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 한가운데서..53명이 190억 매출"
현대모비스에 전기조향 장치 반도체 공급
현대차 부회장 출신 김동진 회장 소유·경영
신규 주력 분야로 'SiC 전력반도체' 꼽아
"부산 기장군에 5천평 터 확보, 양산 준비 중"
흰색으로 ‘㈜아이에이파워트론’이라고 적힌 건물로 들어서 계단을 내려갔다. 반도체 관련 회사에서 으레 그렇듯 흰색 실내화로 갈아신고, 밀폐 공간에서 먼지를 털어내는 바람을 맞고, 방진복을 입고, 모자를 썼다. 앞서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곳을 지나며 손가락을 접촉하는 절차도 거쳤다. 정전기 발생을 막는 목적이라고 했다.
먼저 안내된 곳은 ‘FRONT’라는 푯말을 매단 작업 공간이었다. 앞 단계 공정이 이뤄지는 곳이라고 했다. ㄷ자모양으로 배치된 세부 공정별 작업대 위에는 ‘Mounter(부품 탑재)’ ‘Mounter(리드프레임 탑재)’ 같은 글귀가 보였다. 여기를 지나 후공정 과정인 ‘FINISH’를 거쳐 ‘EOL’ 단계에서 내전압, 고온·상온 테스트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피시비(PCB·반도체용 인쇄회로기판)에 소자들을 장착해 모듈 상태로 만들고 보호 장치로 둘러싸는 작업이다.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이노비즈협회) 주선으로 지난달 30일 방문한 아이에이파워트론은 인천 부평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자동차용 전력반도체 모듈을 주력 제품으로 삼고 있는 중소기업이다. 전자기기에 쓰이는 전력의 형태가 동일하지 않아 시스템 맞춤형으로 변환시켜줘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게 바로 전력반도체이다. 전력반도체는 가전제품, 통신기기, 자동차, 신재생에너지 발전 등 다양한 곳에 활용된다. 이 중 차량용 전력반도체 분야는 코로나19 사태 뒤 심화한 글로벌 공급망 교란의 핵심 지대였다.
회사 소개에 나선 주용진 전무는 “자동차의 (바퀴 방향을 조종하는) 전기조향장치(MDPS)에서 모터 구동용 전기 흐름을 제어하는 파워 모듈(전력반도체)을 주로 생산하고 있으며, 90% 정도는 현대모비스를 통해 현대자동차에 납품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현대모비스 공급업체로 지정돼 이듬해부터 양산 공급을 시작했고 지난해까지 누적 890만개를 공급했다고 한다. 지난해 기준 종업원이 53명인 이 회사 연간 매출은 190억원으로 집계돼 있다.
아이에이파워트론은 트리노테크놀로지, 오토소프트와 함께 ‘아이에이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아이에이가 일종의 지주회사 격으로 파워트론 57.2%, 트리노 50.7%, 오토소프트 65.0%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구조다. 트리노는 전력반도체 소자 설계·개발·제조·판매를, 오토소프트는 차량 전장용 반도체 소프트웨어 개발 및 검증을 맡고 있는 회사로 소개돼 있다.
그룹 전체적으로 전력반도체 분야에서 실리콘을 재료로 하는 웨이퍼 제조로 시작해 디바이스(소자), 모듈 생산을 아우르고 있다. 트리노가 디바이스를, 파워트론이 모듈 영역을 주로 담당하는 형태다. 웨이퍼 생산은 중국에 두고 있는 합자 법인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에이는 소자나 모듈을 직접 생산하지는 않고 소프트웨어 및 제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다.
최재식 아이에이 전무는 “실리콘 기반에선 웨이퍼, 디바이스, 모듈의 밸류체인(가치사슬)을 다 갖추고 있다”며 “(아이에이는) 본래 멀티미디어칩 전문업체로 시작해 2010년 (공동대표이자 1대 주주인) 김동진 회장 취임 뒤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 부회장 출신인 김 회장은 2010년 아이에이(옛 씨엔에스테크놀로지)를 인수한 뒤 이를 바탕으로 파워트론, 트리노를 잇따라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했다.
