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라는 수식이 감춘 것들에 대한 질문

2022. 7. 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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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천초 부당 징계 등의 사태를 통해 본 진보교육감의 현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6월 29일 단식 16일차의 아침, 윤용숙 선생은 몸을 세울 수가 없을 정도로 어지러웠다. 6월 30일이면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의 임기가 끝인데, 그때까지는 버텨야하는데…. 그녀는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 서럽고 남은 단식자들에게 미안했다.

서럽고 억울하고 답답한 날들을 만들어준 것은 소위 '진보로 분류된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이었다. 강원도교육청이 유천초등학교에 대한 강원행복더하기학교 (이하 혁신학교) 지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시작된 문제다.

7월 1일이라는 날짜는 전교조 유천초등학교 분회 교사들에게는 남다르다. 교육감이 바뀌는 날이기 때문이다. 강원도교육청은 학교의 주체인 학생이나 학부모, 교사 등 누구에게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혁신학교지정을 취소했다. 최초로 학교가 아닌 도교육청이 나서서 지정취소를 한 것이다. 어쩌면 윤 선생을 주저앉힌 것은 단식이 아니라 진보교육감의 이름으로 행해진 비민주적인 권위주의라고 할 수 있다. 실제 단식을 시작한 이후 민병희 교육감에게 교섭요구서를 전달하려는데 다가가지도 못하게 물리적으로 막아 다친 적도 있다.

부당징계와 부당전보 그리고 표현의 자유 탄압까지

강원도교육청은 교사들과 시민사회가 비판하자 나중에서야 공개한 사유는'비합리적 의사결정 구조에 의한 학교 운영, 학교구성원 간 지속적인 갈등 유발 등이었다.(☞관련기사)

그러나 갈등이 없는 조직은 없다. 갈등을 얼마나 민주적으로 풀 문제이지 일방적으로 취소할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혁신학교 지정 취소는 일반적인 학교운영에도 맞지 않는 방식이었다. 1년 단위로 수업계획 등이 운영되는데 1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취소했다. 학교 내 갈등이 크다면서 표적감사를 하더니 갑자기 지정취소를 통보했다. 구성원의 동의 없이 강원도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이어서 전교조 유천초분회 교사들은 행정폭력이라고 명명한다.

▲단식 16일차에 쓰러진 단식자 윤용숙 교사를 일으켜세우는 단식자 김나혜 교사 ⓒ명숙

민병희 교육감이 한 일은 혁신학교 지정취소만이 아니었다. '혁신학교'라는 타이틀에 맞게 학생들과 교직원들과 논의하고 새로운 교육모델을 꾸려온 전교조 유천초 분회 교사 3명, 남정아, 윤용숙, 김나혜 교사를 징계했다. 그들은 학생들이 학습의 노예가 아닌 학교의 주체로 만들기 위한 여러 실험을 했다. 학생들의 놀 권리를 보장을 위해 쉬는 시간도 40분이었고 학생들끼리 모이는 회의도 있었다. 다양한 실험을 하기 위한 기획회의는 교칙에 없는 회의를 만든 월권이며 교칙위반이라며 그조차 징계사유가 되었다. 더 황당한 것은 기획회의의 책임자인 교감을 제외하고, 2인의 기획부장 중 한 명이었던 남정아 교사를 징계했다

2021년 11월 15일 징계위에서 징계 결정이 됐고 11월 29일 징계가 시작됐다. 표적 감사는 왜곡으로 가득했다. 대표적으로 "행정실장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집단린치를 가함"이라고 사실을 왜곡하는 표현까지 썼다. 영어 단어 린치(lynch)는 폭행이다. 그러나 행정실장에게 유천초 혁신학교 지정업무에 관해 확인을 요청한 집단린치라니, 왜곡도 심하다. 전체 다모임(전체 회의)과 학년협의회 과정에서 연수 참여나 공개 수업을 주제로 이루어진 공적 논의와 교육활동을 '갑질'이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회의 시간에 성희롱 발언에 대해 사과를 요구한 것이 명예훼손이라며 징계사유가 된 것이다.

더 이상 세 명의 교사는 유천초 교사로 일하지 못한다. 2022년 3월 1일자로 세 명의 교사를 각각 다른 지역의 학교로 강제 전보시켰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육노동자의 노동권 박탈이기도 하다. 학생들과 동료들로부터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라도 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느껴질 정도다. 부당 전보된 학교는 거주지로부터 멀어서 물리적 피해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교사들이 집회신고를 하고 한 농성과 집회구호에 대해 명예훼손 등으로 가처분소송까지 했다.

진보교육감의 명명이 준 한계

민병희 교육감은 전교조 출신으로 3선 교육감이다. 3선을 하는 동안 권위적 태도로 변질된 것인지, 3선을 하기 위해 초심을 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의 유천초에 대한 행보는 민주주의나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

사실 강원도교육청만이 아니라 진보교육감에 대한 평가는 자신 있게 '진보'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최악을 막자는 차악의 논리, 그것이 하나의 진영이 되는 순간에 보수적인 교육정책을 공공연하게 내놓은 교육감과 거의 차이가 없는 교육감들이 많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양당 간의 비교가 크게 의미 없던 문재인 정부의 반노동정책과 흡사하다. 얼마 전 퇴임한 광주 교육감의 퇴임사에 대한 교육단체들의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광주지역 단체들은"장휘국 교육감 1기에 대한 지역사회의 평가에서도 그랬지만, 마지막 3기까지 장휘국은 일관되게 소통의 부족을 드러냈고, 독단과 독선, 패거리 인사로 권력을 남용"하였다고 평가했다.

