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역 '낙태권 폐지' 불길, 중간선거 이슈로 옮겨붙다

김현 뉴스1 워싱턴 특파원 2022. 7. 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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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 위기 몰렸던 바이든·민주당, 반대 여론 등에 업고 '지지층 결집' 총력
공화당 "경제 문제가 선거 이끌 것"

(시사저널=김현 뉴스1 워싱턴 특파원)

미 연방대법원이 거의 50년간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하는 근거가 됐던 판례를 공식 폐기하면서 미국 사회가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대법원의 결정에 강력 반발하면서 연일 대법원 앞에서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는 반면, 공화당 등 보수진영은 대법원의 결정에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 의회 차원의 낙태 제한법 도입까지 추진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오는 11월 중간선거와 맞물려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는 양상이다.  

연방대법원은 6월24일(현지시간)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미시시피주(州)법의 유지 여부에 대한 표결에서 '6대 3'으로 유지를 결정했다. 연방대법원은 또 '로 및 플랜드페어런트후드 대 케이시' 판결을 폐기할지 여부에 대한 표결에선 '5대 4'로 폐기를 결정하면서 미국 사회에 낙태 합법화의 길을 열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공식 폐기됐다.

6월24일(현지시간) 낙태 권리 운동가들이 워싱턴 스퀘어 공원에서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 이고 있다. ⓒAFP 연합

"미국의 문화전쟁 불길에 휘발유 끼얹어"

1973년 1월22일 연방대법원이 내린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낙태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기념비적인 결정이다. 1971년 텍사스주에서 성폭행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제인 로'(가명)가 낙태 수술을 거부당하자 텍사스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헨리 웨이드'라는 이름의 텍사스주 지방검사가 사건을 맡으면서 이 사건은 '로 대 웨이드'라는 명칭이 붙었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표결에서 '7대 2'로 낙태에 대한 여성의 권리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명시된 사생활 보호 권리에 해당한다며 태아가 산모의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이 가능한 시기에 이르기 전까지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임신 약 28주 차가 기준이 됐지만, 이후 의학의 발전으로 현재는 그 시기를 약 23~24주 차로 봐왔다.

그러나 이후에도 미국 사회에서 논란은 지속됐고, 관련 소송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그럼에도 연방대법원은 1992년 '로 및 플랜드페어런트후드 대 케이시 사건' 등을 통해 1973년 판결을 그대로 인정해 왔다. 로버트 케이시 당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의 낙태 제한 규정에 반발해 낙태를 찬성하는 지역 단체가 소송을 제기했는데, 연방대법원은 '여성이 태아가 스스로 생존이 가능할 때까지 임신을 중단할 헌법상 권리를 갖는다'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의 핵심 원칙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낙태의 헌법적 권리를 부정한 이번 연방대법원의 결정으로 낙태 가능 여부는 이제 각 주(州)의 법률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낙태권 옹호단체인 구트마허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26개 주 이상이 낙태를 사실상 금지하거나 극도로 제한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워싱턴DC와 16개 주의 경우 주법으로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하고 있다.

거의 50년간 낙태권을 인정해온 판례를 뒤집은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미국 사회를 확실히 두 쪽으로 갈라지게 하고 있다. 낙태권을 옹호하는 진보진영은 연일 연방대법원은 물론 주요 도시에서 항의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연예계 스타들도 대법원의 결정에 분노를 쏟아냈다.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 햄스워스는 "말도 안 되고 끔찍한 판결"이라고 비판했고, 팝 스타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낙태권 폐지 때문에 많은 여성과 소녀들이 죽게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상대적으로 규모는 작지만 대법원 결정을 찬성하는 보수진영도 '지지' 집회를 진행하면서 일부 지역에선 찬반 집회 참가자 간에 충돌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대법원의 이번 결정이 "미국 문화전쟁(culture-war)의 불길에 휘발유를 끼얹었다"고 표현했다. 

대법원의 결정에 대한 진보진영의 분노가 커지면서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은 '낙태'를 핵심 쟁점으로 부각시키면서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반전을 꾀하고 있는 모습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에서 낙태권에 찬성하는 후보를 뽑아 의회에서 낙태권을 보장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촉구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여성과 미국인의 권리가 11월 투표용지에 놓여있다"면서 가세했고, 중간선거의 핵심 격전지 중 하나인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하는 체리 비슬리는 "우리는 헌법의 권리를 위한 분수령의 시점에 직면해 있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이 같은 전략엔 미국인들이 대체로 낙태권 보장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고려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CBS방송이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와 함께 6월24~25일 미국 성인 15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9%는 "대법원 판결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해 "지지한다"(41%)는 응답보다 많았다. 특히 여성의 3분의 2(67%)가 대법원 판결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또한 미국인 58%는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하면서 낙태를 합법화하는 연방 차원의 법률 제정에 찬성했다.

"대법원 판결 지지하지 않는다" 59%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투표 독려 호소에 민주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양상도 엿보인다. 미국 공영라디오 NPR과 PBS방송이 6월24~25일 미국의 성인 9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7일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1%가 대법원 결정이 올해 중간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고 답변했다. 특히 민주당 지지자 중에선 78%가 '대법원 결정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투표할 것 같다'고 답변했다. 이는 공화당 지지자들(54%)보다 24%포인트나 높은 수치였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51%는 낙태권 회복을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답변했고, 36%는 낙태권 회복을 지지하는 후보를 찍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무당층에선 47%가 낙태권 회복 지지 후보에게 투표하겠다고 답변했고, 38%는 낙태권 회복 지지 후보를 찍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이와 함께 민주당 지지층 48%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응답해 공화당 지지층(41%)보다 7%포인트 높았다. 이는 지난 4월 같은 질문에 민주당 44%, 공화당 47%였던 것에서 뒤집힌 결과이자, 지난 5월 대법원의 결정문 초안이 유출된 이후 나왔던 결과(민주당 후보 47%-공화당 후보 42%)와 비교했을 때도 격차가 다소 확대된 것이다.    

이로 인해 미 정가에선 대법원의 이번 결정이 치솟는 유가 등 40여 년 만의 최악 인플레이션으로 지지율이 최저치를 맴돌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에 기사회생의 기회를 주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루거센터의 폴 공 선임연구원은 기자와 만나 "대법원의 이번 결정이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문제만으로는 중간선거 판세를 뒤집기엔 역부족일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이는 11월 중간선거의 최대 이슈는 낙태권 문제보단 고유가 등 경제 문제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한다. 공화당의 선거운동 전문가인 존 브라벤더는 워싱턴포스트에 "보편적 이슈는 경제에 대한 우려"라면서 "이것이 다른 어떤 이슈보다 선거를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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