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클릭하기] '엄브렐러 아카데미'와 엘리엇 페이지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2022. 7. 3.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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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홍성일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여의도역(!)에서 시작될 새로운 모험을 암시하며 넷플릭스의 <엄브렐러 아카데미> 시즌 3(6월22일 공개)가 마무리 되었다. 의뭉스러운 억만장자 레지널드 하그리브스(콜름 피오 분)와 그가 입양한 전 세계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난 초능력자들의 좌충우돌을 다룬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2019년 공개 후 큰 인기를 구가했다. 시즌 1(2019)은 여러 익숙한 슈퍼 히어로 영화들을 패러디하고 비튼 서사가 색다른 재미를 주었고 시즌 2(2020)는 시간 여행을 통해 미국 현대사의 분기점인 1960년대를 누비며 케네디 암살, 미국·소련 냉전, 히피 문화 및 인종·성소수자 인권 운동 등을 유연하게 조립했다. 세 번째 시즌은 미묘하다. 반복되는 지구 종말 소재의 식상함, 새로 소개된 스패로우 아카데미 캐릭터들의 진부함은 시리즈가 장기화되며 창의력이 고갈되는 여러 미국 드라마의 용두사미를 아슬아슬하게 시험한다.

▲ 넷플릭스 드라마 '엄브렐러 아카데미' 포스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3를 곱씹게 되는 이유는 바냐 하그리브스와 빅터 하그리브스를 연기한 엘리엇 페이지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20년 말 성전환수술을 하며 엘런 페이지에서 엘리엇 페이지로 개명했다. 시즌 2의 연이은 성공으로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다음 행보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한껏 올라온 시점이다. 후속 시즌에서 과연 엘리엇 페이지가 어떻게 돌아올 수 있을까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는데,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결정은 단순명료했다. 시즌 2에서 성소수자로 등장해 가슴 저미는 사랑을 보여준 바냐는 시즌 3의 에피소드 2에서 짧게 머리를 치고 형제·자매들에게 자신을 빅터라 불러달라고, 자신은 언제나 빅터였다고 선언한다. 무슨 문제(issue)가 있냐란 빅터의 말에 가족의 반응은 대수롭지 않다. 바뀐 스타일이 어울린다고 말하며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그를 빅터라 부른다. “정말 잘 됐다”(truly happy for you, viktor)는 말과 함께.

사실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모든 형제·자매들은 첫 시즌부터 가족 관련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양부로부터의 인정, 형제·자매에 대한 콤플렉스, 이혼, 부모 되기 등 여러 가족 문제가 캐릭터들의 발목을 잡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주어진 환경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개조하고 개선하며 결정한다. <엄브렐러 아카데미>에서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으며 배우 경력 내내 자신의 성정체성을 극 안으로 녹여내려 했던 엘리엇 페이지가 이 드라마에 캐스팅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전 세계 관객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었던 첫 순간이 엑스맨 시리즈였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엑스맨: 최후의 전쟁>(브랫 레트너 감독, 2006)에서 돌연변이들을 '교화·정상화'하는 치료제 큐어에 맞서는 뮤턴트 키티 프라이드로 분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찬 열여섯 10대 미혼모 역할을 맡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오른 <주노>(제임스 라이트먼 감독, 2007)는 어떤가. 자칫 모성애 이데올로기나 신파로 흐를 자극적 소재를 한 개인의 성적 결정권, 재생산권에 대한 이야기로 설득력있게 바꿔낸 데에는 그의 섬세한 연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 그의 경력 중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 <인셉션>(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10)도 상징적이다. 그가 연기한 파리의 대학원생 아리아드네는 그리스 신화에서 아득한 미로를 벗어나게 해준 길잡이 '아리아드네의 실'을 연상시킨다.

▲ 2020년 말 성전환수술을 한 엘리엇 페이지(Elliot Page).

2014년 커밍아웃 이후 엘리엇 페이지의 경력은 보다 자기 주도적으로 바뀌었다.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상업영화에서 만날 기회는 줄었지만 동성결혼 및 그와 관련된 법제도 정비를 촉구하는 <로렐>(피터 솔렛 감독, 2015), 성소수자들이 각본과 연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성소수자 공동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층적으로 그려낸 넷플릭스 시리즈 <테일 오브 더 시티>(2019)가 눈에 띈다.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오랜만에 엘리엇 페이지가 등장하는 대규모 상업 작품이었다. 여기서도 고집스레 자신의 극 바깥, 그리고 극과 극 사이의 정체성 분투기를 극 안으로 끌고 오는 엘리엇 페이지의 존재감은 성소수자를 양념처럼 등장시켜 상업성을 제고하는 퀴어 베이팅(queer baiting)과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구별시키는 지점이다. 성소수자 인권의 달 6월에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세 번째 시즌이 찾아온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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