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 인터뷰①] 설경구 "수상 자격이 되나..새로운 용기이자 박수"

조연경 기자 2022. 7. 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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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배우 설경구
36회 신인연기상, 38회 대상, 50회 최우수연기상 이어 네번째
"필름의 맛 느끼며 자라 OTT 새 시장까지..K콘텐트 격변 응원"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수상자 배우 설경구가 JTBC 사옥에서 수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 박세완 기자 park.sewan@jtbc.co.kr 〈사진=JTBC엔터뉴스〉

8년 만에 다시 백상 무대에 올랐다. 배우 설경구에게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인생 2막을 열어 준 변성현 감독의 작품으로 수상 기록을 남겨 더 뜻 깊다. 센세이션한 충무로 데뷔 후 신인연기상을 품에 안았던 2000년부터 회상하면 무려 22년 간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냈다. 현장을 '휴식처'이자 '충전소'라고 말하는 천생 배우 설경구의 굵직한 시간을 백상예술대상도 늘 함께 했다. 백상예술대상의 역사에서 설경구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최근 몇 년 간 후보로서 꾸준한 건재함을 보여줬던 설경구의 이름이 제58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드디어 호명됐다. 2014년 '소원(이준익 감독)'으로 50회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후 꼬박 8년 만에 같은 부문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2000년 '박하사탕(이창동 감독)'으로 36회 신인연기상을 거머쥐며 영화계 연기 괴물의 탄생을 알렸던 설경구는 2002년 '공공의 적(강우석 감독)'을 통해 곧바로 38회 대상을 수상, 바야흐로 '설경구 시대'를 열었고 여전한 현역으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공교롭게도 '박하사탕' '오아시스'로 배우 설경구를 세상에 알린 이창동 감독, 범죄 형사물의 새 지평을 연 '공공의 적'을 비롯해 '실미도'로 한국영화 최초 1000만 대기록을 함께 쓴 강우석 감독, '소원' '자산어보' 등 매 작품 '연기파' 설경구의 힘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준익 감독, 그리고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통해 섹시한 설경구의 새 얼굴을 과감하게 꺼내 든 변성현 감독까지, 설경구를 '페르소나'로 낙점한 감독들의 작품으로 빠짐없이 트로피를 수집하게 됐다.

"새로운 건 늘 끌리니까. 앞으로 나를 페르소나로 활용해주는 새 감독을 더 만나게 되길 바란다"며 너털웃음을 지은 설경구는 "사실 '킹메이커'는 내가 킹메이커 롤이 아니라 '상을 받을 자격이 되나' 싶었다"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 놓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백상 대상 수상작 '자산어보'와 '킹메이커' 등 설경구는 팬데믹 영화계를 지켜 준 배우로 충무로 큰 형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킹메이커'는 이러한 '귀한 배우' 설경구의 근사함을 다시 확인 시켜준 작품. 진정한 '무비메이커'의 수상에 모두가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필름의 맛'을 느끼며 성장한 영화인으로 '영화'에 대한 사랑은 변함 없지만, 어느 때보다 각광 받고 있는 K콘텐트의 힘과 시스템 변화에 대한 긍정적 시선도 갖게 된 요즘이다. 후배 사랑이 남다른 것으로 유명한 만큼 '누구 때문에'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OTT 시리즈를 챙겨 보기도 한 설경구는 "OTT 시리즈는 과거 드라마 현장과는 확실한 차별점이 있더라"며 "무엇보다 후배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왕이면 큰 시장에서 노는 것이 좋지 않나. 그런 점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다"는 진심을 표했다.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수상자 배우 설경구가 JTBC 사옥에서 수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 박세완 기자 park.sewan@jtbc.co.kr 〈사진=JTBC엔터뉴스〉


-각인 된 트로피를 드디어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상 두 번 받는 기분이네요. 이전에 받았을 때와 트로피 디자인도 달라졌어요. 14년도에 받았을 땐 또 그 전 트로피와 다른 모양이었거든요. 세 종류를 다 갖게 됐네요. (더 수집 하셔야죠.) 수집이요? 하하하. 이 트로피 또한 잘 모셔두겠습니다."

