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 안 하는 외국인에 테이저건 쏘고 목 밟은 경찰
경찰이 ‘흉기를 들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를 진압봉과 전자충격기(테이저건)까지 사용하며 체포해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물리력 행사 규칙)’ 위반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테이저건을 맞고 쓰러진 이 노동자를 걷어차고 목을 발로 누른 뒤 수갑을 채우기도 했다. 인권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해당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할 방침이다.
3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광주 광산경찰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10분쯤 월곡동 한 주택가 골목길에서 외국인 노동자 A씨(23)를 체포했다. 경찰은 당시 “외국인 남성이 칼을 들고 왔다 갔다 한다”는 인근 어린이집의 신고를 받고 위급 상황으로 판단해 순찰차 3대를 출동시켰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베트남 출신 노동자 A씨가 한국 체류 비자가 만료된 미등록 상태임을 확인하고 경범죄처벌법과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한 뒤 출입국사무소에 신병을 인계했다.
출입국사무소는 이번주 A씨를 강제 출국시킬 계획으로 알려졌다.
광주·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는 “A씨와 면담한 베트남어 통역을 통해 확인한 결과 A씨는 당시 여자친구 부탁으로 요리에 사용할 주방용 칼을 인근에 사는 다른 친구에게 빌려 돌아가던 길이었다고 한다”면서 “경찰이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를 다짜고짜 진압봉으로 폭행하는 등 명백하게 과잉 진압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사건 당시 인근 건물에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1m 정도의 진압봉을 든 경찰관이 골목길 맞은편에서 휴대폰으로 통화하며 걸어오는 A씨를 주시하다 지원 경찰이 도착하자 진압봉으로 오른손에 든 흉기를 쳐 떨어뜨렸다. 순찰차에서 내린 경찰관 2명 중 1명이 A씨가 떨어뜨린 흉기를 재빨리 챙겼다. 손으로 진압봉을 막으며 경찰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쭈그려 앉던 A씨는 갑자기 온몸을 ‘부르르’ 떨며 쓰러졌다. 경찰이 쏜 테이저건에 맞은 것이다. A씨가 쓰러지자 경찰은 그를 걷어차고 목을 발로 짓누른 뒤 수갑을 채웠다.
경찰의 이런 대응은 2019년 11월24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물리력 행사 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대상자의 행위를 순응, 소극적 저항, 적극적 저항, 폭력적 공격, 치명적 공격 등 다섯 단계로 구별하고 단계별 경찰관의 구체적인 대응 수준을 제시하고 있다. 경찰이 테이저건과 진압봉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경찰관이나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 위해를 초래하고 있거나 임박한 상황’인 폭력적 공격 이상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다.
물리력 행사 규칙에는 “경찰관은 목적을 달성하여 더 이상 물리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경우에는 물리력 사용을 즉시 중단하여야 한다”고 돼있지만 오히려 경찰은 A씨가 테이저건을 맞고 쓰러진 뒤에도 목을 밟는 등 폭력적으로 대응했다.
경찰은 논란이 일자 “ ‘외국인 남자가 어린이집 인근에서 칼을 들고 왔다 갔다 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위급한 상황으로 판단해 신속하게 대응했다”면서 “테이저건을 맞고 쓰러진 용의자들이 다시 일어나 공격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 A씨는 건장한 외국인으로 수갑을 채우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또 “사건 발생 지역은 외국인 밀집 지역으로 그동안 사소한 시비에도 흉기 사용이 빈번해 흉기 소지자에 대해서는 초기에 엄정 대응하는 것을 기조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광주·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는 “이번 사건은 한국 경찰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그대로 드러냈다”면서 “과잉을 넘어 명백한 국가폭력인 만큼 4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을 접수하겠다”고 밝혔다.
강현석·고귀한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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