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번의 화천행..사육곰들에게 드디어 앞마당을 선물한다

한겨레 2022. 7. 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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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화천 사육곰 돌봄 1년 최태규 활동가 기고
죽음 앞둔 곰 15마리 구조..매주 주말 곰 만나러 화천으로
생크추어리 건립 미뤄졌지만 훈련·돌봄으로 곰들 건강해져
죽음을 앞둔 화천 사육곰을 구조한지 1주년이 됐다. 애초 계획보다 생크추어리 건립은 미뤄졌지만 철창 속 곰들은 지난 1년 간 육체적,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해졌다. 사진은 지난해 여름 더위를 피해 사육장 내 구조물에 들어간 U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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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가끔 들르던 강원도 화천 사육곰 농장에서 전화가 왔다. 정확히는 몇 번 만난 적 있던 농장주가 아니라 그의 아내였다. 농장주가 아파서 더 이상 곰을 기르기 어려워졌는데 기르던 곰들을 죽이기 싫으니 잘 돌봐 줄 수 있는 곳을 찾는다는 용건이었다.

40년 동안 사육곰을 기른 분들이었다. 비록 생계를 위해 곰을 사육했지만 곰이 죽는 모습을 보거나 웅담을 채취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싫은 일이다. 누군가는 사육곰 농장을 하는 사람들을 마치 악인인 것처럼 표현하지만, 동물을 이윤 목적으로 기르는 사람들도 대개는 어느 정도 동물에 대한 애정이 있다.

곰 15마리가 우리에게 왔다

그해 6월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가 화천 곰들을 돌보기로 결정했다. 국내 최초로 사육곰을 위한 생크추어리(야생동물 보호소)도 건립하기로 했다. 1년 뒤 생크추어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때까지 우리는 매주 주말을 반납하고 화천에 곰을 돌보러 가기로 했다. 말이 쉽지, 매주 곰을 보러 화천까지 가는 일은 우리 상황에 분명히 무리였다. 그러나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15마리 곰 모두 헐값에 팔려 열 다섯 개의 웅담이 될 운명이었다.

2021년 6월부터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는 화천 사육곰농장에서 돌봄을 시작했다.

그렇게 화천 사육곰 농장 돌봄이 시작됐다. 농장주가 병상에 누우면서 곰들은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 상태가 무척 좋지 않았다. 곰들은 값싼 개사료를 이틀에 한 번 급여받고 있었다. 털은 푸석했고 잔뜩 야윈 모습이었다.

당장 곰들의 영양 상태를 개선하는 일이 필요했다. 수소문하자 과일 도매상과 건어물유통상에서 팔지 못하는 과일과 땅콩을 기꺼이 후원해주셨다. 먹이를 옮길 1.5톤 트럭도 기증받았다. 영양만큼이나 노후된 시설 개선도 시급했다. 먼저 콘크리트 물통이 세월에 삭아 새로 물통을 달아주었다. 직접 철창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작업도 했다.

농장 시설이 열악해서 직접 철창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일도 해야 했다.
이름도 붙이기 전에 죽은 곰 ‘L2’에게 ‘편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무덤을 만들었다.

임금도 없는 자원활동가들이 주말을 반납하며 애쓴 노고로 열악했던 환경이 조금씩 나아졌다. 돌봄활동가 중에는 동물원 사육사, 훈련사, 수의사도 여럿이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 곰이 늙어 죽는 일이었다.

돌봄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L2’가 세상을 떠났다. 과일을 좋아하던 L2을 보내며 우리는 그에게 이제라도 편안해지길 바라며 ‘편안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죽음은 금세 또 찾아왔다. 이번엔 ‘보금이’(U5)였다. 보금이는 농장을 처음 찾았을 때부터 뒷다리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엉덩이를 끌고 다녀서 털이 다 빠진 상태였다. 결국 보금이는 근골격계 질환이 겉잡을 수 없이 악화돼 안락사를 해야 했다.

약 먹이기, 잠 재우기…돌봄은 ‘실전’

동물원에서처럼 야생에서보다 수명이 길어지는 사육곰에게 허리디스크 탈출증이나 고관절 이상과 같은 근골격계 질환은 일반적이다. 현재도 근골격계 질환 탓에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곰이 셋이나 있다. 약 값만도 천만 원을 훌쩍 넘겼다.

곰에게 약을 먹이기 위해 마쉬멜로로 알약을 둘둘 말아서 주고 있다.(왼쪽) 겨울잠을 재우기 위해 내실에 푹신하게 짚을 깔아주고 직접 누워봤다.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입에 쓴 약을 먹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곰들에게 쓴 맛을 참고 먹어야 아프지 않다고 ‘설득’할 수도 없고, 개나 고양이처럼 억지로 먹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활동가들은 곰들을 구슬리기 위해 갖은 애를 써야 했다. 단것을 좋아하는 곰의 입맛에 맞게 사과, 마시멜로, 꿀물, 시럽 등 달다는 음식을 총동원했다. 그러나 아픈 곰들은 조금만 익숙해지면 단맛에 감춘 쓴 약을 귀신같이 알아내고 약을 골라냈다. 언제까지 소염진통제로 곰의 통증을 다스릴 수 있을지 여전히 피할 수 없는 고민거리다.