-배우 설경구를 '페르소나'로 낙점한 감독님들의 작품으로 빠짐없이 백상을 받게 됐어요.
"앞으로 더 있어야죠.(웃음) 배우는 '나를 페르소나로 생각해 주는 감독 대여섯 명이면 로테이션으로 평생 해 먹고 살 수 있다'고도 하지만 새로운 것 역시 늘 끌리기 마련이니까요. 또 무언가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예상을 조금 하셨을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사실은 변성현 감독도 '이선균 선배가 받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콕 집어 했어요. 다른 작품이었지만 제가 지난해 상을 꽤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번 백상은 (팀 내에서) 이선균 씨에 대한 지지가 높았죠. 저도 본식 하기 전에 뒤에서는 '우리 선균이가 받았으면 좋겠다'라는, 100% 진심은 아닌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요. 하하. 물론 요~만큼은 '나도 받을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많이는 정말 이선균 씨가 받았으면 싶었어요. 그리고 따지고 보면 저는 킹메이커 롤이 아니거든요. '자격이 되나' 그런 생각도 했죠."

-'킹메이커'로는 첫 수상이죠.
"시상식이 늦게 끝나서 회사 식구들과 간단히 회포만 풀고 집에 갔는데 변성현 감독이 취해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전주에서 '길복순' 촬영 때문에 올라 오지 못했는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변 감독이 '제 영화로 계속 상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전 그 말이 되게 뭉클했어요. 변성현 감독이나 저나 어떤 상이 주는 의미에 크게 막 매달리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상으로 인해 가치가 좀 더 생겼다'는 생각은 했던 것 같아요. 저는 변성현 감독이 감독상을 받아 참 좋았죠."



-환호하는 모습을 살짝 봤어요.
"변성현 감독에게는 '킹메이커'가 네 번째 작품인데, '불한당'은 팬덤을 일으켰고, '킹메이커'는 감히 제가 어떤 평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함께 호흡한 배우로서 '이 사람이 영화적으로 또 한 발자국 나아갔구나?'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에요. 그게 보일 정도로 굉장히 자신있게 찍었거든요. 이야기의 한계와 팬데믹 상황 때문에 외적 성과는 못 얻었지만, 내적으로는 더욱 기대하게 됐고요. '길복순'도 함께 했는데 신기하게도 또 성장한 모습을 봤어요. 그런 의미에서 '킹메이커'는 변 감독에게 중요한 길목이었고, 그런 변성현 감독에게 감독상을 줬다? 어마어마하게 큰 것을 줬다고 생각해요. 특히 감독으로 받은 첫 상으로 알고 있는데, 더 의미 있죠."

-주인에게 잘 찾아 간 느낌이 드네요.
"저도 그렇고 변성현 감독에게도 새로운 용기이자 박수가 된 것 같아요. 8년 만에 받아서 그런지 정말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다음 날 '길복순' 현장에 갔는데, 변성현 감독이 뭐 별로 좋다는 티도 안내고 특유의 자태로 똑같이 앉아 있었거든요? 그래서 '얘는 상 줘도 별로 안 좋아해!' 했더니 대번에 '상 받고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더라고요.(웃음)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 욕심도 생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길복순'이 많이 기대돼요."

