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꽃의 영화뜰] 장애를 연기한다? 보여준다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2022. 7. 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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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공히 연기 잘하는 배우로 평가받는 문소리의 이름을 떠들썩하게 알린 작품은 2002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일 것이다.

그는 몸을 힘겹게 가누며 말 한마디 뱉는데도 꽤 시간이 걸리는 지체장애인의 모습을 '진짜처럼' 연기하면서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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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

명실공히 연기 잘하는 배우로 평가받는 문소리의 이름을 떠들썩하게 알린 작품은 2002년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일 것이다. 그는 몸을 힘겹게 가누며 말 한마디 뱉는데도 꽤 시간이 걸리는 지체장애인의 모습을 '진짜처럼' 연기하면서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안겼다. '배우'가 아닌 '여배우'로 불리는 게 더 흔하던 시절, 장애 없는 젊은 여자가 132분간의 러닝타임동안 '장애 표현으로 시작해 장애 표현으로 끝맺는' 연기를 선보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태도와 능력을 동시에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한국 영화계에서 장애는 '연기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는 배우의 역량이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장르기도 했다. 2000년대 초중반 제작, 개봉된 작품들은 특히 그렇다. 2005년 개봉한 '말아톤'이 조승우처럼 연기를 잘하는 배우만이 선택하고 소화해낼 수 있는 영역이라는 걸 보여줬다면, 2006년 관객을 만난 '맨발의 기봉이'는 신현준처럼 자신을 내려놓고 무언가를 표현해낼 마음의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 도전할 수 있는 장르라는 걸 말해줬다.

▲ 영화 '오아시스', '말아톤', '그것만이 내 세상' 포스터.

최근 들어 장애를 다룬 상업영화를 만드는 일은 더 조심스러워진 측면이 있다. 장애인 권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계속됐고 관객의 감수성도 발달하면서, 의도치 않은 희화화나 편견 조성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 개봉한 작품들은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택했다. 2017년 개봉한 '그것만이 내 세상'은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주인공을 천재로 그렸고, 2018년 선보인 '증인'은 자폐아 주인공에게 독보적인 기억력이 있다고 묘사했다. '우스워 보이거나 모자라 보이는' 구시대적 접근은 없어진 대신,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경우로 그리는 쪽을 택했다.

장애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건 정말 어려울까. 잘나지도 않고 못나지도 않은, 수많은 평범한 군상 중의 하나로 말이다. 그 가능성을 증명한 게 최근 종영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일 것이다. 노희경 작가는 영옥(한지민)의 언니 영희 역에 배우가 아닌 진짜 다운증후군을 앓는 캐리커쳐 작가 정은혜 씨를 캐스팅했다. 영희는 사람들이 다 보는 데서 “나쁜년! 너 나 버렸지!” 라고 괴팍하게 소리치거나 “나 수술시켜줘. 너처럼(예쁘게).”라고 말하며 동생에게 심적 부담을 주기도 하지만, 동생의 연인 앞에서는 그녀가 “자랑스럽지~”라고 추켜세운다. 여느 캐릭터와 같은 다면적 묘사 덕에, 영희는 시청자에게 '장애가 있는 마음 따뜻한 언니' 그 자체로 받아들여진다.

▲ tvN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스틸컷.

드물기만 한 경우는 아닌 것 같다. 할리우드에서도 이미 여러 시도가 있었다. 배우 윤여정이 시상자로 나섰던 지난 미국아카데미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은 영화 '코다'의 트로이 코쳐도 농인이다. 션 헤이더 감독은 말을 하지 못하는 아버지 역에 그를 캐스팅했고, 배우는 평소 사용하는 수어와 다채로운 표정을 무기 삼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배역을 소화해 호평받았다. 흥행 장르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밀리센트 시몬스, 마블히어로물 '이터널스'의 로런 리들로프 역시 실제 농인이다. 뮤지컬 영화 '시라노'의 피터 딘클리지는 왜소증을 앓고 있다. 누군가 이들의 특성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보여졌다. 'K콘텐츠의 위용'을 보여주는 요즘, 우리 영화계도 더이상 할리우드를 따라가기만 하는 입장은 아닐 것이다. 장애인 배우를 기용해 선보일 다음 시도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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