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고 졸음만 오는 청문회는 가라 [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정미경 기자 2022. 7. 3. 12:36
미 의사당 난입 사태 청문회 기획 PD
"지붕 날아가게 만들겠습니다"
“The hearings will blow the roof off the House.”(청문회가 확 날려드리겠습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지난해 1월 6일 발생한 의사당 난입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는 의회 청문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 청문회는 이례적으로 정치인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많이 연출한 방송 PD가 총감독을 맡았습니다. 그는 청문회 시작 전부터 “blow the roof off the House”(하우스 지붕을 날려버리겠다)고 장담했습니다.
‘House’는 ‘집’이 아니라 ‘하원’을 말합니다. 미 의회의 상원은 Senate, 하원은 House of Representatives, 줄여서 House라고 합니다. 이번 청문회를 주최한 하원 건물 지붕을 날려버릴 정도로 흥미진진한 이벤트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뚜껑을 열고 보니…. 지붕이 날아갈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6회 시리즈로 기획된 청문회는 드라마처럼 다음회 예고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효과음이 팡팡 터지고 자막도 감각적으로 답니다. 피크닉처럼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야외에서 단체관람을 할 수 있는 ‘뷰잉 파티’도 열고 있습니다.
이번 청문회를 두고 “쇼 같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하지만 비주얼 시대에 맞게 청문회도 변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설득력이 높습니다. 미국에는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청문회들이 많습니다. 청문회 명장면들을 모아봤습니다.
“Have you no sense of decency, sir?”(예의도 없으십니까?)
1950년대 미국에서 TV가 보급된 후 가장 먼저 전파를 탄 청문회는 매카시 열풍의 주인공인 극렬 반공주의자 조지프 매카시 청문회였습니다. 상원 조사위원회 위원장인 매카시는 일련의 청문회를 열어 사회 저명인사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며 살벌한 사상 검증을 벌였습니다. 매카시가 기획 연출 진행 질문자 역할을 혼자서 도맡은 ‘원맨쇼’ 청문회였습니다.
1954년 군 청문회에서 매카시는 다짜고짜 핵시설에 130여명의 소련 스파이가 암약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러자 군부를 대표한 조지프 웰치 변호사는 “선생님, 예의도 없으시네요”라고 반박했습니다. 정중하면서도 당당한 웰치 변호사의 답변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 한마디로 매카시 열풍의 몰락은 시작됐습니다. 정치권은 매카시에 대한 비난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정치무대에서 쫓겨난 매카시는 3년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성을 나타내는 ‘decent’(디슨트)는 한국인들은 많이 쓰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흔히 쓰입니다. “He‘s a decent person”이라고 하면 “도리를 아는,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일맥상통하는 뜻으로 ’적절한‘ 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며 “are you decent?”라고 물으면 “예의가 있느냐?”라는 뜻이 아닙니다. “당신은 적절한 상태냐?”, 즉 “들어가도 돼?(옷 제대로 갖춰 입고 있어?)”라는 뜻입니다.
“What did the president know, and when did he know it?”(대통령은 무엇을 알았고, 언제 알았나?)
대통령의 위법행위를 조사하는 청문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질문은 “대통령은 무엇을 알았고, 언제 알았느냐”입니다. 대개 이 질문은 대통령을 공격하는 야당 쪽에서 던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1973년 워터게이트 상원 청문회에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같은 공화당 소속의 하워드 베이커 의원이 질문자로 나섰습니다. 그는 증인으로 나온 존 딘 백악관 법률고문에게 역사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질문은 닉슨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돕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앞서 백악관에서 닉슨 대통령을 만난 베이커 의원은 야당 공세의 김을 빼기 위해 선수를 쳐서 이 질문을 하기고 짰습니다. 대통령은 모르는 일이고 부하들이 꾸민 것이라는 답변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질문의 의도를 눈치 챈 딘 고문은 “대통령은 사건의 처음부처 뒤처리까지 모두 관여했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닉슨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의 모든 대화를 녹음했다는 알렉산더 버터필드 부보좌관의 증언이 나오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Lying does not come easy to me.”(거짓말에 소질 없다)
올리버 노스는 이란-콘트라 스캔들이 낳은 청문회 스타였습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근무하며 이란 불법 무기판매와 콘트라 반군 군수지원의 실무 책임을 맡았던 노스는 청문회에서 거짓으로 답변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애국적인 차원에서 상부의 암묵적 동의를 받고 한 일이라는 노스의 시인 전략은 일명 ’올리마니아‘라고 불리는 노스 광팬들을 만들어냈습니다.
