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살의 '컵 떡국' 밥상..월 58만원에도 존엄을 지키는 방법

손고운 2022. 7. 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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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빈곤층에 더 가혹한 인플레이션의 민낯 - ②
김석춘(62·가명)씨가 복지관에서 받아온 ‘컵 떡국’으로 차린 저녁상. 깍두기를 직접 담그고 오이를 시장에서 사와 썰었다. 김씨는 “최대한 영양소를 골고루 갖춰 먹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김석춘 제공

*‘가장 싼 반찬 찾아 3만 보를 걸었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230.html

안 좋은 집은 덥거나 춥다

3월22일: 휠체어를 타고 진입 가능한 집은 아파트밖에 없다. 가장 작은 평수가 16평인데, 월세는 30만원이다. 주거급여와는 너무 많은 차이가 난다. 관리비도 한 달에 대략 10만원을 잡아야 한다. 도시가스비를 포함하면 벌써 50만원 이상 지출되는 것이다.

-중증장애인 연정아(40·충북)씨 가계부

25가구 가운데 10가구가 주거비(임대료·관리비·수도광열비)로 가장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었다. 식비 다음으로 많은 돈을 주거비에 쓴 가구도 7가구였다. 임대아파트에 살고 주거급여를 받는다고 하면 국가가 빈곤층한테 ‘집 걱정 없는 삶’을 보장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상은 달랐다.

연정아씨는 보증금 600만원에 월세 30만원인 충북의 한 민간아파트에 산다. 생계급여와 별도로 주거급여가 월 16만3천원씩 들어오지만, 월세는커녕 월 21만3천원에 이르는 관리비·수도광열비를 내기에도 부족하다.

연씨는 중증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다녀 어쩔 수 없이 아파트에 사는데, 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이 45.2%에 이른다. 연씨는 “에너지 바우처는 한 달이면 날아간다”고 말했다. “수급자 대부분이 취약계층이잖아요. 장애가 있거나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 노인인데 에너지를 아끼고 싶어도 써야 하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연씨는 난방비나 전기요금을 아끼려, 겨울철엔 극세사 이불 몇 겹을 덮고, 여름에는 아이스팩을 안고 잔다.

6월27일 정부는 3분기 전기요금의 연료비 조정 단가를 ㎾h당 5원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월평균 307㎾h를 사용하는 가구의 전기요금 부담이 1535원(부가세 제외) 늘어난다고 한다. 큰돈이 아닐지 몰라도, 빈곤층에는 부담이다.

서울 성북구 6평 원룸에 사는 박희원씨는 평소 불을 켜지 않고 생활한다. 인터뷰를 위해 박씨 집을 방문한 날에도 박씨는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어두운 방 안에서 “낮이라 괜찮다”며 불을 켜지 않고 있었다.

빈곤층의 열악한 주거 형태는 건강 악화 등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덥거나 추운 집에 사니 수도광열비가 많이 나오고, 돈을 아끼려 덥거나 춥게 사니 건강은 더 안 좋아진다.

남편의 가정폭력을 피해 어린아이들과 도망쳐 나온 정연지(44)씨는 서울에 보증금 2천만원, 월세 45만원짜리 공공 전세임대주택에 산다. 오래된 다세대주택 지하인 지금의 집에 2021년 겨울 이사 왔다. 처음엔 이사비를 아끼려 아이들과 짐을 직접 옮기다가 지쳐서 결국 이삿짐차를 불러 이사를 마쳤다. 거동을 못하는 어머니와 고등학생·중학생 아들과 사는 그는 4인가구라 주거급여 47만1천원을 받는다. 하지만 임대료 월 45만원과 관리비·수도광열비 월 11만3천원을 내고 나면 적자다.

“비닐하우스 치는 포장지를 창 바깥쪽, 안쪽에 다 붙이고 남이 쓰다 버린 커튼도 달았는데 그래도 지난겨울 너무 추웠어요. 최대한 아껴도 (난방비가) 이십몇만원이 나와서 너무 놀라, 그다음부턴 코가 시리면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잤어요. 감기 다 걸리고 콧물 나오고.”