더 이상 전교조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진보교육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교육감의 정책이 학생과 교사, 교직원들을 위한 정책인지, 시민사회와의 소통을 어떻게 이어나가는지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운동사회가 진보교육감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민병희 교육감의 비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유천초 투쟁이 던진 물음

마찬가지로 유천초분회 교사들이 요구하는 혁신학교 지정 취소 철회라는 요구를 얼핏 보고 판단하지 않기를 바란다. 유천초 교사들이 혁신학교에 물신화된 추앙이 있어서 혁신학교 지정취소를 철회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천초에서 벌어지는 인권의 후퇴에 대한 항의로 그러한 요구가 마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혁신학교 지정 철회이후 유천초에서는 학교민주주의나 학생들의 권리나 교사들의 권리가 뒤로 후퇴하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 '왜 우리에게 묻지 않고 마음대로 혁신학교를 취소했냐?'고 물었고 학생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학생들에게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에 대해 질의와 항의성 서명 운동을 진행한 후 서명지를 전달하면서 교장에게 들은 말이기도 했다. 도교육청에서 학교방문 온 날 교장실에서 직접 만나서 학생들이 전달했는데 그 자리에서 교장은 '달라지는 게 없다'고 했다. 교사, 학부모와 시민사회가 혁신학교 지정취소를 비판하자 유천초 교장은 학교 누리집 '유천초 학부모님께 드리는 글'에서 "행복 더하기 학교 지정취소로 학교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혁신학교가 지정 취소된 이후, 학생들의 쉬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학생들은 교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교사들의 연가조차 교장은 받아주지 않고 있다. 학생과 교사들은 학교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 유천초 교사들의 요구를 '혁신학교에 대한 물신화된 맹신'으로 오독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킨 손가락만을 보고 있는 꼴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혁신학교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많다. 학교민주주의를 바라는 사람은 혁신학교 역시 관료적 모델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를, 입시가 학교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사람은 혁신학교가 학생들의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한다. 양쪽 모두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어떤 학교를 지향할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내용을 고민할 때일 것이다.

유천초 교사들이 '혁신학교에 대한 맹신'이 있어서 혁신학교 지정취소 철회를 주장하는 것이 아닌 만큼 학교 내 민주주의, 더 평등한 교육환경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행정 권력의 남용을 막을 수 있을지 고민할 때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열린 자세

오늘로 차기 교육감의 임기가 시작됐다. 유천초 공대위와 유천초 분회가 교섭요구서를 교육감인수위에 전달했다. 진보교육감이라는 민병희 교육감시기에는 교육청의 현관문조차 꽉 걸어 잠갔던 현실과 달리 문이 열렸다. 보수교육감시대에 열린 문을 보면서 착잡한 감정 외에도 그것의 의미는 닫힌 교육행정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열린 문은 아닐까.

▲악수하는 민병희 교육감-신경호 당선인 ⓒ연합뉴스

유천초분회 교사들의 투쟁은 교육운동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질문을 던져준 의미가 있다. 진영논리에 갇힌 교육감의 관료적 일방적 행정권력을 통제하지 못했던 과거에 대해 돌아봐야 한다. 교육감이 누가 되든 교육이, 학교가 어떤 교육을 지향해야하며 교육의 주체인 교사, 학생, 교직원들이 어떻게 소통하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향할 수 있도록 견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시작돼야 한다. 열린 문이 유천초 투쟁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협력과 상생, 진한 토론으로 이어지는 시작이기를 바란다.

단식이 적정기간동안은 몸의 독소를 뺀다고 한다. 그래서 건강단식도 많이 한다. 유천초 교사들이 하는 단식투쟁은 독소는 어쩌면 진보교육감이라는 허상, 혁신학교라는 상반된 허상을 빼는 시간인지 모른다. 그리고 물신화를 넘어 구체적인 실물을 볼 때 우리는 진영논리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단식투쟁은 쉬지도 못하고 거리에서 자니 건강과 거리가 먼 건 당연지사다. 더구나 단식이 2주는 넘어서면 건강에 해롭다.

하루 빨리 단식교사들이 단식을 풀고 일상을 돌아올 수 있도록 강원도교육청이 해법을 내오길 기대한다. 부당징계와 부당전보, 혁신학교 지정철회 과정에서의 행정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학교구성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더 이상 단식하다 쓰러진 교사들이 개인의 힘이 약한 것을 자책하며 미안해하는 서글픈 교육환경이 아니라 힘이 없는 교사도 문제제기하면 받아들여지는 교육공간을 만드는 첫발을 떼길 기대한다.

※ 이글을 발행하려는 즈음에 강원도교육청과의 교섭에서 합의가 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늦었지만 부당징계당한 단식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수 있어 다행이다.

▲전교조유천초 분회와 강원도교육청이 합의한 합의서 ⓒ명숙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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