1987년 노스의 청문회 발언 중에 “나는 거짓말에 소질이 없다”라는 말은 티셔츠 머그컵 등 각종 머천다이즈에 찍혀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come‘만큼 미국인들이 여기저기쓰기 좋아하는 동사도 없습니다. ’나는 소질이 있다‘ ’타고 태어났다‘고 할 때 ’come easy to me‘라고 합니다.
●명언의 품격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난 닉슨 대통령은 2개의 연설을 남겼습니다. 1974년 8월 8일 사임 연설(resignation speech)과 9일 고별 연설(farewell speech)입니다. 역사적 의미로 본다면 전국에 생중계된 공식 사임 연설이 중요하지만 미국인들에게 더 많이 기억되고 인용되는 것은 100여명의 백악관 직원들 앞에서 한 고별 연설입니다. 후회, 수치심, 체념 등 닉슨의 복잡한 감정이 묻어나는 연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별사를 한 뒤 곧바로 헬기를 타고 백악관을 떠났습니다.
“Always remember, others may hate you, but those who hate you don’t win unless you hate them, and then you destroy yourself.”(언제나 기억하라. 당신을 미워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 한 그들은 승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미움은 당신 자신을 파괴할 뿐이다)
닉슨의 고별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은 ‘hate’(미움)에 대한 내용입니다. ‘당신을 미워하지 자를 미워하지 말라’는 긍정적인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상대를 미워하지 않는 이유가 승리를 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승부에 집착하는 닉슨의 편집증적 면모가 드러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실전 보케 360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최근 미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1973년 판결을 공식적으로 폐기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즉각 실망의 뜻을 밝혔습니다.
“It stuns me.”(망연자실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 결정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stun’(스턴)은 어떤 충격에 너무 놀라 정신이 멍할 때 씁니다. 좋은 충격, 나쁜 충격 모두의 경우에 쓸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많이 쓰는 단어인 만큼 사례로 알아두는 편이 이해가 빠릅니다. 기가 막힐 때 “I‘m stunned”라고 합니다. 상대의 외모나 옷이 멋있다고 칭찬할 때 “You look stunning”이라고 합니다. 외모가 매우 아름다운 사람, 특히 여성을 가리켜 “stunner”라고 합니다. 사람을 잠깐 기절시키는 전기충격기를 ’stun gun‘이라고 합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1년 2월 1일 소개된 1.6 의사당 난입 사태 공권력 사용 청문회에 대한 내용입니다. 의회 난입 사태 당시 부실한 경찰 대응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면서 이에 대한 긴급 비공개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2021년 2월 1일자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10201/105206693/1
의회 난입 사태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트라우마(심리적 외상)를 남긴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상징인 의사당이 그렇게 쉽게 폭도들에게 뚫릴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최근 미 의회에서 경찰의 부실 대응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비공개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We need additional boots on the ground.”(추가 파병이 필요하다)
청문회에 출석한 요가난다 피트먼 의회 경찰국장대행은 폭도들에 대항하는 경찰력의 수적 열세를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신속하게 지원 병력을 요청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난 스티븐 선드 경찰국장이 연방경찰과 주방위군 등에게 곧바로 연락해 “우리는 추가 파병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는 겁니다. ’boots on the ground(지상의 군화)‘는 쓰임새가 많은 군사용어입니다. ’지상군(육군)‘을 의미하기도 하고, ’파병군‘을 말하기도 합니다. 정치나 비즈니스 세계에서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현장 인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It was only by pure dumb luck more weren’t killed.”(인명 손실이 더 없었던 것이 행운일 뿐)
이번 사태로 시위대에서 4명, 경찰에서 2명이 사망했습니다. 적지 않은 인명 손실을 초래한 경찰의 허술한 대응에 대해 보고받은 의원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습니다. 한 의원은 “더 많은 인명 손실이 없었던 것을 뜻밖의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Dumb luck’은 ‘luck’보다 좀 더 어처구니없고, 의도치 않은 행운을 말합니다. ‘blind luck(눈이 먼 행운)’이라고도 합니다. 할리우드 영화 제목에도 있는 ‘serendipity(세렌디피티)’도 비슷한 뜻입니다.
