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했기에 구속까지? 경북대 국악학과 채용비리 전말
최근 경북대 국악학과 교수 2명이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즉 현직 교수이자 심사위원인 자신들의 직위를 이용해서 교수채용이라는 국립대의 공적인 업무를 방해했다는 건데요. 특정 학과에서 교수 2명이 동시에 구속된 건 아주 이례적입니다. 그것도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며, 가장 공정하고 투명해야 할 국립대에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도대체 이들이 무슨 잘못을 한 건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리했습니다.
■ 파면 팔수록 수상한 채용 과정
경북대 국악학과 신입 교수 채용 과정이 수상하다는 소문이 나돈 건 이미 지난해 여름입니다. 가야금 전공 교수의 최종 후보에 오른 사람은 3명, 그런데 경북대 출신 후보자 C 씨가 사실상 내정됐다는 소문이었습니다.
당초 자교 출신 후보자를 선호하는 정도라고 판단했습니다.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학교, 학과에서 하는 방식인데다 딱히 비리라고는 할 수 없죠. 그런데 웬걸, 추가 취재가 진행될수록 수상한 정황이 계속 드러났습니다.
국악계 관계자
"거문고와 대금 교수님이 퇴임한지 2, 3년이 지났는데, 가야금 교수를 또 뽑는다는 게 이상했죠. 어떤 특정 인물을 뽑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나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A 교수 등의 입장에선 이대로 모든 게 끝이 났다면 좋았겠지만, 그러진 못했습니다. KBS 뉴스가 의혹을 제기하는 등 언론에서 잇따라 의혹을 제기했고, 국정감사에서도 이 사안이 언급되면서 결국 심사 채점표가 공개됐습니다. 현직 교수인 심사위원들이 C 씨에게는 최고 점수를, 그리고 다른 후보자들의 점수는 아주 낮게 준 점이 확인됐습니다. 탈락한 다른 두 후보자는 여러 콩쿠르에서 수차례 상을 받았고, 음반도 여러 장 발매한 국내 최고의 연주자들입니다. 듣는 이들의 취향에 따라 점수가 다소 차이 날 수는 있겠지만, 이 정도로 벌어질 수준이 아니란 거죠.
각종 자료가 공개됐고, 관련자들은 수사기관에서 진술했습니다. 지난 1월에는 학과를 대상으로 한 경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됐습니다. 그렇게 반년의 수사를 거쳐 구속영장이 발부됐습니다.
■ 관리 감독 시스템 있긴 한데... 현실에선 무용지물
경북대는 대구 경북을 대표하는 국립대로 역사와 전통이 깊고, 구성원들의 자부심도 큽니다. 그리고 좋은 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시스템들도 이미 갖추고 있습니다. 신규 교수 채용 과정도 채점 기준표 작성부터 학과와 단과대, 학교 본부의 심사 등 다섯 단계의 채용 과정을 통해 비리를 걸러낼 수 있도록 제도화해놨습니다.
문제는 이런 견제와 감시 시스템이 현실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국악학과 교수 구속은 시스템이 먹통임을 증명하는 사례가 됐습니다.
학교 관계자들은 시스템 붕괴의 이유를 '맹목적 학과 자율성 강조'에서 찾고 있습니다.
일부 교수들은 이 자율성을 방패 삼아 다른 학과, 대학 본부의 정당한 견제를 자율성 침해로 몰아가고 불필요한 간섭으로 치부해버립니다. 외부의 정당한 문제 제기에 대해 '우리 학문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왜 괜한 논란을 일으키냐?'라며 반발합니다. 이런 일은 국악학과처럼, 뭔가 정량적 평가가 어려운 분야에선 더 심하죠. 심지어 같은 학과 내부에서도 학문이나 관점의 차이에 따른 정당한 비판을 부당한 침해로 받아들이는 사례가 보입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학내에선 '잡음이 생겨선 좋을 게 없다', '좋은 게 좋은 것', '해당 학과에서 어련히 알아서 잘했겠지', '문제를 제기해봐야 듣지도 않는데' 등 무책임한 분위기가 서서히 확산합니다. '우리가 당신들 학과 일에 관여하지 않을 테니, 나중에 당신들도 우리 학과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의도된 무관심도 생겨납니다.
결국 학교는 '자율성'을 명분으로 한 거대한 무관심 속에 일부 교수들의 일탈을 제어할 수 없게 됐고, 철저할 것만 같았던 여러 단계의 감시 시스템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습니다.
분명 학문의 자율성, 학과 자율성은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신규 교수 채용과정이라는 공적인 영역을 침해할 수는 없는 겁니다. 학과 학문 자율성의 영역을 명확히 정의 내리고, 그 선을 지키도록 하는게 대학본부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공정성 시스템이 무너져 내리는데도 대학본부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대학본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발언은 "학과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 자율성의 영역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대학본부가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형철 / 경북대 교수회 전 의장
'학과의 자율성 문제다'라고 하지만 자율성도 주어진 틀 속에서 또 규칙을 지켜가면서 하는 것이 자율성이지 방종은 아니잖아요.
그런 맥락 속에서 본다면 이번 문제의 상당 부분은 본부가 관리, 견제하는 기능을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했다, 거기에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내에선 이번 기회를 통해 확실한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문제를 일으킨 이들에 대한 분명한 징계를 통해 교수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겁니다.
이시활 / 경북대 대학평의원회 의장 직무대행
이번 사건은 단대 심사위원회에서 문제를 제기했는데, 문제 제기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냥 넘어갔기 때문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됐습니다.
단대 심사위원회, 본부 심사위원회에서 책임자는 책임을 지고, 책임을 지는 처벌의 부분, 징계에 대한 어떤 부분이 한번 정화가 되고 나가야 앞으로 뭔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한편 경찰은 수사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채용에 문제가 있었고 그래서 심사위원 A, B 교수가 구속된만큼, 학과 내 다른 비리는 없었는지, 다른 학과나 학교에 비슷한 비리는 없었는지 확인하겠다는 겁니다. 수사 결과에 따라서 추가로 구속되는 교수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경북대는 구속된 교수들의 징계에 대해선 사법 기관의 판단을 지켜본다는 입장입니다. 1심 재판 결과는 나와야 해임이든 파면이든 결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교수 2명 구속으로 국악학과 학생들의 피해가 불가피한만큼, 이 부분에 대해선 확실히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학내 교수 채용 비리 사건으로 공정성을 잃은 경북대. 학교가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어떤 대안을 만들어내는지에 따라 학교의 위상도 크게 달라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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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 기자 (kinch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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