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대세' 새 임대차법이 불 지피고 금리인상이 기름 부어 [심층기획]

박세준 2022. 7. 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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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의 월세화' 현상 가속
임대차 거래, 이미 월세 > 전세 역전
이달말 새 임대차법 시행 2년 맞아
일각 "하반기 전세난 도래" 지적
집주인들 전셋값 상승분 미리 반영
기존 세입자, 이사 대신 2년 더 연장
전세품귀에 가격↑.. 울며겨자먹기 전환
'비싼 대출이자에 월세가 낫다' 판단도
정부, 월세 상승에 안정화대책 내놔
상생 임대인,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
세입자엔 월세세액공제율 15%로
"단기간에 전세 종말 가능성은 낮아
반전세 형태의 중간 단계 먼저 올 것"
‘전세 시대’는 옛말이 됐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인 전세가 점점 줄어들고, 월세 거래의 비중이 늘면서다. 이른바 ‘전세의 월세화’ 현상이다. 올해 4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임대차 거래 중 월세 계약 건수가 전세를 넘어섰다. 월세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서민, 중산층의 주거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선 올 하반기에 전세난이 도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새 임대차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시행 2년째를 맞은 이달 말부터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세입자들이 신규로 전세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데 그 사이 전셋값이 너무 가파르게 급등했기 때문이다.

◆‘월세〉전세’는 전국적 현상

1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전국의 임대차 거래(확정일자 기준) 34만9625건 중 월세 계약은 20만1994건으로, 전체 임대차 거래 중 57.8%를 차지했다. 사상 처음으로 월세 거래가 전세를 넘어섰던 전달(4월)과 비교해도 월세 비중이 6.7%포인트 급증했다.

지역별로는 제주의 월세 비중이 85.4%로 가장 높았고 충남(65.2%), 울산(61.9%), 대구(61.6%) 등이 뒤를 이었다. 월세 비중이 가장 낮은 광주도 51.6%를 기록하며, 전국 17개 시·도 모두 전세보다 월세 비중이 더 컸다. 전체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중은 올해 1월 46.0%에서 2월 48.88%, 3월 49.5%, 4월 50.1%, 5월 57.8%로 매달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월세가 대세가 된 형국은 아파트 임대차 시장의 통계를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부동산R114가 국토교통부의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방보다는 수도권에서, 구축보다는 신축 아파트일수록 월세 비중이 높았다. 올해 1∼5월 전국 아파트 임대차 거래 38만3859건 중 전세는 23만4354건(61.1%), 월세는 14만9505건(38.9%)으로 여전히 전세 비중이 더 컸다. 하지만 수도권의 입주 5년 이하 아파트만 보면, 월세가 53.7%(2만8582건)로 전세(2만4642건) 거래량을 넘어섰다.
서울의 대표적인 신축 대단지로 꼽히는 송파구 헬리오시티의 경우 올해 1월부터 6월 말까지 체결된 월세 계약이 321건으로 전세 계약(187건)보다 60% 가까이 많다. 올해 80억원(전용 222㎡)의 신고가를 기록하며 강남권에서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 서초구 래미안 퍼스티지의 경우에도 올해 들어 월세 거래(70건)가 전세(59건)보다 더 많았다.

◆새 임대차법에 금리 인상·대출규제 원인

전세가 월세로 대체되는 흐름은 2008년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가 주춤한 이후부터 이어져온 현상이다. 하지만 완만했던 전세의 월세화 속도의 고삐가 풀린 것은 2020년 시행된 새 임대차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월세상한제로 전셋값을 5% 넘게 올리지 못하게 되자, 4년(2+2년)치 상승분을 미리 올려 받으려는 집주인이 생겨나면서 전셋값이 뛰기 시작했다. 비싼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대부분의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고 2년 더 눌러앉으면서 전세 품귀 현상을 부추겼다. 결국 전세난이 다시 전셋값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이 반복됐고,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전셋값을 부담해야 했다. 임대차법이 개정된 2020년 7월 4억9921만원이었던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올해 5월에는 6억7709만원으로 36%나 급등했다.
지난 6월 30일 서울 시내 한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월세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지난해 말부터는 금융당국의 대출 조이기와 기준금리 인상이 더해지면서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이달부터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규제가 시행되면서 총대출액 1억원이 넘는 차주의 대출 한도가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 소득의 40%까지로 제한됐다. 대출 자체가 어려워진 데다 금리가 올라가며 이자 부담도 커졌다. 전세대출 준거금리인 코픽스와 금융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4대 주요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최고금리가 모두 연 5%를 넘어섰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은행에 비싼 대출 이자를 내는 대신 집주인에게 월세를 내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세입자도 늘고 있다.
지난해 6월 본격적으로 시행된 전월세신고제도 월세 계약 신고가 늘어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세나 보증금 액수가 비교적 큰 월세는 저당권 설정을 위한 등기나 확정일자, 전입신고 등의 과정으로 통계가 수집된다. 반면 보증금 액수가 비교적 크지 않아서 신고를 잘 하지 않았던 오피스텔과 원룸 등 준주택의 월세도 모두 신고하게 되면서 숨겨 있던 통계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전·월세 신고 계도기간 만료일(5월31일)이 도래함에 따라 그간 신고를 미뤄왔던 계약이 일시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에 신고하지 않았던 비아파트 물건의 월세 거래 신고가 늘면서 월세 비중이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갯속 하반기 임대차 시장 전망

전세의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올 하반기에 전세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달 말 새 임대차법 시행 2년을 맞으면서 입주 물량이 많지 않은 지역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월세는 이미 강세장에 올라탄 상황이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전국 주택 월세가격은 3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국 주택 종합 월세가격 상승률은 올해 1월 0.16%에서 2월 0.13%로 떨어졌다가 3월 0.14%, 4월 0.15%, 5월 0.16%를 기록했다.