“We need to get to the bottom of this.”(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청문회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의 반응에 온도차가 있었습니다. 경찰의 부실 대응을 비판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진상 규명의 필요성에는 의견이 갈립니다. 친(親)도널드 트럼프 성향이 강한 공화당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트럼프 지지 시위대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을 주저합니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폭력 시위대를 끝까지 추적해 색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get to the bottom of’(바닥까지 가다)는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지붕 날아가게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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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rings will blow the roof off the House.”(청문회가 확 날려드리겠습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지난해 1월 6일 발생한 의사당 난입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는 의회 청문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 청문회는 이례적으로 정치인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많이 연출한 방송 PD가 총감독을 맡았습니다. 그는 청문회 시작 전부터 “blow the roof off the House”(하우스 지붕을 날려버리겠다)고 장담했습니다.
‘House’는 ‘집’이 아니라 ‘하원’을 말합니다. 미 의회의 상원은 Senate, 하원은 House of Representatives, 줄여서 House라고 합니다. 이번 청문회를 주최한 하원 건물 지붕을 날려버릴 정도로 흥미진진한 이벤트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뚜껑을 열고 보니…. 지붕이 날아갈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6회 시리즈로 기획된 청문회는 드라마처럼 다음회 예고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효과음이 팡팡 터지고 자막도 감각적으로 답니다. 피크닉처럼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야외에서 단체관람을 할 수 있는 ‘뷰잉 파티’도 열고 있습니다.
이번 청문회를 두고 “쇼 같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하지만 비주얼 시대에 맞게 청문회도 변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설득력이 높습니다. 미국에는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청문회들이 많습니다. 청문회 명장면들을 모아봤습니다.
“Have you no sense of decency, sir?”(예의도 없으십니까?)
1950년대 미국에서 TV가 보급된 후 가장 먼저 전파를 탄 청문회는 매카시 열풍의 주인공인 극렬 반공주의자 조지프 매카시 청문회였습니다. 상원 조사위원회 위원장인 매카시는 일련의 청문회를 열어 사회 저명인사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며 살벌한 사상 검증을 벌였습니다. 매카시가 기획 연출 진행 질문자 역할을 혼자서 도맡은 ‘원맨쇼’ 청문회였습니다.
1954년 군 청문회에서 매카시는 다짜고짜 핵시설에 130여명의 소련 스파이가 암약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러자 군부를 대표한 조지프 웰치 변호사는 “선생님, 예의도 없으시네요”라고 반박했습니다. 정중하면서도 당당한 웰치 변호사의 답변은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 한마디로 매카시 열풍의 몰락은 시작됐습니다. 정치권은 매카시에 대한 비난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정치무대에서 쫓겨난 매카시는 3년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성을 나타내는 ‘decent’(디슨트)는 한국인들은 많이 쓰지 않지만 미국에서는 흔히 쓰입니다. “He‘s a decent person”이라고 하면 “도리를 아는,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일맥상통하는 뜻으로 ’적절한‘ 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며 “are you decent?”라고 물으면 “예의가 있느냐?”라는 뜻이 아닙니다. “당신은 적절한 상태냐?”, 즉 “들어가도 돼?(옷 제대로 갖춰 입고 있어?)”라는 뜻입니다.
“What did the president know, and when did he know it?”(대통령은 무엇을 알았고, 언제 알았나?)
대통령의 위법행위를 조사하는 청문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질문은 “대통령은 무엇을 알았고, 언제 알았느냐”입니다. 대개 이 질문은 대통령을 공격하는 야당 쪽에서 던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1973년 워터게이트 상원 청문회에서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같은 공화당 소속의 하워드 베이커 의원이 질문자로 나섰습니다. 그는 증인으로 나온 존 딘 백악관 법률고문에게 역사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질문은 닉슨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돕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앞서 백악관에서 닉슨 대통령을 만난 베이커 의원은 야당 공세의 김을 빼기 위해 선수를 쳐서 이 질문을 하기고 짰습니다. 대통령은 모르는 일이고 부하들이 꾸민 것이라는 답변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질문의 의도를 눈치 챈 딘 고문은 “대통령은 사건의 처음부처 뒤처리까지 모두 관여했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닉슨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의 모든 대화를 녹음했다는 알렉산더 버터필드 부보좌관의 증언이 나오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Lying does not come easy to me.”(거짓말에 소질 없다)
올리버 노스는 이란-콘트라 스캔들이 낳은 청문회 스타였습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근무하며 이란 불법 무기판매와 콘트라 반군 군수지원의 실무 책임을 맡았던 노스는 청문회에서 거짓으로 답변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애국적인 차원에서 상부의 암묵적 동의를 받고 한 일이라는 노스의 시인 전략은 일명 ’올리마니아‘라고 불리는 노스 광팬들을 만들어냈습니다.
