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못할 사랑, 파괴 대신 선택한 '헤어질 결심'

한겨레 2022. 7. 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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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
헤어질 결심
한 남성의 추락사, 아내의 알리바이
경찰과 용의자로 만난 해준과 서래
누아르인 듯하지만 촘촘한 멜로
프레임 속 밀도 높은 사랑 이야기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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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영화에서 잃어버린 건 사랑이었다. <헤어질 결심>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사랑 이야기가 넘쳐나는 것 같지만, 진실하게 사랑에 집중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어떤 영화들은 스스로 사랑 이야기임을 자임할 때에도 사랑보다는 상실에 대해 말하거나 억울함에 집중하고, 폭력이 가져오는 쾌락에 취하기도 한다. 때로는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를 위로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핑계를 댄다. 러브 스토리가 뒤늦은 성장담이 되어버리는 경우는 흔하다.

물론 사랑은 이 모든 것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 사랑은 순도 100프로의 단일한 감정도, 상황도, 사건도 아니다. 다만 <헤어질 결심>은 사랑을 핑계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그런 유의 영화가 아니다. 어지간해서는 한줌의 볕도 허락하지 않는 가상의 도시 이포의 안개처럼, 사랑은 프레임 속에 밀도 높게 고여 있다.

해준이 ‘헤어질 결심’을 한 이유

영화는 한 남자의 추락사로 시작된다. 남자의 이름은 기도수. 자기 물건이라면 어디에나 이름을 새길 정도로 소유욕이 강한 남자다.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은 수사 과정에서 그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난다. 기도수는 서래에게도 ‘KDS’, 자신의 이니셜을 새겨놓았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서래는 남편의 죽음에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해준은 그런 서래를 용의선상에 올리고 조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서래의 알리바이가 증명되고 기도수의 유서가 발견되면서 사건은 자살로 종결된다. 그러는 사이, 해준은 서래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영화는 필름 누아르의 장르 관습을 차근차근 따라간다. 명랑하달 것까진 없지만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일상을 살아가던 건실한 남자와 그 삶에 갑자기 뛰어든 아름답고 위험한 여자. 여자에게 미혹된 남자는 진실을 캐는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여자의 결백을 믿어버린다. 그리고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여자 서래가 바로 남편을 잡아먹은 ‘검은 과부’(black widow)다.

해준은 이내 서래의 알리바이가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다. 일반적인 필름 누아르였다면 지금이 남자가 이성을 잃고 날뛸 타이밍이다. 그녀는 나를 이용한 걸까 사랑한 걸까, 서래의 진심은 무엇일까, 나는 그저 호구였나, 제기랄! 정신이 붕괴된 남자는 백이면 백, 여자를 잔혹한 응징의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판결은 언제나 유죄, 남자를 기만한 죄 값은 매번 여자의 목숨으로나 갚을 수 있다.

그런데 해준은 다르다. 그는 진실 앞에서 폭주하지 않고 그 안에 기거한다. 자아의 ‘완전한 붕괴’를 온전히 끌어안은 채로, 그는 자신의 오판에 대해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다. 이제 해준은 안다, 서래에게 죄가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해준은 이해하고 있다, 자신에게 서래를 단죄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해준은 서래 옆에서 이 사랑을 학대하기보다 ‘헤어질 결심’을 한다. 자신은 무너졌지만 타자를 깨부수려 하지는 않는 것. 그것이 해준의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이다. 그리하여 해준은 서래를 놔준다. 자신이 찾은 결정적인 증거를 서래에게 건네고 “아무도 찾지 못하게 바다에 던져버리라”고 말하면서.

컷이 바뀌면 영화의 시간은 13개월 뒤로 훌쩍 넘어가 있다. 해준은 근무하던 부산을 떠나 안개와 원전의 도시 이포로 이주했다. 부산에서 함께 일하던 후배 수완(고경표) 대신 경찰 내 ‘왕따’인 연수(김신영)가 해준을 수행한다. 더 이상 폭력과 살인은 없다. 자잘한 도난 사건들만이 해준의 삶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잠을 자는 것도 깨어 있는 것도 아닌, 죽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살아 있다고 하기도 애매한 상태. 그러던 어느 날 이포에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공교롭게도 사건의 피해자는 서래의 ‘다음 남편’ 임호신이다. 그렇게 폭력, 살인, 서래와 함께 잠과 생기가 해준에게 돌아온다. 어쩌면 그래서 서래와 해준은 동류다. 둘 다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하고, 둘 다 인자하지 않으며, 둘 다 무언가가 파괴된 현장에서야 비로소 바이털 사인이 움직인다.

씨제이이엔엠(CJ ENM) 제공

새로운 수사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깨닫고 만다. 이 영화는 필름 누아르가 아니라는 것을. 해준이 “나는 완전히 붕괴되었어요”라고 말하는 그 장면에서 영화는 누아르에서 멜로드라마로 전환됐고, 관객들의 마음도 “저 젊고 예쁜 여자가 왜 그런 늙은 남자랑 결혼했을까?”라고 질문하는 수완의 마음에서 “아, 불쌍한 여자구나”라고 말하는, 서래에게 공감하는 연수의 마음으로 이동해 왔다는 사실을. 놀랍게도 관객성의 전환은 해준이 아니라 서래의 마음에 동기화되어 있다. 서래는 해준에게 말한다. 그가 붕괴를 고백했을 때 “나의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여기에 이르러 영화의 카메라가 서래의 시선을 담아내던 이질적이고 도발적인 방식이 이해된다. 서래는 애초에 타자화된 대상이 아니었다.

오역이 만들어낸 멜로의 순간

영화는 영원한 미결(未決)을 통해 사랑을 완결(完決)한다. 그건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방식이지만 끝내 설득당하고 마는 건 영화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누아르와 멜로를 엮고, 그렇게 해준과 서래의 관계를 정밀하게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인인 해준과 중국인인 서래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가능한 한 정확하게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건 ‘꼿꼿한’ 사람들의 특징이다. 해준은 늘 ‘쉬운 말’을 쓰려고 하는데, 그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와 목적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서래는 종종 음성통역기와 사전을 사용했다. 번역은 늘 실패를 담보하는 과정이지만, 적어도 두 사람 사이에서 그 실패는 질문과 답변을 통해 보완된다. 돌이켜보면 번역기가 오역한 “심장”이라는 단어가 서래의 입을 통해 “마음”으로 수정되었던 그 순간, 누아르와 멜로는 교차되고 있었다.

이 글은 시작부터 이미 실패였다. 영화는 문자로 완벽하게 번역되지 않는다. <헤어질 결심>은 영화가 단일한 영화 언어로 수렴될 수 없는 종합예술임을 기어코 증명해내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을 극장으로 초대하는 데 성공했다면 충분하다. 그렇게 미결을 통해 완결을 꿈꿔본다.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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