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는 어떻게 '우크라 전쟁의 조커'가 됐나
튀르키예와 나토 회원수 확대
핀란드·스웨덴 나토 가입 동의
대신 '쿠르드족 지원 중단' 얻어
러 침공 뒤 지정학적 가치 급등
러-서방과 줄타기하며 현안 해결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튀르키예(터키)가 지난 28일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에 동의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격렬해지는 지정학 게임에서 조커의 역할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중립국인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 신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야기한 지정학적 격변 중 하나였다. 나토 가입은 회원국 전원의 동의가 필요한데, 튀르키예가 그동안 이들 국가의 가입을 반대하며 열쇠를 쥐었다. 튀르키예는 그 열쇠를 내놓는 대가로 이들 국가의 쿠르드족 지원을 중단시키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튿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튀르키예에 대한 F-16 전투기 판매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F-16 전투기와 그 부품 판매는 튀르키예가 군사 분야에서 미국에 요구하던 주요 사항 중 하나였다. 미국은 튀르키예가 2017년 러시아의 S-400 방공망 체계를 도입한다고 발표하자, F-35 전투기 판매를 거부하는 한편 F-16 전투기 판매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왔다.
누군가에게 꽃놀이패 된 전쟁의 역설
이 사안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정부와 미국 사이의 주요한 갈등 현안으로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자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이용해 러시아와 서방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해묵은 현안들을 일거에 해결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튀르키예와의 기존 갈등을 해소하려고 몸을 낮추고 있다. 앞서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평화협상을 주도하는 역할도 했다.
2003년 에르도안이 집권한 뒤 튀르키예는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충실한 군사동맹에서 벗어나 비미적인 독자행보를 펼쳐왔다. 이는 오스만튀르크 말기 이후 튀르키예가 추구하던 서방 지향성을 포기하는 역사적 이정표라고 ‘지정학의 풍경’ 앞선 글(<한겨레S> 6월4일치 17면)에서 다뤘다. 튀르키예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평화협상을 중재하고 미국의 저자세를 이끌어내게 되기까지는 짧게는 지난 1년, 길게는 20여년의 전사가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지역에서 병력을 이미 구축하던 2021년 9월 중순 에르도안은 미국 뉴욕 유엔본부 빌딩 맞은편의 ‘튀르키예 하우스’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3억달러를 들인 ‘튀르키예 하우스’ 신축 개관 기념식을 기회로 바이든과의 약식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바이든은 워싱턴으로 급히 돌아가야 한다고 백악관에서 연락이 왔다. 불같이 노한 에르도안은 즉각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의 S-400 함대공 미사일을 추가로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시비에스>(CBS)에 “앞으로 아무도 우리가 어떤 종류의 방공시스템을, 어떤 나라에서, 어떤 수준으로 구입하는지에 대해 간섭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미국을 겨냥했다.
바이든이 에르도안을 바람맞힌 그때부터 튀르키예의 전략적 가치가 미국에 급증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접경지역에 병력을 구축하는 것이 공격 차원임이 명확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은 다급하게 튀르키예에 접근했고, 10월말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바이든은 에르도안과 양자회담을 하고 달래기에 나섰다. 12월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에르도안에게 전화를 걸어 우크라이나가 튀르키예에서 제작된 무인기를 내전 중인 돈바스 지역에서 사용한다고 불평했다. 튀르키예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일단 꽃놀이패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11월 튀르키예 및 중앙아시아 튀르크계 국가들의 모임인 ‘튀르크국가기구’(OTS) 앙카라 정상회의에서 에르도안은 “인샬라(신의 뜻대로), 태양은 동쪽에서 다시 곧 떠오르기 시작할 것”이라며 “수천년 동안 문명의 요람이었던 튀르크 지역은 다시 한번 인류 전체에게 매력과 계몽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튀르키예와 에르도안의 이런 야망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지난 2003년 에르도안이 집권했을 때는 튀르키예가 그 이전 10년 동안 대외정책의 최대 현안이던 유럽연합 가입이 무산됐을 때였다. 근대 이후 튀르키예에서 이슬람주의자로서는 최초로 정권을 잡은 에르도안은 과거 오스만튀르크제국의 영역이던 광대한 메나(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으로 눈을 돌리는 ‘룩 사우스’ 정책을 펼칠 기회를 맞았다. 때마침 터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중동에 거대한 세력공백을 몰고 왔다.
