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절되나요? 미프진 있나요?".. 음지에 내몰린 여성 임신중지권

2022. 7. 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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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29개 산부인과에 임신중지 문의
절반 이상 "안 한다" 가능한 곳도 7~9주 초기만 
불법 약품 구매 등으로 위협받는 여성 건강권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해 3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임신중지를 공적 의료서비스로 보장하기 위한 건강보험적용과 유산유도제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첫아이를 낳을 땐 종합병원에서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받으면서 출산했어요. 지난해 둘째 임신에 중절 수술을 해줄 병원을 알아보면서는 완전히 정반대였죠."

서울 강동구에 사는 최희연(가명·36)씨는 1년 전 임신중지를 하기 위해 수소문하던 때를 '비참했다'라는 한 단어로 요약했다. 갑상선암 병력과 건강 문제로 더 이상 출산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임신중지는 더 이상 범죄가 아니라는 말에 어렵지 않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정보 찾기부터 쉽지 않았다. 규모가 크고 의료서비스 수준이 보장되어 보이는 병원에 문의했더니 중절 수술을 하지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분만을 취급하지 않는 소규모 산부인과나 미용 시술 위주 여성의원에서나 암암리에 '원장님 상담 후에 수술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상담을 마친 후 며칠 뒤 수술을 받으러 갔더니, 자신을 상담한 의사는 '개인 사정'으로 자리를 비웠고, 병원 측은 다른 의사가 수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은 아픈 곳이 있으면 병원을 선택해서 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임신중지의 경우 안전한 병원에 가고 싶어도 선택권이 없었어요. 생전 처음 보는 의사가 갑자기 수술을 한다는 것도 황당한데, 중절 수술을 한다는 이유로 위축된 여성들은 불합리를 토로하지도 못하죠."

어떤 여성들에게 임신중지는 '보건의료'의 문제다. 오늘날 개인의 판단 아래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지만, 유독 임신중지에 대한 논의만큼은 태아의 생명권을 앞세우는 목소리에 떠밀려 '형벌'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임신중지권 지지 시위대가 24일(현지시간) 워싱턴 대법원 앞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49년 만에 뒤집은 대법원의 판결에 항의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미 연방대법원이 지난 6월 24일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헌법상 권리로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자, 한국 사회의 임신중지 이슈에도 이목이 쏠렸다. 헌재는 '낙태죄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2020년 12월 31일까지 대체 입법을 마련하라고 주문했으나, 정부와 국회의 방기로 3년 동안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그 공백으로 빚어진 혼란은 고스란히 여성들을 안전하지 않은 의료 사각지대로 내몰고 있다. 한국일보 허스펙티브가 지난달 28일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 등록된 서울 마포구 소재 전체 29개 산부인과에 '임신중지'를 문의한 결과 12곳은 임신중절(약물, 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14곳은 '가능하다'고 대답했으나, 대부분 5~7주 내 극초기에 한해서만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3곳은 연결이 되지 않았다.

단순 문의 시 '원장님과 상담이 먼저 필요하다'며 모호하게 가능성을 내비쳤던 A 병원은, 취재진임을 밝히고 구체적인 절차를 묻자 "아마 원장님이 하지 않으시려 할 것"이라며 말을 바꿨다. 여전히 의료 현장에서는 임신중지에 대한 공개적 언급을 기피하고 있는 것이다.

B 병원은 "원치 않는 임신인 경우에는 할 수 없고, 유산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임신중지를 처벌하는 형법은 효력이 사라졌지만 임신중지 허용 범위를 명시한 모자보건법은 유효한 상황이라, 의료 현장에서 의료인이 진료를 거부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처벌 규정이 사라졌기에, 이 범위를 벗어나 수술을 해도 처벌받지는 않는다.

낮은 의료 접근성으로 인해 여성들은 불법으로 임신중지 약물을 구매하는 등 보건 사각지대로 내몰린다. 경제적 능력이 없고, 어린 여성일수록 이런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더 높다.

올 초 부산에 거주하는 김소희(가명·18)양은, 자신이 사는 지역의 산부인과를 검색하다 병원의 의료서비스를 포기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불법으로 임신중절약인 '미프진' 구매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60만~100만 원에 이르는 중절비용이나 수술 시 보호자 동의를 필요로 하는 미성년자의 신분도 문제였지만, 도통 가까운 거리 내에 임신중절을 취급하는 병원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미프진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가 나지 않아 국내에서는 불법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임신중단 의료접근 실태와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약물적 방법으로 임신을 중지한 189명 중 42.8%가 국내 혹은 해외의 임신 약물 판매자나 단체를 통해 약을 구매했다고 답했다. 임신중지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에게 미프진을 보내주는 국제 비영리단체 '위민온웹(women on web)'의 웹사이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에 따라 국내 접속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절실하게 약을 찾는 여성들은 가상사설망(VPN)을 사용하면서까지 접속을 시도한다.

"희소질환을 앓고 있어 계속 복용하는 약이 있는데, 미프진과 함께 복용해도 될지 걱정됐어요. 병원에서 처방받고 의사에게 안내를 받지 못하니 스스로 판단해야 했죠. 다행히 초음파 검사 결과 임신이 아니어서 최악은 면했지만, 임신중지를 고민하는 내내 인생이 무너질 듯 절망적이었고 혼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고질적인 '임신중지 허용 주수 논의'에 매몰되어 정부와 국회가 대체 입법에 손 놓고 있는 사이, '안전한 임신중지'로 대표되는 여성들의 건강권과 재생산권 논의는 음지에 머물러 있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는 "이미 임신중지는 범죄가 아니기에, 의료인은 최선의 진료를 하고 보건 당국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며 "지금부터라도 당국은 임신중지가 처벌의 영역이 아닌 건강권과 보건의료 영역이라는 점을 알리고, 보건의료인이 안전하게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도록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이혜미 허스펙티브랩장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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