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삼풍 붕괴 생존자 "무작위한 죽음..덤으로 사는 것"
대한뉴스 1979년 10월 16일
서울 성수동 뚝섬유원지에서 강남구 압구정동을 잇는 성수대교가 개통됐습니다. 박 대통령은 준공식에 참석해 1,160m의 성수대교를 건너면서 한강 주변 개발 계획 등을 관계관에게 물었습니다. 한강에서 11번째로 놓인 성수대교는 4차선 규모로 한강다리 가운데 가장 긴 다리인데, 양쪽에 인터체인지가 설치돼 논스톱으로 달릴 수 있습니다.
“네, 방금 들어온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서울 성수대교 일부 구간이 무너져서…. 무슨 사고입니까?”
“네, 오늘 오전 7시 반쯤 성수대교가 무너졌습니다.”
개통 후 15년 뒤, 이 다리는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상판 50미터가 내려앉으면서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습니다. 사상자 대부분 출근길 직장인과 등교하던 여고생이었습니다.
당시 의경으로 경찰의 날 표창을 받으러 가다 사고를 당한 이경재 씨는 이때의 상황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합니다.
<인터뷰>이경재/성수대교 붕괴 사고 생존자
기절했다 눈을 뜨니까 앞에 버스. 버스가 뒤집어져 있는 거. 그다음에 하여튼 버스 뒤쪽에,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머리가 이렇게 나와 있었죠. 뒤집어서 떨어졌으니까 차가 충격에 의해서 납작해졌겠죠. 그리고 내려서 보니까 처음에는 좀 무서웠는데 비명소리 막 들리기 시작했고. 강 쪽 보니까 벌써 사람이 떠내려가고 있고. 그래서 그쪽 사람 구조를 하고 버스 쪽으로 이제 갔죠. 갔더니 막 진짜 처참했어요. 사람이…. 아침 출근 시간이고 또 다 서서 가잖아요, 만석으로. 그러다 보니까 사람 위에 사람이 막 이렇게 겹쳐 있었죠.
기억은 고통이 됐습니다.
다친 몸으로 동료들과 구조작업을 했던 이경재 씨는 한 남자의 눈빛을 잊지 못합니다.
<인터뷰>이경재/성수대교 붕괴 사고 생존자
그분이 살려 달라 막 그랬어요. 애원했어요, 나한테. 그래 가지고 어떻게 뭐 방법이 없는데 그냥 조금만 기다리시라고. 이제 구조대들이 올 거라고 설득을 하고 춥다 해가지고 덮어주고 하는데 보트가 오더라고요. 보트 온다고 얘기를 딱 하려고 했는데 돌아가셨어요. 그게 하나의 머리에 또 꽂혀 있죠.
다리가 무너지고 바로 1년 뒤. 이번에는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서 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
저녁 6시를 3분 앞둔 5시 57분. 백화점 건물 두 동 가운데 한 동이 붕괴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20초였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악몽이 되던 순간입니다.
<인터뷰>이선민/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
그날 백화점에 저 같은 경우는 아르바이트 하러 갔지만 제가 아는 사람은 유학 가야 되는데 뭐 필요한 거 사러 갔대요. 다들 쇼핑하러 가면서 그날 거기서 비명에 갈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요?
천5백여 명이 숨지거나 다쳤는데, 30명은 끝내 시신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 참혹한 현장에서 이선민 씨는 간발의 차로 살아남았습니다.
<인터뷰>이선민/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
원래 있던 데에서 식품 쪽의 사람들이 불러가지고 ‘예’하고 대답을 하고 이렇게 가는데 뒤쪽으로 이제 건물이 무너진 거예요. 그 상판이 차례차례 이렇게 떨어져서 시루떡처럼 됐단 말이죠. 뼈도 추스를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거기를 아주 절묘하게 저는 이제 2~3초 사이에 지나왔고….
무너진 건물에서 겨우 빠져나왔지만 온몸은 파편에 맞아 피투성이가 됐습니다.
<인터뷰>이선민/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
무너진 동 앞쪽에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뒤에서 이제 바람이 불었고 날아갈 것 같아서 이렇게 엎드렸는데 이미 뭐 여기는 다 이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상처가 난 거죠. 그때 이렇게 돌멩이가 이렇게 스쳐 지나갔는데 살이 이렇게 벌어졌어요.
참사 이후 보상금을 받았지만, 그 액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의 커다란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인터뷰>이선민/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
이 마음의 고통, 이 찢어진 그 영혼, 그러니까 그 이후로 사고 이후로 기뻤던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기쁨의 역치가 굉장히 낮아졌어요. 생에 대한 그런 이런 기쁨들을 빼앗길, 그 돈 받고 빼앗길 바에는 내가 진짜 그 돈 돌려주고 싶다니까요, 벌어서...
재난 이후의 삶은 감사하기만 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인터뷰>이선민/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
‘얼마나 감사할까’라고 생각할 텐데 그냥 나머지는 덤으로 사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까 이게 스무 살의 제가 너무 무작위한 죽음을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에 한순간에 기준도 없이 맥락도 없이 나이가 많고 적음, 종교가 있음 없음, 뭐 가난하고 부자, 성공하고 아니고가 없이 서 있던 자리에 의해서 그냥 죽는다는 게 너무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그러니까 어차피 죽을 건데 공부를 왜 하고 결혼을 왜 하고 사랑을 왜 하고 왜 이런 거에 되게 어렸을 때부터 이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허무주의를 넘어서 이제 그다음부터 이제 무기력해져 버렸죠. 완전히.
트라우마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 치료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이선민/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
저 같은 경우는 이제 나중에 ‘롱텀 PTSD’라는 진단을 받아요. 그게 그러니까 사고 이후에 트라우마가 찾아온 게 아니라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에 찾아왔다고 해서 이제 롱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학명이 붙었는데 당시 사고 이후에도 계속 이상했죠. 대인관계도 안 좋았고 주변 사람들이 ‘너 변했어’라고 했을 때도 그런데 눈치채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우울했고 집에 들어가서 항상 그 생각을 했어요. 언제든지 어디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눈이 익숙해졌으면 좋겠어서 불도 다 끄고 낮에 혼자 있어도 커튼을 다 쳤어요. 항상 어둡게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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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생존자 이경재 씨의 트라우마도 30년 가까이 그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인터뷰>이경재/성수대교 붕괴 사고 생존자
다리에 이렇게 우리가 차를 갖고 서게 되면 완충작용 때문에 흔들려요. 이게 기분 되게 나빠요. 약간 그 기분하고 비슷해요, 떨어지기 직전의….
(무서움? 공포 같은 건가요?)
네, 흔들려요, 차가. 그래서 저 같은 경우는 영동대교라든가 차가 밀리는 데를 잘 안 가요. 만약에 그런 상황이 됐다 그러면 다리 한가운데 멈춰 섰다면 그 느낌이 굉장히 싫어서, 움직이는 느낌이 싫어서 진짜 차를 막 돌려서 오고 싶은 충동도 생겨요.
사고 이후 트라우마 치료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인터뷰>이경재/
쉽게 이야기해서 옛날에 그런 이야기 있잖아요. 군인들은요. 군에서 죽으면 뭐다? 안 죽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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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기자 (ginitr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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