1987년 노스의 청문회 발언 중에 “나는 거짓말에 소질이 없다”라는 말은 티셔츠 머그컵 등 각종 머천다이즈에 찍혀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come‘만큼 미국인들이 여기저기쓰기 좋아하는 동사도 없습니다. ’나는 소질이 있다‘ ’타고 태어났다‘고 할 때 ’come easy to me‘라고 합니다.
●명언의 품격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난 닉슨 대통령은 2개의 연설을 남겼습니다. 1974년 8월 8일 사임 연설(resignation speech)과 9일 고별 연설(farewell speech)입니다. 역사적 의미로 본다면 전국에 생중계된 공식 사임 연설이 중요하지만 미국인들에게 더 많이 기억되고 인용되는 것은 100여명의 백악관 직원들 앞에서 한 고별 연설입니다. 후회, 수치심, 체념 등 닉슨의 복잡한 감정이 묻어나는 연설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별사를 한 뒤 곧바로 헬기를 타고 백악관을 떠났습니다.
“Always remember, others may hate you, but those who hate you don’t win unless you hate them, and then you destroy yourself.”(언제나 기억하라. 당신을 미워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 한 그들은 승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미움은 당신 자신을 파괴할 뿐이다)
닉슨의 고별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은 ‘hate’(미움)에 대한 내용입니다. ‘당신을 미워하지 자를 미워하지 말라’는 긍정적인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상대를 미워하지 않는 이유가 승리를 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승부에 집착하는 닉슨의 편집증적 면모가 드러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실전 보케 360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최근 미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1973년 판결을 공식적으로 폐기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즉각 실망의 뜻을 밝혔습니다.
“It stuns me.”(망연자실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 결정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stun’(스턴)은 어떤 충격에 너무 놀라 정신이 멍할 때 씁니다. 좋은 충격, 나쁜 충격 모두의 경우에 쓸 수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많이 쓰는 단어인 만큼 사례로 알아두는 편이 이해가 빠릅니다. 기가 막힐 때 “I‘m stunned”라고 합니다. 상대의 외모나 옷이 멋있다고 칭찬할 때 “You look stunning”이라고 합니다. 외모가 매우 아름다운 사람, 특히 여성을 가리켜 “stunner”라고 합니다. 사람을 잠깐 기절시키는 전기충격기를 ’stun gun‘이라고 합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1년 2월 1일 소개된 1.6 의사당 난입 사태 공권력 사용 청문회에 대한 내용입니다. 의회 난입 사태 당시 부실한 경찰 대응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면서 이에 대한 긴급 비공개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2021년 2월 1일자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10201/105206693/1
의회 난입 사태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트라우마(심리적 외상)를 남긴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상징인 의사당이 그렇게 쉽게 폭도들에게 뚫릴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최근 미 의회에서 경찰의 부실 대응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비공개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We need additional boots on the ground.”(추가 파병이 필요하다)
청문회에 출석한 요가난다 피트먼 의회 경찰국장대행은 폭도들에 대항하는 경찰력의 수적 열세를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신속하게 지원 병력을 요청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책임을 지고 물러난 스티븐 선드 경찰국장이 연방경찰과 주방위군 등에게 곧바로 연락해 “우리는 추가 파병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는 겁니다. ’boots on the ground(지상의 군화)‘는 쓰임새가 많은 군사용어입니다. ’지상군(육군)‘을 의미하기도 하고, ’파병군‘을 말하기도 합니다. 정치나 비즈니스 세계에서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현장 인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It was only by pure dumb luck more weren’t killed.”(인명 손실이 더 없었던 것이 행운일 뿐)
이번 사태로 시위대에서 4명, 경찰에서 2명이 사망했습니다. 적지 않은 인명 손실을 초래한 경찰의 허술한 대응에 대해 보고받은 의원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습니다. 한 의원은 “더 많은 인명 손실이 없었던 것을 뜻밖의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라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Dumb luck’은 ‘luck’보다 좀 더 어처구니없고, 의도치 않은 행운을 말합니다. ‘blind luck(눈이 먼 행운)’이라고도 합니다. 할리우드 영화 제목에도 있는 ‘serendipity(세렌디피티)’도 비슷한 뜻입니다.
“We need to get to the bottom of this.”(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청문회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들의 반응에 온도차가 있었습니다. 경찰의 부실 대응을 비판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진상 규명의 필요성에는 의견이 갈립니다. 친(親)도널드 트럼프 성향이 강한 공화당은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트럼프 지지 시위대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을 주저합니다. 반면 민주당 의원들은 폭력 시위대를 끝까지 추적해 색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get to the bottom of’(바닥까지 가다)는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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