러면서 “아쉬운 게 딱 하나 있다. 바로 우승 반지”라며 “비록 우승 반지 없이 은퇴하지만 대신 팬 여러분의 사랑을 끼고 은퇴한다”고 말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덧붙여 “후배들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팬보다 위대한 팀도 없다. 그리고 팬보다 위대한 야구도 없다’는 것”이라먀 “가슴속 깊이 새겨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아내 한진영씨를 언급할 때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박 위원은 “힘들고 어려운 시간 저와는 다르게 정말 묵묵하게 어떤 티도 내지 않고 옆에서 언제나 잘 될 거라고 내조해준 아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며 “아버지와 어머니도 정말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달변가인 그는 이날 구장을 꽉 채운 팬과 동료, 코치진을 웃겼다.
박 위원은 이날 상대팀을 의식, “롯데 팬들 아직 계신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오늘 이 멋진 자리에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었다”며 “그 순간 졸렬했을지 몰라도 저 진짜 졸렬한 사람 아니다”라며 미소지었다.
그는 통산 2236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8, 2504안타, 213홈런, 313도루, 1192타점을 남겨 KBO 리그 역대 최다 경기 및 안타의 주인공이다. 최다 타석(9138)과 타수(8139) 기록도 보유하고 있으며, 역대 최초 200홈런-300도루, 10년 연속 타율 3할, 7년 연속 150안타 등도 기록했다.
그런 야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상처가 됐던 해는 타율 0.372로 타격 1위에 오른 2009년이다. 당시 홍성흔(롯데 자이언츠)과 경쟁을 벌이다가 시즌 막판 팀의 관리로 타격왕이 됐다는 비판 이후 ‘졸렬택’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었다.
박 위원의 고별사가 끝난 뒤 팬들은 고별가 ‘걱정말아요 그대’를 함께 부르며 작별을 고했고, 이후 선수들이 운동장으로 나와 헹가래로 함께 축하한 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팬들은 그의 이름을 큰 소리로 연호했다.
박 위원은 “은퇴하면 팬들의 사랑을 확실하게 더 느낀다”며 “한국야구 팬들, LG 팬들과 선수들, 저 박용택 한국야구를 위해 파이팅하겠다”고 마지막 약속을 남겼다.
그는 이후 팬들이 부르는 응원가를 들으며 천천히 걸어 외야까지 그라운드를 크게 돌았고, 1루 근처에선 잠시 멈춰서 휴대전화를 꺼내 든 팬들을 배경으로 셀프카메라도 찍었다. 외야까지 한 바퀴 돈 후 정들었던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승구 온라인 뉴스 기자 lee_ow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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