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문 닫으면 습기, 열면 좀도둑"..잠 못드는 쪽방촌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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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습해도 문도 못 열어. 잠든 사이에 좀도둑이 들까봐."
한 간이 천막 아래에 앉아있던 동자동 주민 임모(66) 씨는 "방이 너무 습해서 숨을 쉬기가 어려워 나와있다"며 "문이라도 열어 놓고 싶은데 그러면 좀도둑이 들어서 그러지도 못하고, 그냥 날 밝자마자 밖에 나와 있다"고 토로했다.
임씨와 대화를 끝내고 쪽방촌 골목을 도는 도중 한 건물의 현관문 앞에 '밤 8시 이후에 대문을 닫아 주시기 바랍니다. 요즘 이 동네 좀도둑이 극성을 부립니다'라고 쓰인 안내문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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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습도·더위 탓 문 열고 밖에서 쉬어
제습기 놓은 건물도 습기·쾨쾨한 냄새 여전
"선풍기라도 있으면 견디겠지만 가격 부담"
좀도둑 기승에 밤에는 문도 못열고 꾹 참아
"CCTV 없어 잡기 힘들어..담배까지 훔쳐가"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박혜원 수습기자] “아무리 습해도 문도 못 열어. 잠든 사이에 좀도둑이 들까봐….”
다음날 새벽까지 서울에만 176.2㎜의 장맛비가 떨어진 지난달 30일 오후 2시께 찾은 서울역 인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새벽부터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로 쪽방촌을 올라가는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세찬 물줄기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 간이 천막 아래에 앉아있던 동자동 주민 임모(66) 씨는 “방이 너무 습해서 숨을 쉬기가 어려워 나와있다”며 “문이라도 열어 놓고 싶은데 그러면 좀도둑이 들어서 그러지도 못하고, 그냥 날 밝자마자 밖에 나와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동자동 쪽방촌은 과거 여인숙이나 여관으로 쓰던 건물을 개조한 곳이 많다 보니, 구조상 환기가 어려운 방들이 대부분이었다. 한 4층짜리 쪽방 건물에 들어서자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복도를 경계로 양쪽에 방 14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방문 사이 간격이 손바닥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 건물 입구에서 마주친 홍모(63·여) 씨는 “남편이랑 한 방에 사는데 지금처럼 비가 계속 오면 오도 가도 못하니 힘들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타러 동주민센터에 다녀오는 길이었다는 그는 “찬거리를 사러 나가기도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홍씨를 괴롭게 하는 것은 장맛비만은 아니었다. 창문 하나 없는 좁은 방에 습기와 함께 찾아오는 찜통 같은 더위를 참아내는 것도 그에게는 고역이었다. 지하방까지 세를 놓은 다른 건물 복도에는 제습기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 축축한 습기와 쾨쾨한 냄새는 좀처럼 사라지질 않고 있었다.
때문에 그날 만난 쪽방촌 주민 여럿은 복도에서 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을 감수하고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었다. 방에 손바닥만한 창문이라도 달려있으면 다행이지만, 방이 길쪽으로 나 있느냐, 옆건물을 마주하고 있느냐에 따라 이마저도 갈린다고 했다.
주변의 복지관에 선풍기 바람을 쐬러 간다는 주민 김모(80) 씨는 “간밤에 빗소리와 습기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선풍기라도 틀어 놓으면 좀 시원해서 견딜 만할 것 같다. 그런데 10만원은 있어야 좋은 걸 놓을 텐데 가격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이처럼 쪽방촌에서는 문이나 창문을 열어놓는 것이 더위와 습기를 이겨낼 유일한 환기 수단이지만, 밤에는 좀도둑 때문에 그마저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주민 임씨는 “문을 열어 놓고 잠들었다가 3번이나 좀도둑이 들었다”며 “한번은 현금으로 모아둔 30만원을 가져갔다”고 했다. 그는 달마다 50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월세로 20만원을 내는데, 한 달 생활비를 몽땅 도난당한 것이다.
임씨와 대화를 끝내고 쪽방촌 골목을 도는 도중 한 건물의 현관문 앞에 ‘밤 8시 이후에 대문을 닫아 주시기 바랍니다. 요즘 이 동네 좀도둑이 극성을 부립니다’라고 쓰인 안내문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쪽방촌에서는 건물 현관문도 특권처럼 받아들여진다. 현관문 없이 지상에서 바로 복도로 이어지는 건물이 더 많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도난 피해를 당해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조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폐쇄회로(CC)TV가 없어서다. 동자동 쪽방촌을 관할하는 서울역파출소 관계자는 “쪽방촌 안에는 CCTV가 없어 신고가 들어와도 잡을 수가 없다”며 “현금부터 소주병, 담배 같은 사소한 물건까지 훔쳐간다”고 전했다.
서울역쪽방상담소 관계자는 “건물마다 주인이 있기 때문에 에어컨이나 선풍기 설치를 강제하거나 억지로 틀게 하긴 어렵다. 권유 정도는 할 수 있다”며 “서울시에서 쪽방촌에 에어컨 설치를 지원해서, 7~8월 중이라도 가동할 수 있도록 사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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