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문화/과학' 창간 30주년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보며 '급진 담론' 생산"..지속 가능성 좌담회

김종목 기자 2022. 7. 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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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황해문화, 뉴래디컬리뷰, 문화/과학 등 잡지 편집자들 참석

인문교양이나 인문시사, 진보이론 잡지를 내는 잡지사 경영 상황은 어렵다.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종이매체가 다 겪는 일이다. 잡지사는 더 힘들다. 계간 또는 격월간의 발간 주기 때문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처 같은 디지털 활로를 마련하기도 마땅치 않다. ‘계간지는 내용이 어렵다’는 이미지도 강해 대중 확장성도 부족하다. 불편부당한 기조와 급진적 대안 담론 생산은 강화된 정파·진영 논리와 확증 편향 때문에 이른바 ‘진보’와 ‘보수’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런 와중에 계간 ‘문화/과학’이 발간 30주년을 맞았다. 110호를 내며 진보 이론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피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출판문화회관 강당엔 김정현(녹색평론), 이광석·박현선(문화/과학), 전성원(황해문화), 최진석(뉴래디컬리뷰) 등 4개 잡지 편집인들이 모였다. ‘인문사회 급진 무크지 출판, 지속가능성의 토픽들’이란 주제를 두고 이야기했다.

‘재원과 독자 관리 노하우’가 토픽 중 하나다. “56억짜리 재단이면 사실 계간지를 내면 안 돼요. 잡지 내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이거든요.” 그나마 다른 잡지에 비해 사정이 낫다는 ‘황해문화’ 편집인 전성원의 말이다. ‘녹색평론’은 한때 1만 부 발행, 7000여 명 정기 구독을 기록했다. 전국 70여 개 지역 독자 모임이 광고도 냈다. 휴간 전 독자 모임은 30여 개로 줄었다. ‘녹색평론’ 편집인 김정현은 “구독자 수가 꾸준히 줄어들었다. 최근 들어 꽤 많이 감소했다. 지속 가능성이 흔들렸다”고 했다. ‘녹색평론’은 지난해 30주년 기념호를 내고 1년간 휴간에 들어갔다.

‘문화/과학’은 창간 30주년을 기념해 ‘인문사회 급진 무크지 출판, 지속가능성의 토픽들’ 좌담회를 지난달 29일 서울 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 개최했다. 사진 왼쪽부터 사회자 정원옥과 각 잡지 편집인 김정현(녹색평론), 박현선·이광석(문화/과학), 전성원(황해문화), 최진석(뉴래디컬리뷰). 문화/과학 제공

격월간이나 계간 단위로 발행하는 잡지사들엔 지금 실시간 단위로 정보가 쏟아지는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는 일도 난제다. ‘문화/과학’ 편집인 이광석은 “더 많은 사람이 읽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전자책은 하면 괜찮겠다는 느낌이 있다. 지금은 지식·정보 공유 차원에서 아카이빙 작업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현은 “(전자책 발간 등으로) 탄소 배출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일은 현재 ‘녹색평론’이 생산하는 글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경영난은 선택한 측면도 있다. 이들 잡지사는 기업이나 관청 광고를 받지 않는다. ‘녹색평론’은 정기구독, ‘문화/과학’과 ‘뉴래디컬 리뷰’는 독자 후원, ‘황해문화’는 재단이 재원 기반이다. ‘황해문화’ 경영 원칙 중 하나는 ‘관청에서 지원받지 않는다’이다.

독자·대중과의 소통 문제도 나왔다. 이 문제는 시대나 디지털 변화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전성원은 “원고를 받으면 정말 재미가 없고, 너무 어렵게 느낄 때가 많다. 모든 연구는 대중과 만나야 한다. 가두리 양식장 안에서 지식인들끼리만 소통하는 장르는 생명력이 없다”고 했다.

이들 잡지는 이른바 ‘진보 세력’이라는 진영·정파에 포섭되지도 않았다. 일례로 ‘황해문화’는 2017년 겨울호에 고은의 성추행을 고발한 최영미의 시 ‘괴물’을 게재했다. 전성원은 “(황해문화는) 급진을 표방해 본 적이 없다. 더 급진적이었던 세력들이 사라지다 보니, ‘황해문화’ 정도가 급진적인 모양새를 품고 있는 사회가 됐다. 조금은 슬픈 현실”이라고 했다.

잡지들이 처한 여러 위기에도 불구하고, 지식인 사회의 담론 생산을 이어가야 한다는 점엔 이론이 없었다.

전성원은 “잡지 발간 자체를 운동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잡지의 목적은 ‘평화와 통일, 지역’, 창간 모토는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이다.

최진석은 “매 시간 단위로 기사들이 올라오는 상황에서 계간지 체제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다. 이슈 파이팅 같은 것보다도 더 긴 호흡으로 멀리 볼 수 있고, 전망할 수 있는 그런 잡지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인문사회 비평지를 표방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익숙한 것이 아닌 낯설게 바라보고 시도할 게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며 (번역어 대신) ‘래디컬(Radical)’을 썼다. 다양함을 포괄할 수 있는 그 안에서 래디컬을 다시 좀 정리하는 과정을 되새겨야 하는 게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김정현은 “‘녹색평론’만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30주년까지만 하려다가) 계속 내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그는 “재정 기반(마련)이나 인력 보강도 필요하지만, 우리가 하려는 이야기를 더 깊고 풍부하게 만드는 게 (위기 극복의) 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1991년 ‘녹색평론’을 창간한 김종철(1947~2020)에 관한 이야기도 전했다. “(창간 전) 아버지(김종철)께서, 농민들이 수지가 안 맞아 열심히 농사를 지어 수확한 보리를 태우는 걸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으셨던 걸 기억한다. (녹색평론 창간으로 이끈) 상징적인 사건”고 했다. 김종철이 2019년 출간한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녹색평론사)에 담긴 문명적 전환을 위해 해야 할 이야기를 이어나가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그는 “녹색평론은 가장 급진적인 잡지다. 문명을 바꿔야 한다는 것보다 더 급진적인 얘기가 어디 있겠는가”라고 했다.

녹색평론· 문화/과학· 황해문화·뉴래프트리뷰 개요 . 문화/과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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