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찍기와 집단괴롭힘은 '정치팬덤'이 아니다

한겨레 2022. 7. 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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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정치팬덤과 좌표찍기
적극 지지층 가리키던 용어 '팬덤'
일부서 '좌표찍기' 동의어 쓰거나
집단 사이버괴롭힘도 팬덤 취급
위험한 행태와 뒤섞임 경계해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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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어디서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중차대한 선거를 목전에 둔 시기에 이른바 ‘정치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비판 및 공격을 들었을 때 완벽히 논박하는 데 실패하면 엄청난 상실감과 스트레스를 겪는다는 것이다. 지지하는 후보가 공격받을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와는 무관하게 특정 정치인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늘 있었고 반대 세력의 정치인이나 그를 지지하는 사람에 대한 집단 공격도 인터넷과 정치가 얽힌 이래 전혀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따라 새삼스럽게 현실 정치의 핵심 단어로 팬덤이라는 말이 급하게 떠오른 까닭은 무엇일까?”

정치팬덤? 팬덤정치?

위에 옮긴 글은 5년 전 학부 수업 과제의 첫머리다. 그때가 2017년 5월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19대 대선 직후였다. 당시에는 민주당의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의 타 후보들을 향한 이른바 문자폭탄, 악성댓글, 집단 사이버공격이 문제적인 현상으로 거론되곤 했다. 이것은 간단히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정치팬덤의 만행’이라는 식으로 요약되었다. 당시 친문재인(친문) 유권자의 기세가 가장 강하고 규모가 크다 보니 친문 팬덤의 ‘만행’이 주로 보도되었고 이후 자연히 팬덤은 친문 유권자의 동의어와 같은 말로 한동안 지속되었다. 정치팬덤이라는 것이 여야와 인물을 불문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대표에 선출된 2015년부터 비문 성향 의원, 정치평론가, 기자들이 하루가 멀게 외쳤던 ‘친문 패권’ 담론이라는 전사가 있었다.

5년 뒤 정권이 교체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연인이 되었는데 여전히 팬덤이라는 것이 한국 정치의 시급하게 지양되어야 할 변칙적인 것으로 새삼스럽게 다시 거론되고 있다. 지금 정치팬덤이라는 말이 지시하는 것은 아주 많은 것을 포함한다. 정치를 의인화하여 특정 정치인 개인을 아이돌그룹 멤버 소비하듯 하는 것 혹은 정치인을 우상화하는 것, 지지자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 호전적인 극성 지지자들이 상대 진영에 집단 공격을 퍼붓는 것, 극성 지지자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유리하도록 정당을 압박하는 것, 정치인이 극성 지지자들에게 동원 명령을 내려 여론 왜곡을 시도하는 것, 정치인이 무매개적으로 지지자들과 소통하는 것, 정당 정치가 여론 왜곡에 휘둘리거나 영합하는 것 등이다. 여기에는 행위 주체가 팬들인 것과 정치인인 것이 뒤섞여 있다. 팬덤을 논할 때는 저 둘을 정교하게 구별할 필요가 있다. 논자들은 전자를 ‘정치팬덤’, 후자를 ‘팬덤정치’로 간략하나마 구별해서 쓰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치팬덤과 팬덤정치가 관념적으로는 구별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실적인 논의에서 둘을 칼로 자르듯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탓에 정치팬덤 혹은 팬덤정치를 비판하는 논평 중 상당수는 다소 김빠지는 결론을 낸다. 우상화된 정치인이 직접 나서서 극성 지지자들을 엄준히 꾸짖어달라는 것이다. 정치팬덤으로 인한 문제를, 정치인이 팬덤의 권위를 이용해서 해소해달라는 이야기가 된다.

팬덤을 비판하는 논의에서 저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기란 매우 어렵다.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정치팬덤이라는 말이 포함하는 위의 다양한 양태들을 개별적으로 따져야 한다. 그런데 저것들을 개별적으로 따지기 시작하면 문제들은 더 이상 팬덤이라는 특수한 화두가 아니라 오늘날의 커뮤니케이션 발전의 조건하 대중 정치 형식이라는 문제 설정으로 자연히 논의가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첫 문단에서 말한 것처럼 극성 지지자들의 과몰입 및 호전성, 그리고 이들을 이용한 좌표찍기와 문자폭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데 팬덤을 거론하는 것은 새삼스럽다는 말이다. 좌표찍기를 팬덤으로 설정하고 비판하면서 위에서 말한 김빠지는 결론을 내지 않고 일관된 논의를 전개하려면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처럼 정당정치를 매개로 하지 않은 정치인과 지지자 간의 직접 소통을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해야 한다.

‘팬덤’이란 이름에 가려진 위험

상향식 참여민주주의를 폄하하고 싶지 않은 논자들은 정치팬덤 혹은 팬덤정치를 좌표찍기의 동의어와 다름없는 것으로 쓴다. 하지만 좌표찍기는 팬덤과 전혀 무관한 부문에서 가장 심각하게 이뤄지고 있다. 바로 언론이다. 언론이 행하는 좌표찍기는 ‘개 호각’(dog whistle)의 형태를 띤다. 말인즉 언론의 좌표찍기는 정치인의 그것과 다르게 노골적인 동원명령으로 나타나지 않고 무해한 정보 전달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종종 정치인이 아닌 일반인을 타깃으로 잡을 때가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손녀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보도가 있다. 기사에는 그가 어느 대학의 어느 학과, 어느 전형으로 합격하였는지 자세하게 기술되었다. 대다수의 독자에게는 그저 ‘그렇구나’하고 넘기는 정보 전달에 불과하지만, 특정 집단에게 해당 정보는 공격을 퍼부을 수 있는 타깃을 제시하는 것이다. 해당 기사는 포털사이트의 인공지능(AI)에 의해 타 언론사의 ‘서울대 커뮤니티가 뿔났다’라는 기사와 병렬되면서 좌표찍기의 효능이 증폭된다.

좌표찍기, 집단 사이버괴롭힘 등에 팬덤이라는 말을 붙이면 오히려 그 위험성과 폐해가 축소된다. 팬덤의 비이성적이고 무조건적인 지지에 대해 우상화된 정치인이 거리두기의 태도를 보이면 저 해로운 행태들이 해소될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또한 팬덤이 친문 유권자의 동의어로 쓰이던 전사가 있었듯이 지금도 팬덤을 이야기할 때 친민주당 성향 유권자들의 몇몇 돌출적인 행태에 관한 이야기로 한정되고 있다. 이것은 다른 세력의 더 위험한 좌표찍기 행태를 은폐한다. 그리고 현재 정치팬덤이라는 말이 지시하는 바는 매우 많고 다양하면서 어느 것도 정확히 지시하지 않는다. 이러한 유동적인 단어는 어떤 유의미한 논쟁의 화두가 아니라 다만 상대 정치 세력을 소수 비이성적인 집단에게만 소구하는 세력으로 폄하하는 반증 불가능한 낙인으로만 기능한다.

첫 책 <프로보커터>에 이어 <급진의 20대>를 썼고, <인싸를 죽여라>를 번역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 포퓰리즘, 밈과 인터넷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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