현대차 고위 임원 출신의 소유·경영 회사라 수월하게 매출을 올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아이에이 쪽은 “파워트론에서 현대차 관련 매출 비중이 높은 건 국내 완성차메이커가 사실상 현대차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아이에이그룹 전체로는 (그 비중이) 20% 남짓”이라고 밝혔다. 또 “트리노가 중국에서 10년 이상 사업을 벌이며 지난해 30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기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현대차 관련 매출은 전무하다”고 덧붙였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 교란은 반도체 소자·모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 쪽에도 악재였다. 오광훈 트리노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자동차 공급망이 왜곡되고 자동차 부품 수급이 잘 안 되니 생산이 안 되고 (아이에이 쪽도) 덩달아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기회 요인이기도 했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자동차 분야는 진입 장벽이 높고 커스터머(고객사)가 초대할 때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이다. 작은 회사들이 좋은 물건을 만들었다고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기존 관행이 코로나 이후엔 깨지고 있다. 기능적으로 적용 가능한 부품은 적극적으로 채택하겠다는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신생 전기차 회사들이 많이 생겨나는 추세와 맞닿는 지점이다.
이를 반영하듯 주력 회사인 아이에이 매출은 2019년 678억원에서 2020년 584억원으로 떨어졌다가 812억원으로 반등했다. 영업이익은 27억원, 44억원, 67억원으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아이에이는 앞으로 중점을 둘 새로운 분야로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반도체를 꼽고 있다.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흐름에 맞춘 행보다. 실리콘카바이드 기반의 전력 반도체는 기존 실리콘 반도체에 견줘 10배 높은 전압과 수백도의 고열을 견디는 동시에 두께는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전기차의 주행 연장과 충전 시간 단축에 필수적인 요소로 꼽히는 까닭이다. 아이에이 쪽은 “실리콘카바이드 기반의 전력반도체 설계 기술을 이미 확보해 양산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며 “부산 기장군에 5천평 규모의 부지를 확보해놓고 있다”고 밝혔다.
실리콘카바이드 전력반도체는 지난 4월 에스케이그룹 투자전문 지주회사인 에스케이(주)가 예스파워테크닉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했을 때 업계에 화제를 뿌린 실마리였다. 당시 에스케이 쪽은 “국내에서 실리콘카바이드 전력 반도체 기술을 가진 기업 리스트를 추려보니 7개 정도 나오는데 양산까지 할 수 있는 곳은 예스파워 뿐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김동진 회장은 “아이에이는 매출액의 4% 이상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전체 인력의 약 15%를 연구개발 인력으로 구성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미래 자동차 시장으로 넓혀 가고 있다”며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앞으로 300조원 이상의 거대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선제 투자로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가능한 통합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600조원에 이르며, 차량용 반도체는 10%가량인 60조원 수준으로 업계에선 추산하고 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62살의 ‘컵 떡국’ 밥상…월 58만원에도 존엄을 지키는 방법
- 오늘은 36도 폭염…태풍 ‘에어리’ 제주·남해안 간접영향
- 방충망에 1㎝ ‘짝짓기 벌레’ 덕지덕지…“폭염인데 문도 못 열어”
- “이준석 진짜 가만두면 안 된다”…토사구팽 뒤 ‘윤핵관 시대’ 올까
- 여자 다리 40분 훔쳐봐도 대법 “무죄”…적용할 죄목이 없다
- 박지현 “민주당 대표 출마…이재명, 대표 되면 정치보복 방어 급급”
- ‘이자 장사’ 경고 들어가자…시중은행, 대출 금리 줄줄이 인하
- 정유4사, 수출액 ‘역대 최대’ 기록…반도체 이어 2위
- ‘누리호’ 카이스트 큐브위성도 사출 성공…“양방향 교신 시도”
- [논썰]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윤석열 정부가 소환한 악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