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쉽] '더러운 에너지'의 역습
지난 1월19일 낮 12시반쯤, 대구시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콘크리트 양생 작업을 벌이던 인부 4명이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다. 겨울 공사 중엔 자칫 콘크리트에 포함된 물이 얼어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콘크리트가 얼지 않으면서도 잘 굳도록 하기 위해 갈탄을 때다가 유독가스에 질식한 것이다. 같은 날 세시간 뒤에는 경기 평택의 공사장에서 똑같은 이유로 60대 여성 노동자가 쓰러졌다. 이런 사고가 매년 겨울 전국의 공사현장에서 벌어진다. 2017년 12월 김포에선 2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9년 1월16일 시흥의 아파트 현장에서도 같은 사고로 2명이 숨졌다.
갈탄(Lignite)은 석탄의 여러 종류 중에서도 질이 낮은 편에 속한다. 탄소성분 함량이 낮고 수분이 많다. 탄화도가 더 높은 유연탄(역청탄)이나 무연탄에 비해 발열량도 적다.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는 물론이고, 일산화탄소, 황산화물(Sox), 질소산화물(NOx), 미세먼지, 중금속 등 다양한 유독성 물질을 남긴다. 그런데 왜 쓸까? 싸기 때문이다.
'클린에너지' 선도국가 독일의 갈탄 사용
그런 독일의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 로베르트 하벡은 최근, 독일이 세워놨던 석탄발전소를 재가동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30년까지 석탄발전을 완전히 퇴출하며 전력공급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채운다는 계획을 독일 정부와 주요정당이 발표한 게 불과 지난해 연말이다. 하벡의 발언은 독일정부와 각 정당의 ‘석탄퇴출 합의’에 역행하는 처사다.
하벡이 환경을 무시하는 경제만능주의자라서 그럴까? 그렇지 않다. 하벡은 기후변화에 대한 강력한 대처를 촉구하는 녹색당의 지도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탄 -그 중에서도 오염물질 배출이 많은 갈탄- 발전을 도로 늘리기로 한 건, 당장의 현실이 급하기 때문이다.
'더럽다' 탓할 땐 언제고... 석탄 발전 늘리는 각국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세계 석탄 발전량이 9%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사상 최대 기록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약 20% 늘었다. 인도(12%)와 중국(9%)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에따라 석탄 가격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후쿠시마? 체르노빌?...그래도 원전 늘리는 각국
영국은 석탄을 바탕으로 산업혁명을 일으킨 나라로, 원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하며 클린에너지 분야에서도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에너지 강국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 4월7일 발표한 ‘에너지 안보전략(British energy security strategy)’에서 원전 확대를 표방했다.
이 보고서의 원자력(Nuclear)항목은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원자력은 지속적이지 않은 신재생에너지를 보완해 영국 전력생산의 15%를 담당하며, 같은 크기의 태양광 시설보다 100배 많은 에너지를 생산한다. 원자력에 의해서만 충분한 용량의 신뢰성 있는 기저발전을 확보할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2050년까지 영국 전력소비의 25%를 원자력이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이를 위해 8기의 원전을 새로 짓고, 프랑스 등에 뒤처진 원전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미국 에너지부는 클린 에너지에 원전을 포함시켰다. 미국 전력생산의 약 20%를 담당하면서도 탄소를 적게 발생시킨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이유로 유럽연합도 ‘택소노미’(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녹색' 경제 활동으로 인정되는 목록을 담은 분류 체계)에 원전을 포함시켰다.
에너지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세계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나 러시아도 원전을 늘리려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11년부터 원전 건설을 추진해 왔다. 2032년까지 16기의 원자로를 지어 전력소비의 20%를 충당하려는 계획이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이 목표는 일단 철회되었고 여전히 사우디 전력생산은 거의 100% 석유와 가스에 의해 이뤄지지만, 사우디 정부는 1.4GW 규모의 원전 2기 건설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한국이 이 사업에 참여하려고 다방면으로 뛰고 있다.)
천연가스와 석유 수출로 유럽을 옭아맨 러시아도 원전 증설을 추진하고 있다. 2045년까지 최대 16기의 신규 원전을 건설해, 지난해 기준 19.7%인 발전량 비중을 25.0%까지 끌어올린다는 것이 러시아의 목표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사고에도 불구하고 각국이 원전을 계속 추진하는 건 현재의 에너지 공급원 구도를 바꾸는 게 어려운 가운데, 원전만큼 적은 자원을 들여 많은 전기를 꾸준히 얻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눈은 이상에, 발은 현실에
하지만 “아무리 친환경적인 소비자들이라도, 이메일을 확인하거나 토스트를 굽기 위해 바람이 불 때까지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전기의 원천은, 아마도 재생에너지가 아닌, 거대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는 재래식 발전소일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시대에 필요한 전기 인프라 혁명을 논하는 저서 <그리드>에 그레천 바크가 쓴 말이다.
에너지의 국제정치사 저술로 퓰리처상을 받은 대니얼 예긴 S&P글로벌 부회장은 최근 저서 <뉴맵>서문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이제 우리는 ‘에너지 전환’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필요한 에너지의 80% 이상을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에서 얻고 있는 현재의 세상이 역시 그렇게 살아온 30년 세월을 뒤로 하고 점점 더 재생가능한 에너지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렇게 썼다. “변화하는 기후 상황에 전 세계가 얼마나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또 대응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비용이 얼마나 들지에 대한 논의는 이번 10년 안에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한 나라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대응은, 눈은 탄소중립의 이상에 두고 꾸준히 노력하되, 발은 현실에 튼튼히 디디는 것이다. 현실은 어떤 것인가. 그 일단을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다. 장마철과 그 뒤에 따라올 무더위에는 에어컨 냉방 수요가 치솟는데, 이럴 때 전기생산의 기여도를 보자. 평상시에 비해 LNG의 비중이 올라가고 신재생의 비중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앞서 소개한 에너지원별 발전량 막대그래프를 비교해 보시라.) 이런 현실은 급격히 바꿀 수 없다.
이상기후와 세계사적 사건이 퍼펙트 스톰처럼 겹쳐서 터지는 이 시대에, 무슨 이유로 에너지 보릿고개가 닥칠 지 예상할 수 없는 만큼 다양한 대안을 유연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너지안보...결국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
정권교체 됐으니 이번엔 태양광 아웃?
다만,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일부 민간업자들의 ‘보조금 따먹기’에 악용되거나 특정국가 기업들의 배만 불려주지 않도록 생태계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얘기는 아니다. 클린에너지 사업을 표방한 민간기업이 ‘보조금 먹튀’로 물의를 빚은 사례는 미국에서도 있었다. 정부가 태양광 사업을 밀어주고 전기차 보조금을 늘렸더니 중국 업체들만 배를 불리고 자국 기업들은 도태되더라는 반성은 독일에서도 나오고 있다.
정말로 신재생에너지가 나라의 앞날을 바꿀 수 있으려면 발전기만 많이 설치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저장장치와 송배전망의 국가적 업그레이드가 병행되어야 한다. 이 또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각국이 당면한 과제다. 이런 분야라면 정권에 관계없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 있을 것이다.
(구성: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 / 콘텐츠디자인: 옥지수)
이현식 D콘텐츠 제작위원hyunsi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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