-감독상에 조우진 배우의 조연상까지 '킹메이커' 팀의 존재감이 컸어요.
"영화계가 힘들었잖아요. 거창하게 '위로 받았다'고 말하기에는 그렇지만, 전문가 분들이 작품을 좋게 봐 주신 것 같아 감사해요. 개인이 받는 것은 어느 정도 운이 작용 한다고 하면, 변성현 감독에 저, 조우진 씨까지 준 것은 '이 영화를 좋게 봐 주셨구나' 확신하게 만들었죠. 다른 영화들에 대한 마음도 같아요. '모가디슈'를 보면서 '와 징글징글하다. 저걸 어떻게 찍었냐' 싶어 실제로 물어보기도 했거든요. 리얼한 군중 컨트롤이 놀랍더라고요. 체육관을 빌려서 무술 연습을 하듯이 준비했다고 하는데, 카메라에 상황과 감정까지 다 담겨 '류승완 진짜 지독하다' 생각했어요. 그것 또한 인정해 주고 상이라는 것으로 좋은 보답이 된 것 같아 고마웠죠."

-혹시 수상 영상은 다시 보셨나요.
"아니요. 전혀요. 쑥스러워서 못 봐요."

-이 자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볼게요.
"민망해 죽겠네요. 하하. 처음에 꽃을 3개나 받고 나간 게, 제작사 씨앗필름의 이진희 대표님이 올해 '킹메이커'가 후보에 오른 부문 개수대로 꽃을 사 오신 거예요. 원래 예술상 부문에서 조형래 촬영감독이나 한아름 미술감독이 수상하면 제가 대리수상을 하려고 했거든요. 근데 아쉽게 우리 스태프 분들이 상을 받지 못하면서 저한테 다 던져버린 거죠.(웃음) 스태프 분들을 끌어 안고 올라갔습니다."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수상자 배우 설경구가 JTBC 사옥에서 수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 박세완 기자 park.sewan@jtbc.co.kr 〈사진=JTBC엔터뉴스〉

-맞아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불참 후보자들에 대한 대리 수상자까지 사전에 정리를 해두는데, '킹메이커' 팀은 이례적으로 배우 분들이 대리 수상을 할 예정이라고 전달 주셔서 놀랐어요.
"선균 씨와 마지막에 딱 나눴죠. 예술상을 받으면 저, 감독상을 받으면 이선균. 익히 알려졌지만 '킹메이커' 팀은 '불한당' 팀이 그대로 함께 했어요. '길복순'도 70~80% 정도 스태프들이 그대로 넘어왔는데, 현장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했거든요. ''불한당' 때 조형래 촬영감독이 상을 몇 개 받았으니까 이번에는 한아름 미술감독이 받았으면 좋겠다!' 결과에 순간 맥이 빠지기도 했지만 '모가디슈'도 워낙 훌륭한 영화인 것을 아니까 같이 진심으로 축하했죠."


-무대로 올라갈 때, 이준호 씨가 홀로 일어나 박수를 쳤는데 알고 계셨나요.
"준호가 박수 쳤어요? 현장에서는 전혀 몰랐어요. 지금 보고 알았네요. 준호를 봐서 인기상 농담을 한 건 아니었거든요. 워낙 잘 알고 있는 친구니까 살짝 이야기를 해 본 건데. 하하. 보고 올라갔으면 더 재미있을 뻔 했네요."

-이준호 씨의 영화 데뷔작인 '감시자들'을 함께 하셨죠. 올해 나란히 각 부문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는데, 성장한 모습이 뿌듯하기도 할 것 같아요.
"제 영화 개봉 시즌에 준호 드라마가 워낙 잘 되고 있었을 때라 준호 이야기를 많이들 물어 보셨는데(웃음), 그 때도 말씀 드렸지만 '감시자들' 때부터 (정)우성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잘 될 친구다'라는 말을 했었어요. '감시자들' 팀은 못해도 1년에 한, 두 번 씩은 꼭 만났거든요. 입대를 앞두고 있을 땐 너무 바빠서 준호만 참석을 못하기도 했는데, 군대 가기 직전에 '이 때다' 싶어 만났고, 제대 하자마자 만나기도 했고요. 요즘 아주 하늘을 날고 있으니까 부러워요. 전 인기상 받는 게 제일 부럽더라고요. 하하. 끝나고는 또 진하게 포옹했죠."

