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위헌이 뭐기에?..'대법vs헌재' 물러설 수 없는 갈등

한광범 2022. 7. 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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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한정위헌도 따라야"..25년만에 대법 재판 취소
대법 판례 정면 반박..'법률 해석권' 두고 갈등 재연
법률해석권, 사법부 존립근거.."대법 절대 못물러나"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결정에 따르지 않은 법원 판결은 취소가 가능하다는 재판은 취소가 가능하다는 결정을 내리며 법조계 파장을 낳고 있다. 법원으로서도 존립근거인 법률 해석권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 확고한 만큼 ‘한정위헌’을 둘러싼 갈등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지난달 30일 제주특별자치도 통합영향평가 심의위원이었던 A씨 등의 청구를 받아들여 재판관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한정위헌결정은 위헌결정이 아니다”는 이유로 재심청구를 기각한 대법원과 광주고법 결정을 취소했다. 사상 두 번째 대법원 재판 취소 결정이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대심판정에서 열린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에 입장한 뒤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정위헌결정은 법률 조항 자체에 대한 ‘위헌결정’과 달리 법률 조항 자체는 그대로 둔 채 특정 내용의 해석·적용이 될 경우에 한해 위헌성을 판단한 것이다. 위헌결정이 그 자체로 해당 법률 조항의 효력을 정지하는 것과 달리 변형결정의 일종인 한정위헌은 법령에 대한 특정 방향의 해석을 금지하는 성격이다.

문제는 사실상 법령의 해석권을 전제로 한 헌재의 이 같은 한정위헌결정이 헌재의 관장업무에 포함되는지 여부다. 헌법은 헌재의 관장 업무에 대해 △법원 제청에 의한 법률 위헌 여부 심판 △탄핵의 심판 △정당의 해산 심판 △국가기관 상호 간 등의 권한쟁의 심판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심판으로 규정하고 있다.

헌재가 만든 ‘변형결정’…대법 “인정 못해”

헌재는 1989년 9월 결정을 통해 “위헌과 합헌 사이 개재하는 중간영역에서의 여러 가지 변형재판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며 한정위헌과 헌법불합치 등 다양한 변형결정 방식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헌법이나 법률에 명시돼 있지 않은 결정방식은 지속적으로 논란이 돼 왔다.

특히 한정위헌결정의 경우 ‘법률의 해석권’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유일하게 법률 해석권을 갖고 있다는 입장인 법원(대법원)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때문에 대법원은 헌재의 한정위헌결정 등 ‘법률의 해석’을 전제로 한 헌재 결정의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정위헌결정을 둘러싼 갈등이 절정에 달했던 것은 1997년 이길범 전 신민당 의원의 세금소송에서였다. 한정위헌결정 기속력을 대법원이 인정하지 않자 헌재는 그해 12월 사상 처음으로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은 25년 만에 헌재가 대법원 재판 취소를 결정했다는 점에서 갈등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헌재는 이번 결정을 통해 한정위헌결정 기속력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을 향해 날을 세웠다. 법률에 대해 여러 해석 가능성이 있는 경우 합헌적 해석 영역밖의 해석에 대해서만 위헌의 범위를 정해 한정위헌 결정을 선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단순히 법률을 해석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헌법규점을 기준으로 위헌성 여부를 심사하는 작업”이라며 “위헌성 심사를 하며 합헌적 법률해석을 하는 것은 위헌심사권을 가진 헌재의 권한에 속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정위헌결정도 기속력이 인정되는 법률 위헌결정에 해당하고, 그 결정은 법원을 비롯한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기속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대법·헌재, 한정위헌 두고 서로 향해 “위헌”

헌재는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을 부인하는 법원의 재판은 그 자체로 헌재 결정의 기속력에 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헌재에 부여한 헌법의 결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결론 냈다.

