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원 선거 이후의 일본 정치

한겨레 2022. 7. 3.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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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창]

[세계의 창] 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일본에선 10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당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일본 헌법 규정을 보면, 중의원 선거 이후에는 반드시 국회에서 총리를 지명하는 선거를 하게 돼 있어, 중의원 선거는 정권 선택과 직결된다. 반면 참의원 선거는 국민이 정치에 대한 불만을 호소하는 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30년 동안 참의원 선거 결과가 종종 정치를 크게 움직이게 하는 방아쇠가 됐다.

1989년 참의원 선거는 일본 정치의 큰 변화를 알리는 시작이 됐다. 당시 대형 정치부패 스캔들과 소비세 도입으로 자민당의 지지는 급락했고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대신 사회당이 대승을 거뒀다. 이때 사회당 위원장은 일본 정치 사상 최초의 여성 당수였던 도이 다카코(1928~2014)로 여성들의 정치참여가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1990년대는 정치개혁과 정당재편의 시기다. 양대 정당제의 수립을 촉진한다는 목적으로 중의원 선거제도가 소선거구제로 바뀌었다. 새로운 선거제도가 도입된 뒤 자민당에 대항하기 위한 야당의 결집은 계속됐다. 1998년 창당된 민주당은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둬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이것으로 1990년대 이래 진행된 정치개혁 프로젝트가 실현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은 소비세 인상을 둘러싸고 분열하는 등 2012년 중의원 선거에서 대패해 3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민주당의 실패는 국민의식 속에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등 어두운 기억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후 민주당의 흐름을 잇는 정당들은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야당에 대한 지지는 저조하다.

일본의 정치 흐름을 길게 언급한 것은 이번 참의원 선거가 30년의 기간 동안 다양하게 시도됐던 일본 정치의 새로운 모색에 마침표를 찍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전기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인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총리대신을 국회에서 선출한다. 이런 이유로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집권 여당인 자민당에 대항하는 큰 야당을 만드는 것이 필수다. 현재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다른 야당에 결집을 호소해왔지만 오히려 분열이 계속되고 있다.

오래된 중국 역사서에 ‘계구우후’라는 말이 있다. 큰 조직의 말단(소꼬리)보다 작은 조직의 우두머리(닭머리)가 낫다는 의미다. 일본 야당 지도자들은 이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정권교체를 포기한 채 자민당에 정책을 제안하고 약간의 양보를 얻어 기뻐하는 정당도 있다. 이렇게 되면 큰 야당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자민당은 쉽게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입헌민주당이 후퇴한다면 야권에서 중심을 잡던 축이 더욱 약화된다. 정권교체가 가능한 정당 시스템을 만들려던 모든 노력이 실패로 끝나는 셈이다.

아울러 자민당이 대승을 하면 정책적으로도 압도적인 보수화·우경화가 이뤄지게 된다. 자민당 간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명분 삼아 방위비의 2배 증액, 헌법 9조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조금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선거 뒤 국민 지지를 얻었다는 이유로 개헌 움직임이 구체화될 가능성도 있다. 즉 이번 참의원 선거는 전후 70여년간 일본이 유지해온 평화국가 노선이 전환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국민들이 오랫동안 생각하고 논의한 끝에 정책전환을 선택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 일본인들은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 2010년 이래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50%대 전반에 머물고 있다. 이번 참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50%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일본에서는 복수정당제가 존재하고, 자유로운 정치활동도 가능하다. 일본의 민주주의는 형식적인 면에서는 훌륭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각 당의 논의가 깊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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