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토리니' 감천마을로 떠나는 감성여행 [최현태 기자의 여행홀릭]
최현태 2022. 7. 2. 14:58
6·25 피란민 '고달픔 삶' 가득하던 산동네 파스텔톤 동화 속 세상 변신/별보러 가는 148계단·감천항 풍경..'어린왕자'도 잠시 쉬어간다/감천마을옆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공동묘지 위에 '산자의 집' 지금도 시간이 멈춘 달동네
벽에 걸린 빛바랜 흑백 사진이 말을 걸어온다. 팍팍했던 피란민들의 삶을 기억해달라고. 가파른 산비탈을 가로지르는 골목 따라 한치의 빈틈 없이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들은 금세 슬레이트 지붕이 무너질 듯 위태롭다. 그런 골목 여러 줄이 계단식 논처럼 차곡차곡 산 정상을 향해 쌓아 올려진 기이한 풍경. 저런 곳에서 사람이 살았다니. 감천문화마을 별보러 가는 148개 계단을 따라 오른다. 이제 사진 속 풍경은 찾아볼 수는 없지만 마을은 그대로 남아 피란민들의 고달픈 인생을 귓가에 들려준다.
◆‘알록달록’ 파스텔로 칠한 동화 속 세상
‘한국의 산토리니’ ‘한국의 마추픽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동네’. 부산 사하구 감내1로 산등성이를 따라 펼쳐진 감천문화마을은 이런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 아래 지붕과 담벼락이 알록달록 예쁜 파스텔톤으로 칠해진 풍경이 가득 펼쳐져 마을 전체가 마치 동화 속 세상 같다. 덕분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기 전인 2019년에만 308만명이 찾았을 정도로 인기다. 부산을 찾는 외국관광객들은 지금도 감천마을을 부산 여행지 중 으뜸으로 꼽는다.
보이는 것과 달리 감천마을은 한국전쟁 당시 전국에서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의 애환이 잔뜩 서린 곳이다. 1945년 광복 이후 30만명이던 부산 인구는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1951년 84만명으로 급증했다. 당연히 주거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몸 하나 누울 자리 없던 피란민들은 부산의 산비탈들을 찾아 나무를 베고 경사면을 대충 다듬은 뒤 판자나 거적때기 등을 사용한 판잣집을 짓기 시작했다. 영주동, 초량동, 수정동, 영도 등 부산역 주변과 용두산, 대청동, 충무동, 아미동, 대신동, 보수동 등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국제시장 주변에 산동네가 만들어졌는데 천마산 옥녀봉 아래 집단 주거지가 지금의 감천마을이다. 사람들이 살지 않던 곳이다 보니 식수·전력난은 기본이고 분뇨도 제대로 처리하기 어려워 보건 위생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지만 피란민들은 이를 버텨야 했다.
최민식 갤러리에서 감천마을 여행을 시작한다. 마을에서 차로 3분,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서구 천마산로 아미문화학습관 2층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최민식의 갤러리가 아담하게 꾸며져 있다. 자갈치시장을 작품의 주된 무대로 삼은 그는 노동자, 거지, 부랑자 등 소외받거나 고통받는 이들의 ‘가난’을 앵글에 담았다. 누나 등에 업힌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어미, 쌀가마니를 어깨에 짊어지거나 무거운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가는 노동자, 왼쪽 팔·다리를 잃었지만 신문 뭉치를 들고 한발로 뛰면서 신문 배달하는 청년. 갤러리에 걸린 사진마다 가난이 짙게 묻어난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이 1960년 감천마을을 담은 사진. 산비탈을 뒤덮은 판자촌 풍경은 아무런 설명이 없지만 전후 피란민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비 피해를 막기 위해 마을 가운데 산꼭대기부터 물이 흘러내리도록 직선으로 긴 수로를 만들었고 그 옆에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도 보인다. 모습은 많이 달라졌지만 바로 감천마을 ‘별 보러 가는 계단‘의 옛 모습. 진짜 별이 아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 문득 뒤돌아보면 현기증으로 눈앞에 별이 보였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많은 집이 새로 지어져 계단을 찾기 어려운데 마을 입구를 바라보고 왼쪽 버스정류장을 지나 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계단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집’이라는 문패가 달린 작은 한옥 대문을 통과하면 만나는 공예품숍 더 홈(The Home) 마당이 감천마을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 누구나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마당을 개방해 포토존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곳에서 본 마을은 전체가 거대한 예술작품이다.
