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내 방의 여름 군락지

한겨레 2022. 7. 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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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 김금희의 식물 하는 마음]김금희의 식물하는 마음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식물들을 바라보는 아주 다른 시각을 얻은 기분이었다. 나라는 자원을 통해 식물들이 자신들의 군락을 조성해나가며 공생을 이루어내고 있다는 사실. 그 과정에서 나는 햇빛, 물, 바람 같은 환경조건일 뿐이었다.

식물들의 위치를 크게 바꿨다. 유명 블로거이자 인스타그래머인 대릴 쳉이 쓴 실내 가드닝 책을 읽다가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한국어 제목으로는 <퇴근하고 식물집사>로 최근 출간된 이 책에는 멋진 식물 사진도 많았는데, 내가 방 정리를 결심한 건 그 때문은 아니었다. 특정 문장에 요샛말로 ‘치인’ 것이었다.

저자는 식물들이 누군가의 방에서 자라나는 과정을 ‘천이’(succession)로 설명한다. 천이는 같은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식물 군집의 변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느 지역이 황무지인 상태로 버려졌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 식물들이 자라날 것이다. 이끼들이 등장했다가 작은 풀들이 돋고 나중에는 나무가 그리고 숲이 조성된다. 천이는 그렇게 자연 군락들이 성숙되는 과정을 뜻하는데, 이 책에서는 바로 당신의 방에서도 그러한 흐름이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식물들은 시차를 두고 차례차례 등장해, 먹고사는 데 필요한 인공적 생산품들만 가득한 내 방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었으니까. 그간 이 점을 간과한 건 내가 ‘사온’ 식물들이라는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선택에 따라 내 공간에 배치시킨 것이어서 그들 또한 군락을 이룬 셈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와 식물 사이가 중요했을 뿐 그들 사이에 조성되는 상호 영향에 대해서는 무심했던 것이다.

그런 시선으로 보니 집 곳곳에 식물들이 자리 잡은 것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발코니 선반에는 일곱개의 서로 다른 고사리들이 있는데,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다. 반 이상은 실내의 다른 공간에서 자라다가 시들시들하고 노랗게 타버리면서 옮겨 간 것이었다. 물론 스스로 뻗어나가거나 번식한 게 아니라 식물 집사인 내 손을 통해 이동했지만, 애초에 발코니 선반에 있었던 더피 고사리와 아디안툼이 잘 자라고 있지 않았다면 그렇게 모아놓을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자리의 가장 큰 특징은 철제 선반이라 호스로 물을 쏴 하고 시원하게 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르기 전에는 몰랐지만 고사리는 정말 물을 많이 먹는 식물이었다. 고사리가 음지식물이 된 건 빛이 덜 필요해서가 아니라 수분을 덜 빼앗기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결국 우리 집 고사리들은 긴 시간을 거쳐 자신들에게 최적의 공간을 찾아냈고 집사인 나라는 환경을 이용해 군락을 이루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나는 식물들을 바라보는 아주 다른 시각을 얻은 기분이었다. 나라는 자원을 통해 식물들이 자신들의 군락을 조성해나가며 공생을 이루어내고 있다는 사실. 그 과정에서 나는 햇빛, 물, 바람 같은 환경조건일 뿐이었다. 햇빛, 물, 바람 모두 생명이 있는 존재들이 절실히 사랑하는 것이므로 나는 어찌 되었건 이 역시 식물을 기르면서 얻을 수 있는 경건한 기쁨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책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거실로 나가 소파 뒤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 빛이 잘 들지 않아 식물을 기르기에는 좋지 않은 장소였다. 하지만 그 화분들을 다 거실 창가에 내놓았다가는 너무 번잡해져서 일년 반 동안이나 거기 둔 것이었다. 소파보다 식물들의 키가 조금씩 높았으므로 괜찮으리라고 믿은 면도 있었다. 식물등을 켜주고 물도 꾸준히 주면서 관리해왔지만 브룬펠시아 재스민이 올해 꽃을 거르면서 여기가 분명 험지임을 내게 알려왔다. 브룬펠시아 재스민을 거실 창가로 보내고 가드닝 초창기에 들인 식물이라 애정이 큰 벵골고무나무도 내 방으로 데려왔다. 창가에는 도저히 자리가 안 나서 책상 옆에 둔 다음 식물등을 바짝 붙여 켜두었다. 서재에 있던 몬스테라도 가지치기를 ‘세게’ 한 다음 내 방으로 데리고 왔다. 그동안은 책 먼지가 많은 곳에는 공기정화식물이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바꿔 말하면 식물에는 그만큼 감수해야 할 점이 많은 환경이라는 얘기였다. 목재로 된 4단 진열대를 책상과 마주 보이는 창가로 옮긴 것이 마지막 과정이었다. 그동안은 창을 다 가리면 일할 때 시선이 너무 답답해지지 않나 싶었지만 이제 그게 아무 문제가 아닌 듯 느껴졌다.

그런 기준으로 식물들을 재배치했더니 지금 내 방은 서른세개의 화분들이 복작복작하게 자라고 있는 공간이 되었다. 누가 보면 작업이 되겠어? 할 정도로 좀 어지러운 환경이지만, 이 책 저자의 표현을 가져온다면 식물들이 집합을 이루면서 ‘성숙한 반려 식물의 개성이 스며드는 진짜 생활 공간’이 되었다. 식물을 위해 뭔가를 해준다거나 인간인 내가 뭔가를 포기한다는 느낌으로 한 행동이 아니었기에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작은 군락지에 내리는 비나 빛처럼 자연스럽게 한 행동이라는 것에. 그렇게 해서 이 방의 인간과 비인간 모두 긴 여름의 첫자락으로 접어들고 있다. 단단히 준비했으니 분명 괜찮게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김금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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