이 같은 판단을 토대로 법원이 헌재의 한정위헌결정에 대해 위헌결정이 아니라며 기속력을 부인하는 재판을 한 경우엔 재판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헌재는 보란 듯이 재판소원을 금지하는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에 대해 ‘위헌결정 기속력에 반하는 재판’일 경우엔 한정위헌이 된다고 결정했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지난해 9월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자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헌재 결정은 한정위헌결정의 기속력을 부인한 대법원 판례에 대한 논리적 반박문에 가깝다. 앞서 대법원은 2013년 3월 KSS해운의 법인세부과처분취소 사건 재심청구를 기각하며 28장 분량의 판결문을 통해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정위헌결정 자체를 위헌적 행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한정위헌결정에 대해선 헌법재판소법이 규정하는 위헌결정의 효력을 부여할 수 없다”며 “한정위헌결정은 법원을 기속할 수 없고 재심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라고 못박았다. 이어 “헌법은 구체적 사건에서의 법령 해석·적용 권한은 법원에 전속하고, 그에 대한 다툼은 대법원에 의해 최종적으로 판단되며 다른 국가기관은 관여할 수 없다는 취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헌재는 법률이 합헌적 해석을 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위헌무효를 선언할 권한이 있을 뿐”이라며 “법원에 대해 법률 해석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권한은 헌법 규정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한정위헌결정은) 헌재 관장사항 외 사법권은 포괄적으로 법원에 속하도록 규정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대법원, 한정위헌 기속력 인정 가능성 없어”

대법원은 “헌재가 특정 법률해석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표명한 의견은 권한 범위를 뚜렷이 넘어선 것으로서 법원과 그 밖의 국가기관 등을 기속할 수 없다”며 “(한정위헌결정의 경우) 법률 효력을 상실시키지 못하는 이상 헌법재판소법 47조3항에서 규정한 재심사유가 존재한다고 할 수 없다”고 결론 냈다.

대법원은 “법률해석을 헌법소원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재판소원을 금지하는 헌법재판소법 취지를 위반한 것”이라며 “아울러 사실상 재판절차에서 또 하나의 심급을 인정하는 결과로서 현행 헌법과 법률 아래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법원이 재판에서 헌재의 법률해석이나 이해를 참고할 필요는 있지만 두 기관이 별개 독립 기관이고 권한이 다른 이상 법률해석에 기속력이 있음을 전제로 반드시 이를 따라야 한다고 할 수 없으며, 법률해석을 이유로 곧바로 확정판결 효력을 배제할 수도 없다”고 결론 냈다.

서울법원종합청사. (사진=연합뉴스)
법조계에선 대법원이 한정위헌결정 기속력에 대한 이 같은 판례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헌재의 법령 해석권을 인정하는 순간 사법부의 가장 핵심적 권한이자 존립 근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대법원 판단은 법령 해석의 위헌 여부까지 이뤄진다. 하급심 재판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최종 권한을 갖는다”며 “한정위헌결정을 이유로 헌재가 최종 결정에 대해 한번 더 판단을 한다는 것을 대법원 입장에선 결코 용납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즉, 헌재의 재판 취소 결정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진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A씨 사건의 경우 재판 취소 결정으로 ‘재심 청구 단계’로 돌아간 상태다.

두 기관 갈등, 결국 국민 피해…“입법으로 해결해야”

통합영향평가 심의위원으로 위촉됐던 A씨는 심의위원을 공무원으로 보는 법에 따라 뇌물혐의로 실형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는 헌재가 “제주도 통합영향평가 심의위원 중 위촉위원을 공무원으로 해석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한정위헌결정을 내리자, 이를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재심청구 사건을 애초 심리했던 광주고법에서 다시 재심 청구 인용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설령 광주고법이 재심청구를 인용하더라도 대법원이 한정위헌결정 기속력에 대한 판례를 바꾸지 않는 경우 재심청구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한 고위 법관은 “법원은 재심청구를 기각하고 A씨는 이 결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헌재는 다시 기각 결정을 취소하는 식의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며 “이미 대법원과 헌재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결국 헌법 개정이나 입법을 통해 두 기관 간의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의 위상이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강해지는 상황에서 최고 법원으로서의 역할을 둘러싼 대법원과의 갈등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수도권 법원 소속 한 부장판사는 “개헌 당시 애매한 역할 분담 때문에 두 기관 간의 갈등을 애초에 예정돼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국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두 기관 간 갈등을 이제라도 사회적 논의를 통해 바로 잡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광범 (toto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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