중동에서 세력균형의 한 축이던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 붕괴는 이라크와 그 주변 지역으로 내란 상태를 확산시켰다. 이에 더해 2011년 아랍의 봄에 이은 리비아 내전과 시리아 내전, 이슬람국가(IS)의 출현은 중동에서 기존 정권과 질서를 붕괴시키고 거대한 세력공백을 가져왔다. 중동에서 최대 군사강국인 튀르키예의 역할이 필요했고, 튀르키예 스스로도 안보를 위해 나서야 했다.
특히 시리아 내전에 이은 이슬람국가의 출현은 튀르키예의 개입을 불렀다. 시리아 접경지역에는 전통적으로 튀르크계 주민이 살고 있는데다, 역사적으로 적수였던 러시아가 뛰어들자 튀르키예도 개입했다. 시리아 내전 와중에 이슬람국가가 출현하자, 미국은 시리아 쿠르드족의 ‘인민수비대’(YPG)를 주축으로 한 시리아민주군(SDF)을 결성해 격퇴 전쟁을 수행했다. 시리아민주군이 미국 등 서방의 도움으로 이슬람국가를 격퇴하는 데 성공해 세력을 키우자, 튀르키예는 군사력을 시리아에 투입해서는 남쪽으로 밀어냈다.
지정학 게임서 단숨에 ‘조커’ 부상
인민수비대가 튀르키예 내에서 분리독립 무장투쟁을 벌이는 쿠르드노동자당과 연계된 군사조직인데다, 미국은 이들에게 상당한 수준의 자치정부 구성을 약속했다. 튀르키예로서는 시리아에서 쿠르드족의 자치정부 구성은 자국의 쿠르드족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수용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이는 러시아,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정권과도 이해가 일치했다. 시리아 내 쿠르드족의 영향력 축소는 러시아에는 미국의 입김을 견제하는 것이고, 친러인 아사드 정권을 돕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튀르키예는 시리아 내전 초기에 러시아와의 갈등을 접고 새로운 관계를 설정했다.
이는 튀르키예의 친미 동맹을 당연시하면서 그 이익을 돌보지 않는 미국의 자장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슬람국가와의 전쟁 도중인 2016년 튀르키예에서 일어난 친미 세력의 근원지인 군부 내 쿠데타도 에르도안을 미국과 멀어지게 하는 촉매가 됐다. 쿠데타 직후 푸틴은 에르도안에게 즉각 전화를 걸어 전폭적 지지를 약속했으나, 미국은 쿠데타가 진압된 지 사흘이 지나서 존 케리 당시 국무장관이 전화를 했을 뿐이었다. 몇주 뒤 에르도안은 러시아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튀르키예의 러시아 방공망 S-400의 구매가 결정됐다. 이는 2017년에 발표됐다. 튀르키예는 이를 시작으로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본격적인 줄타기를 하다가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그 지정학 게임에서 조커의 역할을 움켜쥐게 된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에서 국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 글을 쓰는 도중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 <지정학의 포로들> 등의 책도 펴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논썰] 독재가 사랑한 백골단·대공분실… 윤석열 정부가 소환한 악몽
- 경북 의성서 ‘7월 상순 사상 최고기온’ 37.2도…내일은 더 덥다
- 열심히 일해야 중산층 유지? ‘공포 노동’, 언제까지 유효할까
- 유류세 인하 첫 날, ‘값 오르거나 1원도 안 내린’ 주유소 66%
- 좌표찍기와 집단괴롭힘은 ‘정치팬덤’이 아니다
- 귀국한 윤 대통령, 김승희와 ‘헤어질 결심’ 할까
- 여학생이 운동장 싫어한다고요? “야구 배트로 깡! 쾌감 최고예요”
- 질문 몇개 MBTI ‘넌 이런 사람’ 규정 말고 ‘취존’해요, 우리
- 운동하는 여교사 ‘원더티처’들, 여학생의 ‘체육 히어로’ 되다
- 임신중지 안돼, 총은 자유, 온실가스 뿜어…미국이 퇴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