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회사는 유급병가 안 되는데..'상병수당' 받을 수 있을까요?

박준용 2022. 7. 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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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3개년 시범사업 시작
최저임금의 60%로 지급액 적고
프리랜서 등은 포함안돼 한계
유급병가제와 '패키지 정책'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4일부터 질병·사고로 일하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최저임금(2022년)의 60%를 지급하는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시작된다. 정부는 ‘아프면 쉴 권리’의 첫걸음을 뗐다고 평가하지만, 상병수당 지급액이 적고 지급대상에도 사각지대가 있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4일부터 내년 6월30일까지 ‘한국형 상병수당’ 도입을 위한 1단계 시범사업을 시작한다고 3일 밝혔다. 상병수당은 업무 외 질병, 부상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운 경우 치료에 집중할 수 있게 소득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정부는 2025년 보편적 도입을 목표로 3년간 3단계에 걸쳐 시범사업을 진행한다. 정부는 우선 예산 약 110억원이 투입된 1단계 시범사업에서 공모를 통해 선정된 6개 지역에 서로 다른 3가지 모형을 적용한 뒤 정책효과 등을 분석한다는 방침이다.

시범사업 모형은 △입원여부 △급여기준 △보장기간(국민건강보험공단이 확정한 근로활동불가기간이나 입원일수에서 대기기간을 제외한 일수) 등 조건에 따라 3가지로 나뉜다. 경기 부천과 경북 포항(모형1)은 입원 여부와 관계없이 질병·부상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상병수당을 지급한다. 대기기간은 7일, 최대 보장기간은 90일이다. 서울 종로와 충남 천안(모형2) 역시 근로활동이 불가능한 기간에 대해 상병수당을 지급하지만 대기기간 14일, 최대 보장기간은 120일이다. 전남 순천과 경남 창원(모형3)은 입원하는 경우에만 상병수당을 지급한다. 대기기간은 3일이며 최대 90일간 지급한다.

보건복지부는 “상병수당은 부상·질병으로 인한 소득 상실 및 빈곤의 위험에 대응해 근로자의 건강권을 증진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회안전망”이라며 “상병수당 제도가 안착된다면 주기적인 감염병 상황에서 이 제도를 유연하게 활용해 직장을 통한 감염병 확산을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프면 쉴 권리’는 국내에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그 필요성은 이전부터 제기돼왔다. 실제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조사를 보면, 취업자의 51.9%가 10년 내 일하기 어려울 정도의 질병·부상을 겪었다. 또 10년 이내 아팠던 노동자의 35.8%는 평균 6.18개월간 소득이 줄었고, 소득상실 우려 등으로 아픈 노동자의 약 30%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한국·미국(일부 주 도입)을 제외하곤 모두 상병수당 제도가 있다.

상병수당 시범사업 홍보 포스터. 보건복지부 제공.

다만 전문가들은 시범 사업 추진 방향과 실효성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정부는 상병수당으로 최저임금의 60%를 지급한다는 방침인데, 향후 사업 추진 과정에서 금액 재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실질적으로 아파서 치료를 못받는 사람들이 하루 4만원의 상병수당을 받고 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향후)지급액을 높이고, 지급 기간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최저임금은 9160원으로, 상병수당은 하루 4만3968원이다. 반면 국외 나라들은 최저임금이 아닌 근로능력상실 전 소득의 60~70% 이상을 상병수당으로 지급하고 있다.

프리랜서 등 다양한 직종으로 상병수당이 폭넓게 지급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시범사업에서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직전 1개월 이상 가입) △고용보험 가입자(특수고용직 노동자·플랫폼 노동자 등 포함, 직전 1개월 이상 가입) △자영업자(직전 3개월 이상 사업자등록 유지하고 전월 매출 191만원 이상)가 상병수당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프리랜서 등은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남재욱 한국교원대 교수는 “상당수의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을 어떻게 포괄할 것인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고용보험가입자로 규정하기 보다 건강보험을 기반으로 더 보편적으로 적용할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병수당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유급병가 도입도 필수다. 국내에서 유급병가는 법제화되지 않았고, 개별 기업이 노동자와 단체협약 등을 통해 일부 도입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2020년 병가제도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민간·공공 등 사업체 2500곳 가운데 병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사업장은 21.4%에 그쳤다. 특히 상시노동자가 5인 미만인 사업장은 12.9%에 그친 반면, 1000인 이상 사업장은 96.7%가 병가제도를 운영 중이었다. 또 무급이 아닌 유급병가는 전체 병가 도입 사업장의 63.8%였고, 평균 지급기간은 25.5일이었다.

유급병가를 쓸 수 없고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의 경우, 상병수당 대기기간 동안 급여가 보장되지 않아 질병·부상 상황에서도 참고 일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국외에서는 법정 유급병가 기간과 대기기간이 같아, 대기기간에 유급병가를 쓰고 이후 상병수당을 받는게 자연스런 수순이다. 김진석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현재 ‘유급병가는 기업이 알아서 하라’는 식이면서 시범사업에서는 지급 대기기간을 3~14일로 잡아놨다. 상병수당을 신청하는 데 상당한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유급병가 법제화와 상병수당은 연계된 ‘패키지 정책’으로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유급병가 제도가 규정되지 않고 상병수당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들이 기존 유급병가를 축소·폐지할 수 있다는 점도 ‘패키지 정책’이 필요한 이유라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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