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대세' 새 임대차법이 불 지피고 금리인상이 기름 부어 [심층기획]
임대차 거래, 이미 월세 > 전세 역전
이달말 새 임대차법 시행 2년 맞아
일각 "하반기 전세난 도래" 지적
집주인들 전셋값 상승분 미리 반영
기존 세입자, 이사 대신 2년 더 연장
전세품귀에 가격↑.. 울며겨자먹기 전환
'비싼 대출이자에 월세가 낫다' 판단도
정부, 월세 상승에 안정화대책 내놔
상생 임대인, 양도소득세 감면 혜택
세입자엔 월세세액공제율 15%로
"단기간에 전세 종말 가능성은 낮아
반전세 형태의 중간 단계 먼저 올 것"
◆‘월세〉전세’는 전국적 현상
1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전국의 임대차 거래(확정일자 기준) 34만9625건 중 월세 계약은 20만1994건으로, 전체 임대차 거래 중 57.8%를 차지했다. 사상 처음으로 월세 거래가 전세를 넘어섰던 전달(4월)과 비교해도 월세 비중이 6.7%포인트 급증했다.
지역별로는 제주의 월세 비중이 85.4%로 가장 높았고 충남(65.2%), 울산(61.9%), 대구(61.6%) 등이 뒤를 이었다. 월세 비중이 가장 낮은 광주도 51.6%를 기록하며, 전국 17개 시·도 모두 전세보다 월세 비중이 더 컸다. 전체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중은 올해 1월 46.0%에서 2월 48.88%, 3월 49.5%, 4월 50.1%, 5월 57.8%로 매달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새 임대차법에 금리 인상·대출규제 원인
전세가 월세로 대체되는 흐름은 2008년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가 주춤한 이후부터 이어져온 현상이다. 하지만 완만했던 전세의 월세화 속도의 고삐가 풀린 것은 2020년 시행된 새 임대차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세의 월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올 하반기에 전세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달 말 새 임대차법 시행 2년을 맞으면서 입주 물량이 많지 않은 지역을 중심으로 전셋값이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월세는 이미 강세장에 올라탄 상황이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전국 주택 월세가격은 3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국 주택 종합 월세가격 상승률은 올해 1월 0.16%에서 2월 0.13%로 떨어졌다가 3월 0.14%, 4월 0.15%, 5월 0.16%를 기록했다.
다만, 전세의 월세화 흐름과 별개로 단기간에 전세 시대의 종말이 찾아올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세입자 입장에서 다달이 나가는 월세 부담 없는 전세를 찾는 수요는 건재한 상황이고,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고 싶어도 목돈이 없어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따라서 최소 10년 이상은 전세가 꾸준히 월세로 전환되는 현재의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를 바로 월세로 전환하는 것은 집주인과 세입자 양쪽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면서 “전세보증금을 올리는 대신 그만큼 월세로 돌리는 반전세 형태의 계약이 늘어나는 중간 단계가 먼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세는 대한민국에만 있는 제도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해외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지만 한국처럼 주거 형태의 대세로 자리 잡은 곳은 없다.
1일 유엔 해비타트 보고서에 따르면, 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 인도의 ‘거비’와 ‘보기’, 스웨덴의 ‘부스타스레트’ 등은 모두 일정 금액을 예치해둔 뒤에 사용료 없이 부동산을 빌려 쓰는 방식이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내고 집이나 토지를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전세제도와 같은 원리다. 하지만 해외의 이런 제도는 주택 거주 형태라기보다는 사금융이나 사회공헌활동의 성격이 짙다. 예를 들어 볼리비아의 안티크레티코는 일종의 대출 수단이라서 집주인이 정해진 기간 내에 돈을 갚지 않으면, 세입자가 소유권을 넘겨받게 된다. 스웨덴의 부스타스레트의 경우 협동조합에 대한 출자금 성격으로, 사실상 공동으로 집을 소유하며 만기 없이 계속 거주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 전세제도의 근원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농경사회의 특성상 농사를 지을 땅이 핵심 자산이었고, 농민들은 급전이 필요할 때 귀족, 승려 등 고위층에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 땅에서 나온 농산물이 있으니 별도의 대출 이자를 받을 필요도 없었다. 땅에만 국한됐던 전세제도가 주택 거래 수단으로 확장하게 된 변곡점은 1876년 체결된 강화도조약이었다. 지방 인구가 경성으로 한꺼번에 몰려왔지만, 집을 살 만한 돈이 없었던 터라 기탁금을 내고 집을 빌려 쓰는 전세가 발달하게 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서울에 집은 부족하고, 정부의 공적자금 대출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전세제도가 빛을 발했다. 197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를 겪는 과정에서 전세는 한국 주거 형태의 주류 문화로 정착하게 됐다. 정부는 더욱 돈 쓸 곳이 많아졌고, 시중은행은 경제발전을 위한 기업대출에 힘을 쓰는 사이 부동산 상승세와 고금리 정책까지 맞물리면서 전세제도는 민간에서 주택·대출 공급을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축이 됐다.
집값이 안정되고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임대차 시장이 월세 위주로 재편되면, 전세 사고 또는 전세 사기는 물론 전세를 이용한 갭투자 등의 시장교란 행위가 줄어든다. 정부 입장에서도 전세보증보험이나 각종 전세 관련 대출 지원에 들어가는 공적자금을 다른 주거복지 예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전세의 순기능 측면도 있다. 집주인의 입장에서 전세는 주택담보대출 외에 추가로 자금을 융통할 수 있는 사금융 수단이 된다. 별다른 고정비용 없이 안정적으로 주택을 빌릴 수 있다는 점에서 세입자의 이해조건과도 맞아떨어진다. 전세의 존재는 임대차 시장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도움을 준다. 전세와 월세 매물이 모두 있는 것은 집주인과 세입자 양쪽 모두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목돈이 필요한 집주인은 전세를 내놓거나, 월세를 주더라도 보증금의 비중을 늘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반면 은퇴 부부 등 고정수입이 절실한 계층은 보증금을 줄이고 월세를 올려 내놓으면 된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현재 보유한 자산과 연소득을 감안한 보증금과 월세의 예산을 정해 집을 구할 수 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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