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친기업 정책..불붙은 노동계 '하투'
"정부, 물가 등 민생대책 내놔라"
이달 금속노조 차원 파업 가능성
최저임금·중대재해법도 대립각
노동계가 물가 폭등 속 민생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시작으로 하반기 대정부 투쟁을 본격화했다. 정부가 공공연하게 임금 인상 자제를 말하고 중대재해 관련 정책 퇴행 기조를 보이면서 노정 갈등이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지난 2일 서울 도심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앞에서 6만명가량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민주노총 차원에서 주도한 대규모 집회는 처음으로, 노동계가 전면 대정부 투쟁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집회에 나선 노동자들은 “고물가 시대에 노동자와 민중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민영화를 추진하며 재벌, 대기업의 이익만을 위해 일하는 정부를 규탄한다”고 했다.
이번 대규모 집회를 계기로 노동계의 하반기 투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달 중순 금속노조 차원의 파업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금속노조는 사용자협의회와 지난달 10차 교섭까지 진행했지만 최저임금 등을 두고 합의에 이르지 못해 교섭이 결렬됐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의 파업 가능성도 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달 임단협 협상이 결렬되자 지난 1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했고, 가결됐다. 현대차 노조가 실제 파업에 돌입하면 4년 만이다. 올해 임금협상에서 기본급 인상과 신규 인력 충원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아직 일괄 제시안을 내지 않았다. 다만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 회의와 별도로 5일 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투쟁 수위를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은 벌써 한 달째 임금 30% 인상, 단체협약 체결 등을 요구하며 파업 투쟁을 벌이고 있다.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은 지난달 22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내에 있던 책상 형태의 철제 구조물에 스스로 들어갔다. 이 구조물은 가로·세로·높이가 각 1m씩인 비좁은 공간으로, ‘끝장 투쟁’에 들어간 것이다.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 잇단 강수…노동계 “기업 편들기”
재계서 요구 ‘노동시간 유연화’에 중대재해법 개정 시사
휘발성 강한 이슈들 줄줄이…정부 “불법행위 엄정 대응”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노동동향 점검 주요 기관장 회의’를 열고 “법과 원칙에 따른 공정한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때”라며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관계기관과 협조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 관계자는 “하투 시작 전부터 기업 편을 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라고 했다.
하투가 본격화하면 노정 갈등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계는 정부의 재계 편들기를 비판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그간 노동개혁을 연금·교육 개혁과 함께 3대 개혁과제로 강조해왔는데, 재계가 요구해온 노동시간 유연화,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개정 등이기 때문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재계에 “물가 상승세를 심화할 수 있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당장 내년도 최저임금 확정과 중대재해법 개정안 발의 등에 대한 논란은 하투의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간당 9620원(5.0% 상승)으로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에 대해 노동계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 등을 고려하면 실질임금 하락”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또 정부가 중대재해법 시행령을 손보겠다고 밝히고,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이 법 개정안을 발의해 당론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데 대해 노동계는 ‘중대재해법 무력화 시도’라고 보고 있다.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법 시행 5개월도 안 돼 중대재해법 개정을 시도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것이자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노동기본권으로 선언한 것과 반대 행보”라며 “기업만 우선시하는 정책을 펼친다면 이에 반발하는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정부 대응을 보면 근로시간 유연화와 임금 인상 자제, 공공기관 개혁 등 연일 강수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입장을 견지하고 거듭 정부 입장만 공언한다면 노동계와 적대적인 구도가 될 수밖에 없고 ‘격돌’로 가는 것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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