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판결과 민심..美 낙태권 폐기서 확인된 거리
(워싱턴=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연방 차원의 낙태 권리를 인정했던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미국 대법원의 지난달 24일 결정이 던진 화두 가운데 하나는 판결과 민심과의 관계다.
1973년에 이어 1992년 재확인됐던 연방 차원의 낙태 권리가 약 50년만에 공식 폐기됐던 시점을 전후해서 나온 여론조사에서는 이번 결정과 달리 '낙태권 유지'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가령 대법원 판결 전인 5월 2일 나온 갤럽 조사에서는 55%가 낙태권을 지지했다. 대법 판결 직후에 나온 미국 CBS방송의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9%가 '대법원 판결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반면 연방 대법원에서는 9명의 대법관 중에 5명이 찬성했고 4명이 반대, 민심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미국 진보 진영에서 이번 결정을 정치적 판결이라면서 분노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 때문이다.
대법원을 구성하는 대법관의 성향이 보수 우위로 재편된 것 외에 외적 상황은 달라진 게 없는데 두 번에 걸쳐 반세기 동안 인정됐던 '헌법상의 권리'가 없는 것이 됐다는 인식에서다.
실제 이번 결정에 반대했던 진보 대법관 3명은 반대 의견에서 "법원이 흐름을 뒤집은 것은 하나의 이유 때문이고 오직 그 이유 때문"이라면서 "그것은 이 법원의 구성이 변화한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미국 최고의 사법기관인 연방 대법원이 보수 우위가 된 것은 트럼프 정부 때다.
종신직인 대법관은 사망, 사직, 탄핵 등의 경우에만 공석이 발생하게돼 후임이 임명되는데 공교롭게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 대법관을 임명할 수 있는 계기가 3번이나 생겼다.
이 때 들어간 3명의 보수 성향 대법관이 이번 판결에 손을 들어준 것이 헌법 해석이 변경된 결정적 이유인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판결 당일에 "내가 공약한대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면서 자신의 공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과는 반대로 보수 진영이 애초 '괴짜'인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낙태권 판결 폐기'였다는 말도 있다.
이와 관련, 트럼프 정부 출범 2년차인 2018년 만났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지지자는 당시 기자와 만나 "트럼프의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보수 진영에서 계속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은 낙태권 판결을 뒤집을 가능성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이번 판결은 미국 보수 진영의 큰 전략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며, 적지 않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런 시각으로 이번 사태를 보고 있다.
문제는 대법 판결 자체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될 경우 최고 사법 기관인 대법원이 받게 되는 타격이다.
민심과 거리가 있을 뿐 아니라 의도 자체도 순수하게 보이지 않을 경우 신뢰의 위기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진보 성향인 엘레나 케이건 대법관은 2018년 "우리한테 군대나 돈이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사람들이 행동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이 우리를 존경할 때"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때만이 대법원이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 대법원이 맞는 이번 위기가 일시적인지 근본적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갤럽 조사에서 미국 대법원을 '상당히' 또는 '꽤' 지지한다는 응답은 25%에 그쳤는데 일시적 현상이 아닐 수 있다는 의미다.
마이클 살라먼 위스콘신 주립대 교수는 AP통신에 "여론조사로 확인할 수 있는 특정 사안에 대한 지지는 왔다 갔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 제도에 대한 신뢰 자체는 탄력성이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결정으로 (대법원) 제도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지 지켜봐야겠지만, 신뢰를 회복하는 탄력성 측면에서는 한계에 이른 게 아닌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solec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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