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두려움으로, 특정 집단 혐오로 모는 나쁜 언론"

노지민 기자 2022. 7. 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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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MBC 'PD수첩'-서울신문 등 보도 지적
"주류미디어도 질세라 노골적" 공익 저해하는 원숭이두창 보도
"낯선 질병에 유난히 과잉 반응과 대처…불필요한 차별 낳는 한국"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원숭이두창이 선정적이고 왜곡된 보도로 소비되는 가운데 주류 언론에서도 문제적 보도가 포착되고 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 미디어TF는 3일 “문제는 질병에 대한 지식의 빈칸을 두려움으로 채워 놓고 특정 집단에 대한 낙인을 증폭시켜 혐오의 여론몰이를 하는 나쁜 언론들”이라며 잘못된 보도들을 꼬집었다.

국내 언론은 지난 5월 해외 발병 사례에 대한 외신을 인용하면서 원숭이두창 보도를 시작했다. 아프리카 지역의 풍토병으로 알려진 원숭이두창이 유럽 국가에서 열린 파티 등에서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보도는 물집 등이 발생한 검은 피부 이미지, '동성 간 성관계' 키워드를 중심으로 확산했다. 보도 이미지에 대해서는 앞서 한국과학기자협회가 까만 피부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행성인은 “매력적이고 활기 넘치는 몸들의 한편에 훼손되고 손상된 신체부위를 곧장 붙여 전시하는 패턴은 이미 40여년 전 HIV/AIDS가 처음 등장하던 시절의 레퍼토리”라며 “확실한 것은 질병을 프레임 짓는 언론의 논리는 (해당 질병을) 특정 집단의 전유물처럼 인식하게 만들어 그들을 사회에서 분리하고 고립시킨다는 것”이라 꼬집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미디어TF가 3일 논평을 통해 비판한 서울신문 기사(왼쪽)와 MBC 'PD수첩' 관련 이미지. 사진=네이버 뉴스, MBC

행성인은 '에이즈'와 '원숭이두창'의 연관성을 엮은 보도로 지난 2일자 서울신문 기사를 제시했다. '英원숭이두창 환자, 4명 중 1명은 'HIV 감염' 상태였다'는 제목의 기사다. 행성인은 “줄곧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를 친화적인 시각으로 조명해온 서울신문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누구보다 질병에 따르는 연구들에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쉬움 너머 실망이 크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보도 내용과 관련해선 “영국의 최근 연구들을 옮긴 기사는 원숭이두창 감염사례의 상당수가 남성과 섹스한 남성들임을 밝힌다. 그리고 곧장 환자들 중에 25%가 HIV감염상태였음을 말한다. 한데 기사는 그게 무슨 문제를 야기하는가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며 “ 객관적인 통계 아래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았을 것”이라 지적했다.

공익적 목적의 보도일지라도 특정 집단을 대상화해 잘못된 인식을 재생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지난달 28일 MBC 'PD수첩-원숭이두창, 오해와 진실'편이 원숭이두창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야생동물 거래시장을 촬영하고, 원숭이두창이 치료 가능한 병이며 유럽등지에서 새로운 질병에 대한 연구와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한 사례가 언급됐다.

행성인은 “야생동물 고기를 거래하고 식육해온 문화를 야만으로 설정하고 이를 광란의 파티에 결합시킬 때 도덕적 지탄에 대한 시나리오는 어렵지 않게 생산될 것”이라며 “미디어는 손상된 몸의 이미지를 인종주의와 성적 보수주의의 프레임에 동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스스로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취약집단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하는 사회적 통제와 위계의 프로세스가 질병을 둘러싸고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당부도 전했다.

행성인은 이어 “위기를 앞두는 시점에 언론도 관심만 끌려 하지 말고 질병예방에 책임이 있음을 부디 자각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6월28일 질병관리청 카드뉴스 일부

원숭이두창이 동성간 성관계로 확산되지 않았다는 점은 국내외 의료계에서도 공인한 사실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월25일 “원숭이두창은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남성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30일엔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이 “코로나19, HIV, 최근 원숭이두창 관련 루머가 인종, 경제적 지위, 성정체성으로 이미 소외된 집단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기구 모두 감염자에 대한 낙인이 공포심을 자극해 효율적인 대처를 어렵게 만든다고 경고해왔다.

한국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28일 “원숭이 두창은 동성 간 성행위로 확산됐다?” 제목의 카드뉴스에서 “일부 특정 집단만을 중심으로 원숭이두창이 확산되지는 않는다. 확진자나 감염동물과의 밀접 접촉, 상처, 체액, 옷·침구 등을 통해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고 오해를 바로잡았다.

성소수자인권단체들은 언론에 올바른 보도를 당부하는 한편 혐오·낙인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을 공유하고 있다. 1일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퀴어 커뮤니티를 위한 원숭이두창 가이드라인'을 소개하면서 “감염으로부터 나와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선택할지 미리 생각해두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최대한 예방하고, 치료하고, 그 과정에서 차별이나 낙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를 돌보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을테니 낙담하지 말고 힘을 내보자”고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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