정부도 이에 대비해 최근 임대차 시장 안정화 방안을 내놨다. 직전 계약 대비 임대료를 5% 이내로 인상한 상생임대인에 대해서는 2년 이상 임대한 주택의 조정대상지역 1가구 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 2년 거주요건 중 1년을 인정하고 있는데, 오는 2024년 말까지는 2년 거주요건을 아예 면제해주기로 했다. 같은 기간 동안 1가구 1주택 장기보유특별공제 적용을 위한 2년 거주요건도 면제해준다.
사진=연합뉴스
세입자를 위한 대책으로는 다음달 1일부터 1년간 임대차 갱신계약 만료 임차인을 위해 저리의 ‘버팀목 전세대출’ 보증금과 대출 한도를 확대하기로 했다. 월세세액공제율을 현행 최고 12%에서 최고 15%까지 올리는 등 월세 세입자를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다만, 전세의 월세화 흐름과 별개로 단기간에 전세 시대의 종말이 찾아올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세입자 입장에서 다달이 나가는 월세 부담 없는 전세를 찾는 수요는 건재한 상황이고,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고 싶어도 목돈이 없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따라서 최소 10년 이상은 전세가 꾸준히 월세로 전환되는 현재의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를 바로 월세로 전환하는 것은 집주인과 세입자 양쪽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전세보증금을 올리는 대신 그만큼 월세로 돌리는 반전세 형태의 계약이 늘어나는 중간 단계가 먼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최근 몇년간 갭투자가 많았는데, 경기 둔화로 집주인이 보증금을 반환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라 전세가 완전히 소멸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면서도 “월세이율 보다 높은 전세대출 이자, 다주택자의 보유세 부담 증가, 1∼2인 가구 증가 등 세대 분화 현상 등을 고려할 때 월세 비중이 60%까지 상승하는 흐름이 이어질 수 있다”이라고 내다봤다.
서울 송파구의 한 중개업소에 전세 매물을 알리는 시세표가 붙어 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4월과 5월 전국의 임대차 계약 중 월세 비중이 전세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전세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다?

전세는 대한민국에만 있는 제도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해외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지만 한국처럼 주거 형태의 대세로 자리 잡은 곳은 없다.

1일 유엔 해비타트 보고서에 따르면, 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 인도의 ‘거비’와 ‘보기’, 스웨덴의 ‘부스타스레트’ 등은 모두 일정 금액을 예치해둔 뒤에 사용료 없이 부동산을 빌려 쓰는 방식이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내고 집이나 토지를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전세제도와 같은 원리다. 하지만 해외의 이런 제도는 주택 거주 형태라기보다는 사금융이나 사회공헌활동의 성격이 짙다. 예를 들어 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는 일종의 대출 수단이라서 집주인이 정해진 기간 내에 돈을 갚지 않으면, 세입자가 소유권을 넘겨받게 된다. 스웨덴의 부스타스레트의 경우 협동조합에 대한 출자금 성격으로, 사실상 공동으로 집을 소유하며 만기 없이 계속 거주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전세제도의 근원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경사회의 특성상 농사를 지을 땅이 핵심 자산이었고, 농민들은 급전이 필요할 때 귀족, 승려 등 고위층에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땅에서 나온 농산물이 있으니 별도의 대출 이자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 땅에만 국한됐던 전세제도가 주택 거래 수단으로 확장하게 된 변곡점은 1876년 체결된 강화도조약이었다. 지방 인구가 경성으로 한꺼번에 몰려왔지만, 집을 살 만한 돈이 없었던 터라 기탁금을 내고 집을 빌려 쓰는 전세가 발달하게 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서울에 집은 부족하고, 정부의 공적자금 대출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전세제도가 빛을 발했다. 197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를 겪는 과정에서 전세는 한국 주거 형태의 주류 문화로 정착하게 됐다. 정부는 더욱 돈 쓸 곳이 많아졌고, 시중은행은 경제발전을 위한 기업대출에 힘을 쓰는 사이 부동산 상승세와 고금리 정책까지 맞물리면서 전세제도는 민간에서 주택·대출 공급을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축이 됐다.

집값이 안정되고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임대차 시장이 월세 위주로 재편되면, 전세 사고 또는 전세 사기는 물론 전세를 이용한 갭투자 등의 시장교란 행위가 줄어든다. 정부 입장에서도 전세보증보험이나 각종 전세 관련 대출 지원에 들어가는 공적자금을 다른 주거복지 예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전세의 순기능 측면도 있다. 집주인의 입장에서 전세는 주택담보대출 외에 추가로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사금융 수단이 된다. 별다른 고정비용 없이 안정적으로 주택을 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세입자의 이해조건과도 맞아떨어진다. 전세의 존재는 임대차 시장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도움을 준다. 전세와 월세 매물이 모두 있는 것은 집주인과 세입자 양쪽 모두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목돈이 필요한 집주인은 전세를 내놓거나, 월세를 주더라도 보증금의 비중을 늘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반면 은퇴 부부 등 고정수입이 절실한 계층은 보증금을 줄이고 월세를 올려 내놓으면 된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현재 보유한 자산과 연소득을 감안한 보증금과 월세의 예산을 정해 집을 구할 수 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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