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잇] 지키고 싶었던 건 결국 추억이었다

2022. 7. 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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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소방관 심바씨 | 마음은 UN, 현실은 집나간 가축 포획 전문 구조대원


나는 어릴 적부터 비염이 있어서 자다가 종종 깨는 편이다. 왼쪽으로 누우면 왼쪽 코가 막히고 오른쪽으로 누우면 오른쪽 코가 막힌다. 천장을 보고 자면 양쪽 코가 막혀서 그냥 오른쪽으로 누워서 잔다. 그나마 숨쉬기 편한(?) 선택을 하는 거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코가 막혀 깨어보니 새벽 5시였다. 출근을 하려면 아직도 2시간이나 더 남았는데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분명히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월급 때문인가... 이번 달에는 너무 스치듯 월급과 안녕을 고하기는 했다. 그러게 왜 또 신용카드를 만들어가지고... 그런데 이날의 허전함은 결이 좀 달랐다. 무언가를 빼앗긴 느낌이 아니라 내가 꼭 알아야 하는 것을 까먹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출근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구조차는 인적이 드문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 무전기에서 무전이 날아왔다. "화재 오인 신고로 확인되니 전 차량 귀소" 신고 정신이 투철한 한국 사람들의 장점 때문에 화재는 은근히 오인 신고가 많은 편이다. 오인 신고를 겪는 출동 대원들의 마음은 허탈감과 함께 안도감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감정들로 범벅이 된다. 이날도 그런 마음이었다. "들어가면서 커피나 시킬까? 뭐 마실래?" 팀장님이 먼저 운을 떼셨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마음은 눈앞을 지나가는 전신주만큼이나 의미 없고 공허했다.
 

EP1. 추억이 깃든 나이키 신발이 불탔다


"오빠, 이거 한번 먹어봐 봐"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친척 동생이 하얀 스틱포를 건네준다.

"오빠 이게 생유산균이라는 거야, 살.아.있.는.유.산.균. 먹어보면 아침이 다를걸?"

"야, 그러면 지금까지 우린 죽은 유산균을 먹었다는 거야? 아무리 유산균이라도 말라서 비틀어진 애들이 이 비닐포에 들어있는 것일 텐데 감히 유산균 따위가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고?"

말은 그렇게 하고서는 물 한 잔과 함께 훌렁 삼켰다. 갑자기 울컥하고 올라왔다. 별것도 아닌 거 나도 알지만 갑자기 어느 사고 현장에서 보았던 망자의 얼굴이 떠오르더니 죽음이 얼마나 슬프고 허망하고 안타까운 일인지. 삶은 죽음과 어떤 궤적에 있는지 30분짜리 연설이 턱 밑까지 올라와 입술을 괴롭혔다. 갑자기 철학자로 빙의한 나를 본 친척동생은 '저 오빠 왜 저래'라는 눈빛으로 쏘아보고는 TV로 고개를 휙-돌렸다. 나는 원래 둥글둥글한 사람인데 이 허전함의 발신지가 어디인지 몰라 마음에 모서리가 생기는 듯했다.

동생네 소파에 머리를 대고 낮잠을 청했다. 내가 사는 집에 불이 난 뒤로 종종 동생네에 들러 낮잠을 자고는 했는데, 소방관이라도 해도 자기 집에 불이 나면 딱히 묘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까맣게 엉망이 된 집안을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있던 추억들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밖으로 버렸었다. 그나마 다시 빨아서 사용 가능한 물건들만 급히 차에 실어 친척 동생 집으로 옮겼는데,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다 쓰면 이렇게 친척동생 집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잤다. 그렇게 마음의 안식처였던 소파에 누워 잠을 자고 나니 불에 타 없어진 물건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태국에서 산 반바지, 안마기, 애착 이불, 나이키 운동화....

"아 나이키 운동화! 나이키 운동화를 잃어버렸구나"

이유 모를 허전함, 결국 알아냈다.