볼 것 없던 산동네이던 감천마을은 2009년부터 담벼락과 지붕, 계단, 골목이 하나둘 파스텔톤 색을 입기 시작했다. 바로 지역 예술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모여 시작한 도시재생사업 ‘마을미술 프로젝트’. 덕분에 매년 수백만명이 찾는 동화마을로 바뀌었으니 그들의 노고에 감사한다. ‘I ♥ GAMCHEON’ 조형물과 감내어울터를 지나면 다양한 작품으로 꾸며진 별 보러 가는 계단이 시작된다. 멀리서 봤던 골목은 미로처럼 얽혀 있지만 감천마을 사람들처럼 서로 잘 통해 어디로 가든 정상부 메인도로와 연결된다.
카페 더 플레이트와 공예품점 감천문화역 사이 ‘천덕수(天德水)’로 가는 계단은 인기 높은 포토존. 많은 외국인이 서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다. 가뭄이 들자 허기진 배를 주려 안고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며 마을사람들을 위해 우물을 판 청년 얘기가 전해진다.
산토리니를 닮은 등대포토존과 기념품점 소행성 B612를 지나자 어린왕자와 사막여우가 난간에 걸터앉아 감천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감천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으로 소행성을 떠나 지구로 온 어린왕자는 사막여우를 만나 긴 여행을 하다가 감천마을 예쁜 풍경에 반해 잠시 쉬고 있단다. 나인주 작가의 2016년 작품. 바로 옆 전망대에 오르면 연인들 사랑의 서약을 적은 자물쇠가 주렁주렁 달린 난간 너머로 펼쳐지는 마을풍경과 감천항이 어우러지는 수채화를 만난다.
◆무덤 위에 지은 ‘산 자의 집’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감천마을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산동네는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이름 그대로 무덤의 비석으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판잣집을 지으면서 형성된 마을로 감천마을보다 피란민의 실상을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원래 이곳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화장장과 공동묘지가 있던 곳. 부산으로 떠밀려온 피란민들은 몸 하나 누울 수 있으면 감지덕지했기에 공동묘지도 상관없었다. 더구나 주인도 없는 땅이니 판잣집을 지어도 시비 걸 사람이 없어 피란민들이 아미동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무덤에 널린 각진 상석과 비석을 이용해 축대나 가파른 계단의 디딤돌을 만들며 집을 지었다.
피란생활박물관에서 비석마을 골목투어가 시작된다. 골목을 따라 놓인 집들은 기타와 교복이 보이는 석이삼촌방, 재봉틀이 놓인 봉제공간, 구멍가게 비석상회, 이발소 쪽방 등으로 꾸며져 피란생활을 엿볼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 유리 보호막을 씌운 집은 묘지 상석 위에 그대로 올려 딱 무덤 한개 크기다. 비석에는 일본인 망자의 이름과 1913년을 뜻하는 ‘大正二年(대정 2년)’이 또렷하게 적혀 있어 이곳이 무덤이었음을 알린다.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집 축대에 이런 글자가 적힌 비석과 상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감천마을은 인기 높은 여행지가 됐지만 이곳은 좀 다르다. 지금도 단칸방에서 가난한 이들이 힘겨운 숨을 쉬고 있는 달동네로 시간이 멈춘 듯, 피란민들의 힘겹고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골목을 나오면 만나는 아미문화마을 쉼터 앞 마을버스정류장 난간에는 옛 교복을 입은 남녀 학생 조형물이 수줍은 듯 떨어져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그 뒤로 부산 남항 풍경이 펼쳐진다. 연인들이 조형물 사이에 앉아 서로 바라보며 사진 찍기 좋은 곳. 산동네들은 산복도로(천마산로)로 이어지는데 길을 따라 부산 남항 풍경을 즐기는 다양한 전망대가 등장한다. 천마산 하늘전망대에선 등이 굽은 노부부가 손을 다정하게 잡고 부산항을 내려다보는 조형물을 만난다. 영화 ‘국제시장’ 주인공들이다. 천마산 누리바라기 전망대에 서면 하늘에서 내려온 용마의 이야기를 간직한 천마산 유래를 담은 말과 구름이 나무에 걸린 소리나무가 여행자들을 반긴다.
부산항을 제대로 즐기려면 천마산 전망대로 가면 된다. 전망대에 서자 부산항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왼쪽으로 영도를 연결하는 영도대교, 부산대교 그리고 가장 높은 부산항대교가 차례로 놓였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남항대교를 지나 배들이 정박한 푸른바다가 끝없이 펼쳐지는 부산의 가장 멋진 뷰가 한눈에 들어온다.
부산=글·사진 최현태 선임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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