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안전망이 없다] 면제 대신 소송남발..연대보증 폐지의 민낯

박진용 기자 2022. 7. 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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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도전에 뒷짐 진 정책금융기관]
"법 위반 입증시 연대보증 의무 생기는 효과 노려"
소진공, 회생종결 기업 '연체 상태' 라며 대출 거부
/연합뉴스
[서울경제]

정책금융기관 연대보증 폐지는 중소·벤처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가 내세웠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혁신을 응원하는 창업국가 조성'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던 문재인 정부는 실패부담 완화를 위한 재도전 인프라 확충 차원에서 지난 2018년 정책금융기관 연대보증을 전격 폐지했습니다. 연대보증은 사업에 실패하면 기업의 채무를 대표가 개인적으로 부담하게 만들어 창업을 가장 부담스럽게 만드는 대표적인 걸림돌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기업인들은 연대보증 폐지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연대보증이 폐지되면서 보증기관 등이 손실을 막기 위해 기업인을 대상으로 소송을 남발한다는 지적이 대표적입니다.

영화 컨텐츠 관련 사업을 준비했던 김지혜(가명) 대표는 4년 가까운 기간 동안 기술보증기금(기보)과 고통스러운 소송전을 벌였습니다. 김 대표는 약 4년 전 기보로부터 연대보증을 면제 받는 대신 투명경영서약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영화 사업은 좌초됐고 결국 보증 대출을 상환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이후 기보는 ‘SPC 목적 법인을 만들어 대출금 횡령을 시도했다’는 등의 이유로 김 씨를 고소했습니다. 대출금 횡령 등 투명경영을 위반한 사실이 입증되면 김 씨가 연대보증 면제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노린 것입니다.

수사기관은 무혐의 처리를 했습니다. 기보의 주장은 영화업계에 대한 이해도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실제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는 규모가 영세한 반면 개별 프로젝트 예산은 최소 수십 억원이 소요돼 새로운 프로젝트에 돌입할 경우 투자금 보호 차원에서 SPC 목적법인을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 씨 역시 투자 협약을 체결하고 투자를 진행 중이어서 SPC 목적법인을 만든 것인데, ‘법인격 납발’로 판단한 기보는 대출금을 횡령한 것이라 단정했던 것입니다.

이후 기보는 민사 소송까지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2020년 11월 김 씨는 민사 소송에서도 결국 승리했습니다. 당시 담당 판사는 “피고인이 투명경영 약정을 위반하였음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고 밝혔습니다. 기보는 내부 방침이라며 항소도 진행했습니다. 물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2022년 4월 재판부는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김 씨는 “기보 측은 (자신들이 보증 대출한) 프로젝트와 상관없이 다른 개인적 대출을 통해 회사에 투입한 운영자금을 어떻게 썼는지 증빙하는 것도 의무라고 주장했다”면서 “이런 것이 정부가 말하던 투명경영이냐”고 토로했습니다.

김 씨는 사업에 집중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어야 할 시간을 소송 대비에 사실상 모두 쏟아부은 점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회상합니다.

김 씨는 “연대보증을 페지해 창업 리스크를 낮춰주겠다더니, 오히려 기업가를 사기법으로 몰아 형사고소를 남발할 수 있나”면서 “4년 가까이 이어진 소송 기간 동안 본업인 사업에는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변호사 선임 비용도 없어 직접 변호사 대신 소송에 일일이 대응했어야 했다”고 전했습니다.

서울회생법원 /연합뉴스

일선 현장에서는 실패 기업인이라면 무조건 적대적으로 여기는 정책금융기관의 관행도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정상적인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기업에 대해 무작정 대출을 거부하는 행태가 대표적입니다.

최종오 한국메탈실리콘 대표의 경험담입니다. 이 회사는 주거래처 부도의 여파로 지난 2018년 서울회생법원에 간이회생개시를 신청했습니다. 이후 2019년 1월에 회생인가 결정을 받았고, 2020년 3월에는 회생절차가 조기 종결됐습니다. 국내외 대기업과 2차전지 배터리 음극제를 공동개발 및 생산 중이던 지난해 4월, 소상공인진흥공단(이하 소진공)의 정책자금 공고 소식은 최 대표에게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과 같았습니다. 정책자금을 통해 양산 설비만 마련되면 저가의 실리콘 원료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진공은 대출을 끝내 거부했습니다. 한국메탈실리콘의 회생절차가 공식적으로 종결됐어도, 회생계획을 수행완료(약 10년 소요)할 때까지는 지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해당 회사가 소진공 자체 전산시스템에서는 연체 상태로 인식된다는 근거도 제시했습니다. 이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등과 비교해도 최 대표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논리였습니다. 실제 기보와 신보에서는 ‘연체중지’ 상태로 조회됐기 때문입니다.

최 대표는 “관련 법률에 따르면 회생절차가 종결된 기업은 회생계획을 수행하는 한 정상적인 기업운영을 하는 일반 기업과 같다.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에서 회생기업 재기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과 너무나 대비된다”고 성토했습니다.

최 대표는 “소진공은 그전부터 수차례 사실 관계가 어긋난 답변을 보낸 뒤, 나중에야 잘못을 시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면서 경험담도 공유했습니다.

“처음 소진공에 문의했을 때는 ‘전산조회 결과 회생 중인 회사는 신청 자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법원의 회생종결 공고를 보여주니 ‘전산 오류였다’며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이후에는 ‘연체 중인 회사는 정책자금을 신청할 수 없다’는 논리를 들어 대출을 거부했습니다. ‘회생신청 이후는 물론이고 회생신청 이전에도 회사가 연체된 적이 없다’고 해명하니 오히려 ‘우리 전산에는 이렇게 뜨니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최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신문고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제서야 소진공은 내부 전산자료 오류를 시인하고 신속하게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최 대표는 이처럼 반년 가까운 시간을 소진공과 허무하게 소모했지만, 다행히 기보로부터 약 5억 원의 보증대출을 받아 기사회생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덕분에 배터리 분야 대기업들과의 협력도 본궤도에 올랐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세계적인 화학소재기업인 벨기에의 유미코아와 공동생산 계약도 체결했습니다.

최 대표의 마지막 한마디입니다.

“이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됐고 소진공을 이용할 일도 없겠지만, 우리 회사와 같이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고의로 외면하는 정책금융기관의 행태는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 회생 기업은 신규 보증서 발급이나 시중은행 이용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제라도 정책금융기관이 달라지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

박진용 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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