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책] 정부는 어디까지 개입하는 게 좋을까?..새뮤얼슨 vs 프리드먼

김태형 2022. 7. 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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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어느 날, 저명한 미국 경제학자 집에 전화가 한 통 옵니다. 동이 트기도 전인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수화기를 들자 저쪽에서 누군가가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노벨상을 받게 되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경제학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래와 같이 답을 합니다.

"열심히 일한 보상을 받으니 좋군요."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상여금 더 받게 되어서 좋다는 식으로 말한 이 학자, 20세기 후반 미국 경제학을 대표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폴 새뮤얼슨입니다. 새뮤얼슨은 당시 옆에 있던 딸이 너무 건방지게 답한 건 아니냐고 하자, 그렇지 않다며,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6년 뒤 또 다른 미국 경제학자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게 됩니다. 폴 새뮤얼슨과 함께 20세기 후반 미국 자본주의 경제학을 대표하는 또 다른 학자, 밀턴 프리드먼입니다.

평소에도 직설적인 언행으로 이름을 떨쳤던 밀턴 프리드먼은 노벨상을 받았을 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프리드먼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그를 만난 방송국 기자가 '지금 커리어의 정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와 같은 질문을 하자 아래와 같이 답을 했습니다.

"내겐 어쩌다 노벨 위원회 일을 맡게 된 일곱 명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보다 50년 뒤 후손들이 내 업적을 어떻게 평가할지가 더 중요합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아 좋기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듯이 넘어가는 두 사람, 새뮤얼슨과 프리드먼은 20세기 말 미국 경제학계의 두 기둥으로 불리고는 합니다.

그런 만큼 이 두 사람에 대한 글은 꾸준히 나왔는데요. 얼마 전 또 한 권의 책이 새로 출간됐습니다. '새뮤얼슨 vs 프리드먼'입니다. 로이터 등 여러 언론에 칼럼을 기고해 온 영국 언론인 니컬러스 웝숏이 썼고 과학과 경제 분야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가영이 옮긴 '새뮤얼슨 대 프리드먼'은 두 학자의 전기와 같은 책입니다. 일반 전기와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의 삶뿐만이 아니라 학문적 업적과 경제 이론까지도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사진: 부키 제공


책은 앞서 일화로 들었던 노벨 경제학상 수상 반응을 비롯해 여러 사례를 들면서 두 사람의 인생을 풀어나갑니다.

인생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기에, 저자는 이들 두 사람의 어린 시절부터 조명합니다. 책은 두 사람이 닮은 점이 많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 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시카고대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믿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경제를 보는 관점은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미국의 자본주의를 옹호했다는 사실은 같아도 경제 발전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지, 방법론에 들어가서는 생각이 달랐던 것이죠.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새뮤얼슨은 정부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정부가 예산이라는 돈을 쓰면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면, 민간으로 흘러 들어간 돈이 다시 어딘가로 또 돌게 마련이고, 연이어 돈이 돌고 돌고 돌면서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그렇게 나라의 부라 할 수 있는 국민소득을 키운다는 얘기였습니다. 나랏돈으로 하는 정책이라고 해서 흔히 재정정책이라고 불립니다.

책은 어린 시절 새뮤얼슨의 아픈 기억을 소환하면서 그가 왜, 어떻게 정부의 역할에 관심을 두게 됐는지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1915년 태어난 새뮤얼슨은 도서관의 책을 섭렵하면서 몇 학년을 건너뛸 정도로 똑똑했습니다. 일찍부터 수학에도 재능을 보였던 그는 열여섯 살에 시카고대학교에 조기 입학합니다. 10대 중후반에 대학교 신입생이 된 것인데, 그가 대학교 강의실에 첫발을 들인 날은 1932년 1월 2일이었습니다. 미국이 대공황의 충격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은행은 파산하고, 일자리는 없고, 가족도 이웃도 다 힘들어하는데, 경제학은 그의 답답함을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당시 경제학이 해결책을 보여주지 못했던 겁니다. 시장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믿음이 컸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구체적인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었을까요? 그가 다니던 시카고대학교 교수들은 정부가 사람들의 고통을 덜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의견을 고수했다고 합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하는 시카고학파는 그가 보기에 악어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고 책은 전합니다.

폴 새뮤얼슨


그렇지만 새뮤얼슨은 대학에 입학하고 한 해 뒤인 1933년, 미국의 경제 부흥 방안인 뉴딜정책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는 '(과거) 정부 지출이 크게 늘면서 경기가 좋아지는 걸 봤기 때문에 사업가가 아니라 경제학자가 되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새뮤얼슨은 1941년 박사 학위를 받고, 1949년 베스트셀러가 된 '새뮤얼슨의 경제학'을 출판합니다. 그의 경제학 교과서는 케인스주의를 두둔하고 편들었습니다. 책은 새뮤얼슨이 '교과서에 극단적 케인스주의를 드러내면서 당시 미국 정치권의 표적이 됐다'고 전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냉전 체제가 시작되면서 미국에서 거센 반공주의 물결이 일었는데, 정부 지출을 늘려 일자리를 만들자는 새뮤얼슨의 주장은 공산주의와 닮았다는 의혹'을 받게 됐다는 얘기였습니다.

