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가 얼굴 익히는 곳?" 비판에도 윤 대통령이 갔던 이유는 [박수찬의 軍]
냉전 시절이었다면 유럽에서만 활동했을 나토가 테러와의 전쟁을 계기로 아프간 등 중동으로 진출하더니,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에는 인도태평양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러시아를 지지하는 중국에 대한 반발과 경계의 산물이다.
이에 맞춰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달 28~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를 두고 정식 회원국이 아닌 상황에서 군사동맹기구의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감안할 때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서방 중심의 군사동맹기구와의 협력이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는 비판도 있다.
반면 글로벌 협력 강화 차원에서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어느 쪽이 맞는 걸까. 중요한 점은 나토와 한반도는 의외로 가까운 관계라는 것이다.
◆나토는 ‘멀지만 가까웠던 이웃’
군 당국에 따르면, 한국과 나토의 협력 본격화된 것은 2005년 12월 반기문 당시 외교부장관의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 방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정보보안양해각서를 체결했고, 2012년 에너지 안보와 사이버 등의 분야가 포함된 개별 파트너십 협력 프로그램(IPCP)를 맺었다. 정무적 차원의 정책협의회도 개최됐다.
2016년에는 나토 고위 군사정책을 조정 및 통제하는 군사위원회의 수장인 군사위원장이 처음으로 방한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로 전화통화를 했고, 지난해에는 원인철 합참의장이 나토 본부를 방문했다.
지난 4월에는 롭 바우어 나토 군사위원장이 방한해 원 의장을 만났다. 정의용 당시 외교부장관도 나토 외교장관 회담에 참석했다.
나토가 이렇게 한국에 손을 내미는 이유는 한국이 인도태평양 지역 핵심 파트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밀월 관계도 나토가 신경쓰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 나토는 러시아에 동조하는 중국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나토는 지난달 30일 12년만에 채택한 ‘2022 전략 독트린’에서 “중국이 유럽과 대서양 안보에 초래하는 구조적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책임 있게 함께 행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토는 ‘강압적 정책’, ‘악의적 사이버 활동’, ‘대결적 언사와 정보 조작’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국제질서를 뒤엎으려고 한다”고 중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같은 문제들은 유럽과 대서양을 중심으로 한 지정학적 관점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지리적 제약을 뛰어넘어야 한다. 나토에 가입하지 않았지만, 기존 회원국과 유사한 정치·경제 체제를 유지하는 인도태평양 국가와의 협력이 필요한 이유다.
이번 회의에 함께 초대받은 일본, 호주, 뉴질랜드처럼 인도태평양에 위치한 국가이며, 나토 ‘최대주주’인 미국의 동맹국이다. 나토로서는 한국을 협력 대상으로 지목할 이유가 있는 셈이다.
◆가치외교·한반도 안보 등에 효과
나토와의 협력 강화는 외교안보 등의 측면에서 한국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는 우방국과의 관계 강화는 기존의 외교적 제약을 넘어설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의 외교정책은 미국 등 주변국의 비중이 높았다. 유럽은 지리적으로 멀고 안보협력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특정 국가에 대한 외교적 의존도가 높아졌다.
나토와의 협력은 한반도 안보를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반도 유사시 한국군을 도울 지원병력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미군이 주로 투입된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그리스, 노르웨이, 덴마크, 이탈리아, 캐나다 등 유엔군사령부 회원국인 일부 나토 국가들도 한반도 문제에 참여할 수 있다.
이들 국가는 6·25 전쟁 당시 한국을 직간접적으로 도왔다. 휴전 이후에는 유엔사에 장교들을 파견해 정전 체제 유지를 지원하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지금까지도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서방 국가들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었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과 더불어 유엔사에 참여하는 유럽 국가들이 군사적, 외교적으로 한국을 돕는다면, 국가안보의 불확실성을 낮추는데 도움이 된다.
이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사전에 외교적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토는 유엔사에 참여하는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를 증진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 있는 나토 사이버방위센터(CCDCOE)가 대표적인 사례다.
2007년 러시아의 해킹으로 에스토니아 국가 시스템이 마비된 것을 계기로 2008년 출범한 CCDCOE는 사이버 안보 분야에서 최고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사이버 작전개념과 교리 개발, 사이버 작전 구상을 위한 교육과 훈련 능력 향상, 회원국 간 사이버 작전 경험 공유를 목적으로 활동한다.
2010년부터 다국적 사이버 훈련인 락드실즈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 4월 락드실즈 2022 훈련에는 33개국 2000여 명이 참가, 적 사이버 공격에 대한 전략적 의사결정 체계 구축과 금융기관에 대한 공격 대응 방법 등을 연습했다.
한국은 지난 5월 아시아 국가 최초로 CCDCOE 정회원에 가입했다. 한국은 지난 3년간 락드실즈에 참여했다. 이번 락드실즈 2022 훈련에는 국정원, 국방부, 한국전력공사 등 8개 기관 70여명이 참가했다.
다만 나토와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북핵 문제 대처, 교역 등을 감안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전략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중국은 “일부 세력이 나토를 선동해 아시아태평양으로 촉수를 더 뻗치거나 군사동맹을 빙자해 ‘아태판 나토’를 만드는 데 반대한다”고 반발한 상태다. 이에 따라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할 균형점을 찾는 것이 향후 과제가 될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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