곰 돌봄을 시작하고 맞은 첫 겨울, 돌봄활동가들의 주요한 회의 주제는 바로 ‘겨울잠’이었다. 야생의 곰은 먹을 것 없는 혹독한 겨울을 굴 속에 들어가 먹지도 싸지도 않고 견딘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새끼를 낳기 때문에 곰을 번식하던 시절의 곰농장에서는 겨울에 먹이를 끊고 겨울잠을 재웠다.

곰들은 졸음이 쏟아지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먹이를 주러 가면 눈을 말똥말똥하게 떴다. 결국 아무도 겨울잠은 자지 않았다.

그러나 곰들이 모두 중성화된 지금, 우리도 먹이를 중단하면서까지 겨울잠을 재워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는 어려운 문제였다. 일단은 가을까지 열심히 살을 찌워보고 겨울에 자는 곰이 있다면 재우는 정도로 합의를 했다. 고칼로리 식단을 짰지만 마음대로 살이 찌지 않는 곰들이 많았다.

겨울이 되자 졸음이 쏟아지는 것으로 보였지만, 두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버티는 곰들을 굶길 수는 없었다. 그 곰들에게 먹이를 주러 가면 졸던 곰들도 잠에서 깨어 먹이를 달라고 했다. 그렇게 겨울잠은 아무도 자지 않았다.

1년 새 채혈도, 체중 측정도 알아서 척척

그 사이 곰들의 기본적인 건강관리에는 성과가 있었다. 동물의 체중 변화는 가장 기본적인 건강지표지만, 한국 대부분의 동물원에서도 체중 측정은 하지 않고 있다. 곰들을 체중계에 올리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우리는 400㎏에 달하는 철제 이동장에 대형 저울을 설치해 맞춤 체중계를 만들었다. 마취를 하지 않아도 곰들이 스트레스 없이 체중을 잴 수 있도록 스스로 체중계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훈련을 꾸준히 했고 마침내 모든 곰들의 몸무게를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스스로 앞발을 철창 밖으로 내밀어 채혈(검진을 위해 피를 뽑는 일)하고 헐액검사를 하는 훈련도 열 세 마리 모두 해냈다.

400㎏에 달하는 철제 이동장에 대형 저울을 설치해 맞춤 체중계를 만들었다. 스스로 체중계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훈련을 꾸준히 했고 마침내 모든 곰들의 몸무게를 측정하는데 성공했다.
1년 전 기억을 돌아보면 곰들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훨씬 건강해졌다.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비언어적 형태로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만질 수 없는 야생동물을 제대로 돌보기 위해서는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훈련은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가 되어야 한다. 화천 곰들은 이제 석 달에 한 번 체중을 측정하고 혈액 검사를 하고 있다. 우리는 국내 동물원에서도 이런 돌봄 방식이 적용되길 바라며 현재 아낌없이 정보를 나누고 있다.

다시 여름이 되었고 우리는 화천에서 꼬박 1년을 보냈다. 1년 전 기억을 돌아보면 곰의 신체적, 정신적 상태가 훨씬 좋아졌다는 것이 보인다. 화천의 곰들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비언어적 형태로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야생동물은 야생에 살아야 하지만, 이미 사람이 가두어 기르는 야생동물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 이들은 다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 동물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윤리적인가는 활동가뿐 아니라 야생동물을 가두어 기르는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활동가들은 어떤 고민이 필요한지 끄집어내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역할을 하는 중이다.

산책하는 곰, 우리 사회에 화두 던져주길

곧 지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생츄어리는 다시 멀어진 느낌이다. 곰이 살 수 있는 땅을 구하고 곰을 돌볼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사육곰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가까운 시일 안에 화천 곰농장에는 작은 방사장을 짓는다. 비록 생크추어리 건립이 늦춰지긴 했지만 당장 곰들의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사육장 앞에 울타리를 치고 산책길을 만든다. 곰들은 철창을 태연히 지나 곰을 위해 꾸며진 ‘곰 숲’으로 걸어 나올 것이다. 평생 지켜만 보던 앞마당을 흙 밟으며 산책하고 처음으로 나무에 올라볼 것이다. 웅덩이에서 첨벙이며 물장구도 칠 것이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야생동물을 가둔 시간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곰을 도살해 웅담을 먹는 것보다는 살 만한 새 삶을 주는 것이 더 윤리적이라는 데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판단에 따르는 책임을 질 차례다. 제법 무거운 짐이지만 더 많은 사람이 그 짐을 나누어 질 만도 해 보인다. 웅담을 먹던 나라에서 곰을 보호하는 나라로, 생크추어리를 짓고 우리 과거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된다면 더 나은 인간-동물관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

글·사진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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