외부에서 어떤 평가가 나오건, 학자의 길을 걸어가던 새뮤얼슨은 1951년 또 하나의 논문을 발표합니다. 실업률을 낮추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이 논문에서 '경기 변동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공공 지출 정책과 조세 정책을 적절히 조합해 써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화폐의 역할이나 중앙은행의 통화량 조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책은 '통화 이론을 배제하기로 한 새뮤얼슨의 결정이야말로 그가 통화주의자 프리드먼과 의견 차이를 보이는 근본 원인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책이 전하고 있는 대로 밀턴 프리드먼은 통화의 중요성을 역설한 학자입니다. 그는 폴 새뮤얼슨보다 3년 앞선 1912년 태어났습니다. '늘 경제적으로 불안하기는 했지만, 집안 분위기는 따뜻하고 화목했다'고 합니다.

그가 10대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납니다. 어머니 혼자 가계를 꾸려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넉넉하지 않았던 집안 사정이 더 어려워집니다. 프리드먼은 대학에 가고 공부를 계속했지만, 웨이터나 가게 점원 등의 일을 하며 학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습니다. 책은 '돈이 부족한 집에서 자란 경험은 프리드먼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합니다. '훗날 경제학자로 성공해 노벨상을 받고 백만장자가 된 이후에도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 때면 꼭 수신자 부담 전화를 이용'했을 정도로 절약이 습관화됐다고도 전했습니다.

성실하고 똘똘한 프리드먼은 1932년 가을, 시카고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건물에서 자신보다 세 살 어리지만 조숙했던 학생 폴 새뮤얼슨을 만납니다. 새뮤얼슨의 천재성에 대해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그는 처음부터 강한 라이벌 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둘은 평생의 친구이자 경쟁자가 됩니다.

밀턴 프리드먼


공부를 이어 나갔던 프리드먼은 루스벨트의 뉴딜 프로그램 덕분에 1935년 여름부터 정부 기관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프리드먼은 루스벨트의 시장 개입 정책이 대부분 시행착오적이고 효과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자신이 뉴딜 정책의 수혜를 입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고 책은 전합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데다 정부 정책의 도움으로 일자리도 얻었던 프리드먼, 얼핏 젊은 시절의 경험만 놓고 보면 정부 정책의 중요성을 역설해야 할 것 같은 개인사를 지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그는 정부가 섣불리 시장에 개입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시장이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게 그래도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가 그렇게 말해준다고 강조했습니다. 타고난 똘똘함에다 성실함, 자신감으로 무장한 채 혼자 힘으로 갖가지 어려움을 헤쳐 나가며 자수성가한 그는 누구나 자신처럼 열심히 살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부정적 생각, 이 점이 그의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새뮤얼슨과 다른 점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통화 정책에서도 차이를 드러냅니다. 정부는 한 발 빠져있고, 대신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면 된다는 게 반케인스주의자로 불리며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프리드먼의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프리드먼이 무조건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건 지켜만보자는 식의 주장을 펼쳤던 것은 아닙니다. 프리드먼은 미국의 닉슨 정부 당시 '부(負)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세금 추징과 복지를 결합해 소득이 없거나 적은 가구에 부의 세금을 매겨 돈을 오히려 지급해 주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닉슨은 그의 주장에 관심이 없었지만, 한국 보수 진영 사람들 가운데는 프리드먼의 아이디어를 거론하며 기본소득 대신 부의 소득세를 도입하자고 주장하고는 합니다.

책 '새뮤얼슨 vs 프리드먼'에는 경제학에 흔히 등장하는 그래프가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수식도 없습니다. 그래도 두 사람의 삶을 그려내면서 자연스럽게 재정정책, 통화정책 등 그들의 이론을 풀어냅니다.

저자는 책에서 누구의 이론이 더 맞고, 누구의 이론이 덜 맞는지, 단정 짓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새뮤얼슨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또 프리드먼의 인생역정을 쫓아가다 보면 그의 주장에도 귀 기울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저자는 책의 뒷부분에서 코로나 시대를 언급하며 '코로나바이러스는 큰 정부의 필요성을 증명했을 뿐 아니라, 정부가 어려울 때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최종 대출 기관이자, 수천만 명의 실업자를 빈곤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임을 보여 주었다'고 밝혔습니다. 새뮤얼슨에게 판정승을 내린 것인가, 생각이 들게도 하는 문장입니다. 그렇지만 '새뮤얼슨 vs 프리드먼'은 단순히 새뮤얼슨이 옳은가, 프리드먼이 옳은가를 밝히기 위한 책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겁니다.


책은 경제 현상이라는 게 생각만치 단순하지 않고,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경제이론은 사실상 찾기 힘들고, 그럼에도 어떤 방법이 더 나은가를 끊임없이 탐구해야 나가야 한다는 점을 두 학자를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의 저자는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학을 대표하는 두 학자의 삶을 통해 경제는 경제문제만이 아니라 정치문제이기도 하다는 점 또한 말하려 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책 '새뮤얼슨 vs 프리드먼'은 경제학자들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경제 이론에 낯선 사람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 수도 있을 텐데요. 한국어판 책 앞부분에 글을 올린 박기영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의 말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기영 금융통화위원은 이 책에 대해 '경제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경제학원론 수업 정도를 들은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무척 흥미롭게 읽고 다양한 생각거리를 가질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김태형 기자 (in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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