예전에 사막에서 열리는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는 나에게 친한 동생이 이걸 신고 꼭 완주하라며 사줬는데, 치수가 좀 작았던지 왼쪽 발가락 발톱들이 일렬종대로 말끔하게 빠져나갔던 기억이 있다. 발이 너무 아파서 딱 한 경기 밖에 신지 못했지만 내겐 의미 있는 신발이기에 신줏단지 모시듯 모셔놨었다. 그런데 하필 그 신발을 둔 신발장이 우리 집 화재의 주범, 보일러 옆에 있었다. 동생네에서 집으로 돌아와 신발장을 확인하니 구두 두 켤레도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알아챘다. 벼락거지가 이런 기분인가. 잘 신지도 않는 신발들이었는데 막상 불에 타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남들 다 있는 나이키 신발 한 켤레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속이 쓰렸다.

EP2. 지키고 싶었던 건 결국 추억이었다


그날은 단독주택 화재 현장으로 출동한 날이었다. 쏟아지는 소방차 물줄기를 뚫고 한 아저씨가 집안의 물건들을 열심히 마당으로 옮기고 있었다. 흙과 나무로 지어진 집은 족히 50년은 넘어 보였다. 그런데 온몸이 물에 젖은 아저씨는 매캐한 연기에도 아랑곳 않고 집을 들락거렸다. 소방관들이 말리는데도 필사적으로 물건을 나르는 아저씨 손에는 정체 모를 종이 뭉텅이가 들려있었다. 그걸 지켜보던 노모도 소방관의 눈을 피해 집으로 들어가려던 걸 아들인 아저씨가 말렸다.

"어머니! 어머니는 들어가지 마요!"

"선생님!! 위험하니깐 두 분 다 나오셔요. 예?!"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던 현장지휘팀장님이 끝내 언성을 높였다. 소방관의 말에 풀이 죽은 노모는 창고 건물 그루터기에 앉아 고목나무 같은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다른 한 손에는 무엇인지 모를 빨간 물건을 쥐고 계셨다. 귀소 하라는 무전을 받고 구조차로 돌아가는 길에 노모가 계신 쪽을 찔끔 훔쳐보았다. 그 빨간 물건을 품에 꼭 안으며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계셨다. 자세히 보니 사진첩이었다.

"목숨 걸고 빼오려 했던 게 사진첩이었구나..."

그때 일을 떠올리자 순간 내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난 나이키 운동화를 잃은 것이 아니었다. 나이키 운동화와 함께한 소중한 추억을 잃었던 것이다. 나이키 운동화는 당시 나에게 용기였다. 가장 가난했고 무모했던 시절 그 용기를 잊고 살았다. 잊고 살았으니 잃고 살았다. 2011년 여름 한국에서 아무도 도전하지 않은 사막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1년 안에 완주하겠다며 호주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때 누구의 응원도 받지 못했다. 군대도 힘들게 다녀와서는 또 뭐 하러 힘든 걸 하느냐는 반응이 대다수였고, 대회 출전의 의의를 10번을 넘게 설명해도 어머니는 "그러니까 네가 그걸 왜 해야 하냐"며 말리셨다.

그중 유일하게 나를 응원했던 교회 동생이 있었다. 나의 멋진 선택을 응원한다며 자신도 세계 일주의 꿈을 꼭 이루겠노라며 나와 사이다 잔을 부딪쳤다. 출국을 앞두고 다리에 깁스를 한 동생이 선물이라며 내게 운동화를 내밀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발을 다친 기념으로 중고나라에 팔고 내 운동화를 샀다는 것이다. 나이키 신발이 내 발과 썩 궁합이 좋지 않다는 걸 경기 중에 알았지만 그래도 난 그 운동화가 좋았다. 비로소 용기가 생겼다.

그밖에 내 여행의 시작과 끝이었던 태국에서 산 반바지, 여름에도 겨울에도 내 피부처럼 덮었던 애착 이불과의 추억도 단 한 번의 불로 모두 잃어버렸다. 화재는 비단 생명과 재산을 잃기 때문에 위험할 뿐 아니라 추억과 기억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무서운 거였다.

시간이 지나고 깨닫게 되었다. 마흔이 훌쩍 넘은 단독주택 집 아들이 지키고자 했던 건 물에 젖은 종이와 책들이 아니라 그것들과 함께한 추억이었음을. 그의 방 안엔 법조계를 향한 열정과 인내, 끝내 이루지 못했던 꿈, 술 냄새 가득한 결단이 한쪽에 쌓여있었다. 그분은 미리 알았던 것 같다. 불에 타고 남은 재를 가슴에 안고 우는 이유는 아까워서가 아니라 아껴서라는 걸. 곧 그리워질 거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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