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쇼의 위기
비용 대비 효과 낮아 해외 모터쇼도 예전만 못해..'한국판 CES' 신설 등 타개 방안 필요
2019년 3월29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개막한 서울모터쇼에서는 신차만큼이나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 제품이 있었다. 안마의자다. 바디프랜드는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와 협업해 제작했다는 ‘람보르기니 안마의자’를 선보였다. 다른 안마의자 업체들도 전시 부스를 꾸렸다. 웬만한 모터쇼에서는 접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그러나 정작 모터쇼의 주인공인 자동차 브랜드는 직전 행사 때보다 6개 줄어들었다.
모터쇼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모터쇼는 제조업의 꽃으로 불리는 자동차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축제이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국내외 완성차 업체들의 참여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존재감이 옅어지고 있다. ‘동네잔치’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급변하는 산업 패러다임에 맞춰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동력 잃은 모터쇼
오는 15일부터 24일까지 열흘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는 ‘2022 부산국제모터쇼’가 열린다. 그동안 격년으로 개최되던 부산모터쇼는 2020년 행사가 코로나19 사태로 취소되면서 4년 만에 열린다. 올해 행사는 10회째다. 부산모터쇼 조직위원회는 신차와 이색 차량 전시, 시승 체험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이 크게 완화되고 중국 베이징모터쇼까지 무기한 연기되면서 흥행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했던 조직위는 힘이 빠진 모양새다. 완성차 업체들의 참가율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참가 브랜드 수는 6개로 국내에선 현대차와 기아, 제네시스가, 수입차는 BMW, MINI, 롤스로이스가 부스를 꾸린다. 현대차그룹과 BMW그룹만 얼굴을 내미는 셈이다. 부산에 공장을 두고 있는 르노코리아차도 불참한다. 4년 전 행사에는 모두 19개 브랜드(국내 8개, 수입 11개)가 참가했다. 행사 규모가 쪼그라들자 부산 시민단체들은 “지역 홀대”라며 완성차 업체를 향한 규탄대회를 열기도 했다.
현대차가 이번 행사에서 두 번째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6의 실물을 세계 최초로 공개하는 점이 그나마 조직위의 체면을 세워줬다. 부산모터쇼 관람객은 2014년까지 6회 연속 100만명 이상을 기록했으나 2018년에는 62만명으로 급감했다. 조직위도 위기감을 인지하고 있다. 조직위 관계자는 “해외 모터쇼도 마찬가지겠지만 투입 비용 대비 효과가 낮다는 이유로 참가를 꺼리는 분위기”라며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부산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긴 상태”라고 말했다.
세계자동차산업연합회(OICA)가 공인한 국내 유일의 모터쇼인 서울모빌리티쇼도 처지는 비슷하다. 지난해 행사명을 모터쇼에서 모빌리티로 바꾸며 ‘전기차 시대’의 도래를 알렸으나 참가 브랜드는 10개에 그쳤다. 한·일관계 악화로 일본 업체들의 참가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지만, 자동차 본고장인 미국과 독일의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폭스바겐은 물론 세계 1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울모빌리티쇼 참가 브랜드 수는 2015년 32개, 2017년 27개, 2019년 21개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해외 모터쇼 역시 예전만큼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는 세계 4대 모터쇼에 꼽히는 파리모터쇼(10월17일 개막)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현대차가 파리모터쇼에 등장하지 않는 것은 30년 만에 처음이다. 프랑스 브랜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참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이젠 신차 전시 위주의 모터쇼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 지속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10억원 넘게 드는 비용이 모터쇼 참가를 망설이게 한다. 람보르기니는 2020년 제네바모터쇼 불참을 통보하면서 “많은 비용이 드는 대규모 모터쇼에 참가하기보다는 현장 마케팅과 이벤트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온라인 마케팅의 효과가 부각되면서 완성차 업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팝업 스튜디오,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등으로 홍보 채널을 돌리고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여전히 전기차 모델이 많지 않고, 콘셉트카를 운송하는 물류 비용도 상당하다”며 “주목도가 높은 CES(미국 가전·정보기술 박람회)에서도 신차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보여주기식이 아닌 관람객들을 유인할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발굴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앞다퉈 모터쇼와 유사한 행사들을 유치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업계 관계자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자동차 전시회를 하나로 통합해 매회 개최 도시를 바꿔가며 운영하거나 ‘한국판 CES’를 신설하는 것도 완성차 업체들의 참여도를 끌어올릴 방안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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