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인사검증 보고 오겠다" 미국 간 한동훈.. FBI는 어떻게 하길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27일 ‘법무부에 공직자 인사검증을 담당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을 두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미국이 그렇게 한다”고 답했다. 미국 역시 법무부 산하 기관인 연방수사국(FBI)이 인사 검증을 담당한다는 취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윤 대통령 발언 한 달 만인 지난달 29일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주된 목적은 미국에서 공직자 인사 검증을 맡고 있는 FBI를 방문해 인사 검증 시스템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크리스토퍼 레이(Christopher Wray) FBI 국장을 만난 한 장관은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의견을 교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인사검증 어떻게 하길래
미국의 대통령 임명직 공직자 인사 검증은 백악관 대통령법률고문실(OCP)이 주관한다. 백악관이 인사 검증 주체이고, 백악관 요청에 따라 FBI와 국세청(IRS), 공직자윤리국(OEG) 등이 세부 검증을 하는 식이다. 검증에 걸리는 시간은 대개 2~3개월이다.
우선 후보자는 비교적 간단한 개인자료진술서(PDS)를 백악관에 제출해 검증받는다. 이 단계를 통과하면 후보자는 국가안보직위질문서(QNSP)를 다시 백악관에 제출하고, FBI가 이를 넘겨받아 본격적인 검증에 나선다.
QNSP의 질문은 광범위하고 구체적이다. △과거 7년간 거주지와 거주지별 알았던 사람 중 한명의 이름·주소·전화번호 △중학교 졸업 후 7년간 학력 △ 과거 7년간 직장 명칭·주소·상관이름·주소·전화번호 △현재 및 과거 배우자들의 이름·생년월일·주소·전화번호 △부모·형제· 자녀·인척의 인적사항 △ 군복무경력 △과거 7년간 방문국가 내역 △과거 7년간의 진료 관련 내역 △과거 7년간의 불법약물 사용 및 알코올 남용 내역 △피조사·범죄·부채·소송 관련 경력 등 200여개 질문이 포함된다.
특히 FBI는 후보자 주변 인물(직장 동료·상사, 이웃, 친척 등)을 직접 방문 인터뷰해 후보자가 QNSP에 기재한 내용이 사실인지 등 광범위한 내용을 조사한다. 이들로부터 후보자와 가까운 인물들을 다시 추천받아 인터뷰를 하고, 다시 이들로부터 또 다른 인물들을 추천받아 인터뷰하는 등 복수의 방문 검증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직자로서 부적합한 정보가 발견되면 백악관에 보고하고 심층조사를 실시한다.
FBI는 이렇게 수집한 인사 검증 결과를 백악관에 서면 보고하는데, 적합·부적합 여부 등 의견은 일체 배제하고 조사한 사실만을 기재하게 돼 있다. 백악관의 최종 검증이 완료되면 대통령이 직접 후보자 지명 발표를 한다. 이후 상원에서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 인준청문회, 상원 전체회의 및 표결 등 절차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첫 시험대 오른 인사정보관리단… “객관성 확보가 관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정권에서 사정(司正)과 정보 조사, 인사 검증 등 기능을 했던 민정수석실의 폐해를 지적하며 이를 폐지시키고, 지난달 7일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해 인사 검증을 맡겼다. 윤 대통령은 이에 대해 “대통령 비서실이라는 데는 그런 정보(공직 후보자 비위 의혹 등) 수집 업무를 안 하고 받아서 해야 객관적으로 할 수 있고, 자료가 축적될 수 있다”며 “그래서 미국 방식대로 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은 단장과 인사정보 1·2담당관 등 총 20명으로 구성된다. 1담당관은 공직 후보자의 사회 분야 정보 수집·관리를 담당하고, 2담당관은 경제 분야 정보를 수집·관리한다. 대통령실 인사기획관실이 후보자 추천 등 인사 전반을 주관하며, 검증 기능은 법무부 산하 기관이 담당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미국의 인사 시스템 구조가 거의 같아졌다고 볼 수 있다.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은 최근 행정안전부로부터 경찰 치안정감들에 대한 인사 자료를 넘겨받아 차기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한 첫 인사 검증 작업에 착수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 측근인 한 장관 직속으로 인사정보관리단이 설치된 탓에 중립성이 담보되겠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공무원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 대통령비서실에서 인사 검증 업무를 수행했던 한 인사는 “FBI에 있는 인사검증전담조직은 법무부 산하이지만 오직 백악관하고만 소통할 뿐 법무부 장관에게는 인사 검증 내용과 과정을 일절 보고하지 않는다”며 “인사정보관리단은 현재 최종 보고서를 장관을 거쳐 대통령실에 전달하게 돼 있는데, 이 과정에서 장관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FBI는 수십년간 인사검증 업무를 수행하며 절대로 가치 판단을 하지 않고 팩트만 나열한다는 철칙을 만들었는데, 신생 조직인 인사정보관리단이 얼마만큼 객관성을 확보할 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미국의 인사 시스템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인사 검증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진원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의 인사 청문 대상 공직은 1000개가 넘어 주목을 받는 고위공직 후보자라면 이미 과거 인사검증을 통과한 인물이 대다수”라며 “상원에서 후보자 인준을 보류하면 대통령은 철회할 수밖에 없다 보니 인사검증도 철저히 하고, 상원도 대통령실 인사검증을 신뢰해 인준 거부율이 2%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조 교수는 “그러나 한국은 의회가 청문보고서를 채택하든 말든 지금껏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했고, 국회도 청문회를 후보자 ‘망신주기’라는 정치적 이벤트로 다루고 있지 않느냐”며 “미국의 제도만 형식적으로 가져오는 것으로는 획기적인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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