박희원(44·가명)씨가 2022년 6월7일 서울 성북구 동묘시장에 유통기한이 임박한 햄을 사러 가고 있다. 장호경 감독 제공

아프면 참고, 참으면 더 아픈 악순환

3월2일: 대학병원 피부과를 다녀왔는데 비급여 때문에 치료가 걱정된다.

4월19일: 가계부 쓰면서 함부로 밥 먹거나 외식도 잘 안 했지만 병원비로 인한 턱없는 생활비. 수급자도 돈 신경 안 쓰면서 밥을 먹고 싶습니다.

-희귀난치성 질환과 당뇨가 심한 박희원(44·서울)씨 가계부

정연지씨 가족은 3월 중순 코로나19도 겪었다. 아이들, 아픈 어머니가 차례로 코로나19에 걸리더니 정씨도 확진됐다. 유독 증상이 심했다. 새벽에 열이 41.8도까지 올랐고, 2주 동안 물 넘기기조차 힘들어 밥을 먹지 못했다. 체중 14㎏이 급격하게 빠지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진짜 ‘저승사자가 보인다는 얘기가 뭔지 알겠다’ 싶게 죽을 것 같은데 돈 생각부터 나는 거예요. ‘내가 응급실에서 죽으면 응급실 비용이 10만원 넘게 나올 텐데 아이들은 그 돈이 없을 텐데. 죽더라도 응급실엔 안 가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참았어요.”

정씨는 지난겨울 손가락 하나가 골절됐을 때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 손가락은 지금 감각이 없고 구부러지지 않는다. 그는 “병원에 가면 신경을 봐야 하니까 엠아르아이(MRI·자기공명영상)를 찍어야 하는데 돈이 들어 안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저소득층 가운데 기초생활보장제도 의료급여 1종·2종 수급권자에게는 병원비 부담을 덜어주고 있지만 이는 일반적인 급여 항목에만 해당된다. 엠아르아이 등 비급여 항목은 수급자라도 똑같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병원 입원이나 응급실 방문을 꺼리는 이유다.

모야모야병으로 뇌혈관 수술을 받은 박희원씨도 의사가 ‘재발 우려 때문에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검사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50만원에 달하는 검사비 걱정에 4년째 검사받지 않고 있다. 박씨는 “항상 병원 가서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다. ‘이거 돈 들어요? 얼마 들어요?’ 싸면 받고 비싸면 못 받는다”고 말했다. 치아가 좋지 않아 죽을 먹거나 물에 밥을 말아 먹는 백중현(72)씨도 “치과 치료는 엄두도 못 낸다”고 했다. 그는 “이 뽑는 건 공짜로 해주지만, 임플란트 하는 데는 돈이 좀 나간다”며 “나라에서 의료 다 도와주네 그런 말은 거짓말”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그냥 참거나 버틴다.

쓸쓸함 위로하는 건 반려견과 술·담배

3월31일: 오전에 정식이 동생이 양평에 가자는데 거절했다. 움직일 수가 없다. 그놈의 돈.

-허리디스크·관절염이 있는 한정구(72·서울)씨 가계부

“아침에 일어나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냥 절간에 있는 것 같아요. 연락도 다 끊겼고. 조카는 한번 보고 싶은데 차비가 걱정되고.” 박희원씨는 쓸쓸하게 말했다. 그는 월 7만4천원을 교통비로 썼다. 그나마 다른 가계부 조사 가구들에 견주면 교통비를 많이 쓴 편이다. 25가구의 교통비 지출은 0원부터 9만원까지 편차가 컸다. 장애인, 노인 등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이도 있지만 교통비마저 빈곤층에는 이동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된다. 그 결과, 인간관계가 단절돼간다. 돈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고, 움직이지 못하면 외롭다.