-수상 소감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나요.
"아뇨. 스태프들 언급도 다는 못해서 '당장 촬영하러 다시 내려가야 하는데 이렇게 인사를 제대로 못해서 뭐라고 하지?' 걱정하기도 했고, '킹메이커' 오프닝에 등장해 영화의 문을 열어 준 (진)선규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특히 저에게 사투리를 가르쳐 준 윤세영 씨. 보좌관 팀으로 늘 항상 옆에 있었는데 순간 이야기를 못했어요. 진심으로 너무 고마웠어요. 뭐 공화당 쪽 사람들은 모르겠고요. 하하. 아, 부모님께 효도도 했네요."

-생방송으로 챙겨 보신 걸까요.
"청룡 때 부모님께 따로 말씀을 안 드렸었는데 상 받는 모습을 못 봤다고 실시간으로 섭섭해 하시더라고요. 분하고 화나서 잠을 못 주무셨다고.(웃음) 그래서 이번엔 일단 말씀은 드렸죠. '이전 작품으로 줘서 안 줄 줄 알았는데 어떻게 줬냐? 오래 사니까 좋은 일도 있다' 하시더라고요. 부모님들도 그런 계산을 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어요. 되게 좋아하시고 너무 좋아하세요. 진짜 상 덕분에 효도했어요. 저는 살가운 자식이 아니거든요. 무~심한 자식인데, 무심하게 큰 효도를 하게 돼 좋아요."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수상자 배우 설경구가 JTBC 사옥에서 수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 박세완 기자 park.sewan@jtbc.co.kr 〈사진=JTBC엔터뉴스〉


-최근 몇 년 간은 후보로 빠짐없이 출석하셨죠.
"시상식이 그래요. 이제는 상은 받으면 당연히 좋지만 '오늘 억세게 운 좋았다!' 싶기도 하고, 못 받아도 찰나 아쉬울지언정 결과 자체에 일희일비 하지는 않거든요. 꾸준히 후보에 오르는 게 어디에요. 지난해에도 이준익 감독님이 '자산어보'로 대상을 받게 되면서 (변)요한이랑 같이 '됐다, 됐어' 했어요.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도 후보조차 못 오르면 그건 그거대로 또 섭섭해요. 양가 감정이 있죠. 솔직한 마음이에요."

-기대와 긴장이 크게 공존할 것 같기도 해요.
"당연히 편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시상식 자리는 못 봤던 얼굴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서 좋아요. 요샌 제작되는 작품도 더 많아졌고, 다 바쁘다 보니까 공수표만 날리고 잘 만나지 못하거든요. 그런 자리라고 생각하면 보이는 그대로 즐기게 돼요. 물론 떨리는 친구들 있겠죠. 그래서 신인상이 제일 재미있고요. 보고만 있어도 조마조마해요. 그리고 백상은 종합 시상식이잖아요. 개인적으로 연극부문이 부활해서 참 좋아요."

-연극계에서 활동한 분들은 연극부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더라고요.
"정말 그래요. 중간에 없어져서 서운했어요. 사실 연극이 빠지면 종합 시상식이 아닌 거잖아요. 순수 예술을 통해 진정한 종합예술이 완성될 수 있는 거니까. 저도 연극하던 시절에 백상이 제일 받고 싶었어요. 제가 '박하사탕'으로 영화부문 신인상을 받았을 때, 박해일 씨가 연극부문 신인상을 받았는데 그걸 해일이가 정확하게 기억하더라고요. 어느 날 아주 똘똘하게 생긴 친구가 와서 '선배님이랑 그런 인연이 있다'고 딱 이야기를 하는데 깜짝 놀랐죠.(웃음) 매 해 절절한 소감도 그렇고, 확실히 연극부문이 백상을 더 품위 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올해 남자 연기상을 수상한 박완규 배우님이 '지난해는 수상에 실패했지만 이번에 주셔서 더 좋다'고 말씀 하시는 걸 보는데 좋더라고요. 그 마음을 또 아니까."

〉〉[백상 인터뷰②]에서 계속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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