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지는 '전세의 월세화' 대책은 있나

박송이 기자 2022. 7. 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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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기준금리 인상 조치에
전셋값 상승..대출 이자 부담
세입자, 떠밀리듯 '월세 선호'
지난 6월 21일 추경호 부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임대차 시장 안정 방안 및 3분기 추진 부동산 정상화 과제’를 발표했다. / 연합뉴스

‘8월 전세대란’ 우려가 잦아들고 있다. ‘8월 전세대란’은 계약갱신청구권이 도입된 지 2년이 되는 오는 8월에 그동안 묶여 있던 임대료가 한꺼번에 오를 수 있다는 전망에서 제기됐다. 8월이 임박했지만 우려와 달리 전세 시장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지난 5월 94.4를 기록하는 등 올해 들어 줄곧 100을 밑돌고 있다. 전세수급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전세를 구하려는 수요보다 전세를 내놓는 공급이 더 많다는 뜻이다. 공급 매물보다 수요가 적다 보니 아파트 전셋값은 하향 안정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박원갑 KB부동산 수석연구위원은 “통상 계약만료 2~3개월 전에 전세를 알아보러 다니는데 현재 전세 수요가 많지는 않다”며 “또 이미 전셋값이 너무 많이 오른 상태라 가격 상승이 선반영된 측면도 있어 전세대란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전국적인 전세난의 우려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서울은 공급이 줄어 불안 요인이 상존하지만 인천, 대구, 부산 등은 공급물량이 꽤 많다. 지역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지만 전국적인 임대차 시장 불안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전망도 낙관적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6월 29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현재는 금리도 오르고 새 정부의 분양 및 임대차 정책이 계속 발표되고 있어서 폭발적 대란이 있을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고 말했다.

■6·21 부동산 대책의 제한적 효과

정부가 지난 6월 21일 발표한 ‘6·21 부동산 대책’도 전·월세 시장 안정화에 초점을 맞췄다. 다주택자 및 임대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민간 차원에서 전·월세 공급을 늘려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게 골자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직전 계약대비 임대료를 5% 이내로 인상한 임대인에게 혜택을 주는 ‘상생임대인’ 제도의 자격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양도세 비과세, 장기보유특별공제 적용을 위한 2년 의무거주 요건을 없앴고, 다주택자라도 1주택자 계획이 있다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분양가상한제 적용 아파트의 실거주 의무를 대폭 완화해 새 아파트에 즉시 입주할 의무를 없애는 등 다주택자의 보유 부담을 줄였다.

부동산업계는 공급물량을 늘리려는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주택매매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이번 대책이 임대차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 전망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정책”이라며 “우회적으로 시장에 전·월세 물량을 공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바뀐 상생임대인 제도가 특정 시기에 갭투자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올 하반기 중에 갱신계약이 만료되는 물건을 전세를 끼고 매수한 후, 신규계약 시 전세보증금을 시세대로 올려받고, 2년 후 다음 계약 때는 5% 이내로만 인상하면 상생임대인 제도에 따라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갭투기 우려가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침체된 부동산시장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원갑 위원은 “집값이 가파르게 우상향할 것이라는 집단적 믿음이 있어야 갭투자를 하는데, 지금은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이라 큰 영향은 없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가속화되는 전세의 월세화