연정아씨는 가계부에 ‘외부 활동을 많이 할 때는 허기가 진다. 여러 번 움직이면 차비도 많이 들어가는데 식비 지출이 부담스러워 되도록 집에서 밥 먹고 외부 활동을 한다’고 기록했다. 부산에 사는 김영택(71)씨도 ‘오늘 하루가 소외 때문에 쓸쓸하다’ ‘오늘은 외로워 못 산다’ 등의 심경을 가계부에 썼다.

식비, 주거비, 교통비 등 꼭 필요한 지출 이외의 씀씀이는 매우 작았다. 두 달 동안 의류·신발 비용을 하나도 쓰지 않은 가구가 10가구나 됐다. 1500~9천원 등 1만원 이하로 의류·신발을 사는 데 지출한 가구도 8가구였다.

이렇게 아낀 돈으로 나름의 가치 있는 소비를 한 이들도 눈에 띄었다. 누군가에겐 불필요해 보이는 비용이, 이들에겐 위안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부산에 사는 김정님(67)씨는 7천원짜리 생닭을 산 날 “오늘은 애들(강아지) 닭도 사줄 수 있어 조금 좋다”고 가계부에 썼다. 그는 자신의 식비를 줄여가며 반려견을 챙겼다. 한 달에 12만원 남짓 담배 구매에 쓰는 한 수급자는 “몸이 안 좋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은 낙이 없다. 이것마저 끊기 힘들다”고 말했다.

반려견, 담배나 술 등의 위로마저 없으면 더 외로움을 느낀다. 또 다른 수급자는 ‘오늘 하루도 방에서 지내기만 했다’ ‘하루가 아무 의미가 없다’ ‘시간이 너무 안 간다’ 등의 내용으로 가계부를 빼곡히 채웠다. 이 가구의 가계부 조사를 맡은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지인들이 처음엔 간식이라도 사들고 찾아오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분들도 은퇴하고 생활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점점 발걸음이 끊기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고립된다”고 말했다.

한정구(72)씨는 생계급여를 받아 생활하는 상황에서도 부모님 기일과 설, 추석 차례상을 챙기는 데 매년 140만원을 썼다. 자신이 먹을 걸 아껴가며 제사를 지내는 건, 그가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다. 그의 가계부 일기에는 제사를 걱정하며 ‘월 10만원씩 모아야 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걱정이다. 최대한 아끼며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는 대목이 등장한다.

‘포기하는 선택’의 연속 끊으려면

혼자선 화장실도 못 가는 아픈 어머니를 돌보느라 일하지 못하는 두 아이의 엄마 정연지씨는 가계부에 ‘노력’에 대해 반복적으로 썼다. ‘노력하면서 기다리면 기회는 온다.’ ‘꿈을 포기하지 말자.’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는 건 안정적 삶을 살기 위한 부분이다.’ ‘큰아들이 일본어 공부를 하겠다고 하는 게 기특하고 미안하다. 학원을 보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할 뿐.’ 남편의 가정폭력을 피해 둘째 아이를 업고 첫째 손을 잡은 채 새벽에 8㎞를 걸어 시골집에서 도망쳐나온 그는 붕어빵 장사, 보험 영업, 치킨 장사 등 안 해본 게 없다. 하지만 신분증 사본이 휴대전화 명의도용에 사용돼 수천만원의 빚이 쌓였다. 신분증이 어디서 유출됐는지도 확인이 안 돼 소송을 벌였지만 패소했다. 정씨는 여전히 반지하에 산다. 빠듯한 생활비 탓에 학교를 마친 뒤 친구들과 흔한 군것질조차 못하는 큰아들은 가끔 엄마에게 “노력하면 나아지는 게 맞느냐”고 물었다.

밥값이 비싸지거나, 아프거나, 춥거나, 배고플 때 기초생활수급자 대부분은 ‘포기’하는 선택을 한다. 가계부 조사에 참여한 25가구 가운데 두 달간 지출이 수입보다 많은 가구가 11가구였다. 생계급여 등이 오르는 속도가 물가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최저생계비’를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정의한다. 생계급여·주거급여를 받는 이들 25가구의 삶이 과연 지금 최소한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에 해당하긴 할까.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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