‘8월 전세대란’ 가능성은 낮게 점쳐지고 6·21 정책에 따른 시장변화도 제한적이리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하반기 전·월세 시장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은 ‘전세의 월세화’다. ‘전세의 월세화’는 과거부터 있어온 장기 추세이기는 하나 최근 달라진 요인이 있다. 바로 세입자들의 월세 선호 현상이다. 과거에는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했다면 최근에는 수요자인 세입자들의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6월 27일 열린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2022년 하반기 건설·부동산 경기 전망 세미나’에서 김성환 부연구위원은 “하반기에 갱신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에도 전세가 상승분에 대한 부담이 커 월세, 반전세를 택하는 세입자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효선 위원은 “시세가 이중으로 형성된 지역은 앞으로 전세가가 상승할 테니 그때 가서 전세보증금을 올리기보다 미리 월세로 빠르게 전환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5월 서울에서 전세를 제외한 월세, 준월세, 준전세 임대차 거래량은 3만4540건으로 집계됐다. 월세는 보증금이 월세의 12개월치 이하인 임대차 거래, 준월세는 보증금이 월세의 12~240개월치인 거래, 준전세는 보증금이 월세의 240개월치를 초과하는 거래를 뜻한다. 올해 1~5월 거래량은 2011년 관련 통계를 시작한 이래 같은 기간 기준으로 가장 많은 수치로, 3만건을 넘은 건 올해가 처음이다. 월세 가격의 상승세도 이어지고 있다. KB부동산 월간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6월 수도권 아파트 월세지수는 103.6을 기록해 최고치를 경신했다. 월세 수요의 증가, 그에 따른 월세 가격의 상승세는 앞으로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전세의 월세화’ 배경에는 큰 폭으로 오른 전셋값이 있다. 2020년 이후 전셋값이 빠르게 치솟으면서 전세의 문턱 자체가 높아졌다. KB부동산에 따르면 2020년 7월부터 2022년 6월까지 서울의 전셋값은 23.8% 올랐다. 무주택 청년이나 신혼부부 혹은 아직 중산층에 이르지 못한 서민들은 큰 폭으로 상승한 전세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워 불가피하게 월세를 낀 계약을 할 수밖에 없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주요 도시에서 전세 수요자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보다 전세보증금의 가격대가 높게 형성되다 보니 임차인들도 신규계약 시 월세 전환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울의 부동산 중개업소 / 연합뉴스

■금리 인상도 월세화 부추겨

계속되는 금리 인상 추세도 ‘전세의 월세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전세대출 금리는 대부분 변동금리로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에 연동한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코픽스도 상승해 세입자의 전세대출 상환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물가인상 속도에 대응하기 위해 연말까지 2~3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세대출 이자가 월세보다 비싸지는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월세 전환율은 전세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연 환산이율이다. 지난 6월 KB부동산의 월간 주택가격동향을 보면 서울 아파트의 전·월세 전환율은 3.19%, 수도권 아파트의 전·월세 전환율은 3.80%로 나타났다. 지난 6월 27일 기준 4대 시중은행의 최근 전세대출 금리는 연 3.99%에서 5.01%까지 올라 전·월세 전환율을 앞질렀다. 이는 은행에 갚아야 하는 전세대출 이자가 집주인에게 내는 월세보다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세입자들로서는 전세대출 이자를 부담하기보다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는 편이 합리적인 선택이 됐다. 향후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러한 선택은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월세는 2년 동안 정해진 액수를 지불하면 되기 때문에 금리 인상에 따라 더 많은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전세대출보다 안정적이다.

■현실적인 지원책 마련 필요

최근 들어 가속화된 ‘전세의 월세화’ 현상은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만큼 이에 맞는 현실적인 금융지원 정책을 필요로 한다. ‘6·21 부동산대책’에서는 임차인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청년 저소득층 임차인에 지원하는 ‘버팀목 전세대출’의 보증금 한도와 대출한도를 수도권의 경우 각각 3억원에서 4억5000만원으로, 1억2000만원에서 1억8000만원으로 올렸다. 이러한 지원책은 이미 전셋값이 치솟은 수도권에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전공 교수는 “수도권은 전셋값이 2억~3억원 상승했기 때문에 현실적인 수준에서 전세대출 한도를 높여줘야 한다”며 “월세 전환 추세가 저소득층에게 더 타격이 됨을 감안할 때, 월세 보조나 월세액 공제를 확대하는 등 저소득층의 월세 부담 경감을 위한 구체적 방안들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택임대시장의 월세화 진행과정과 점유형태의 변화요인 분석’(정건섭 외·2018)에 따르면 ‘전세의 월세화’는 소득계층별 주거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전세의 월세화’가 이어지면서 월세가구의 상향이동 가능성이 줄어들고 저소득층의 월세 고착화 현상이 나타난다. 논문은 일종의 주거사다리 역할을 했던 전세 비중이 줄어들면서 사회계층 간의 이동 가능성도 낮아진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월세가구가 자가로 주거안정성을 확대해나갈 수 있도록 추가적인 정책개발에 나서라고 주문한다. 저소득계층의 주거선택권을 확대할 수 있는 저렴한 주택의 공급확대, 금융지원 프로그램 개발, 공공임대주택의 지속적인 공급확대 등 다양한 정책의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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