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시위 '몸살 앓았던 스페인의 놀라운 변화..어떻게 가능했나
'재갈 물리기법' 비판도..표현의 자유 보장 숙제
(마드리드=뉴스1) 박재하 기자 = 2015년 261건, 2018년 149건, 2020년 163건…
스페인에서 발생한 공공기물 파손이나 방화 등의 공공 무질서 행위 발생 현황이다. 5년 만에 약 40%가 감소한 셈이다.
스페인은 한 때 '폭력 시위'의 대명사였다. 시위대가 불을 지르고 공공기물을 파괴하는 장면이 연일 전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하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앞두고 지난 26일(현지시간)부터 진행된 시위는 너무나도 질서 정연하게 이뤄졌다. 시위대와 일상을 즐기는 시민이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지난 2015년 제정된 '시민안전법'이 변화의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과격한 집회와 시위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다소 부러운 대목이다. 특히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도 참고할 만한 사례다.
◇ 스페인 변화의 시작 '시민안전법'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스페인은 청년 실업률이 50%를 뛰어넘는 등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었다. 하지만 정부가 세금을 인상하고 사회공적자금을 삭감하는 대대적인 긴축재정 정책을 펼치자 이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해 전국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수년간 계속됐다.
결국 수년간 이어진 시위에 국정 마비 위기까지 처했던 당시 스페인 집권당은 지난 2015년 "고질적인 폭력시위를 근절하겠다"며 '시민안전법'을 통과시켰다.
시민안전법은 막대한 액수의 벌금을 부과해 집회·시위를 엄격히 통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미신고 집회와 신고된 장소를 벗어난 집회는 벌금 600유로(약 80만원)가 부과된다. 또한 국회나 주요 공공건물 근처 집회에 대해 경찰이 이를 '공공안전에 심대한 위협'을 끼친 것으로 판단하면 3만유로(약 4000만원)의 막대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
경찰이 시위를 진압하는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배포하거나 경찰의 신분증 제시 요구에 불응하는 등 공권력 집행을 방해할 경우에도 3만유로의 벌금에 처해진다. 또한 경찰은 사법적 판단을 받지 않고도 시위대에 벌금을 부과할 권한을 갖게 된다.
실제로 시민안전법 통과 이후 스페인에서는 공공기물 파손이나 방화 등의 공공 무질서 행위가 줄어들었다. 스페인 통계청에 따르면 시민안전법이 통과된 해인 2015년 집계된 공공 무질서 범죄는 총 261건이었지만 그 다음해에는 174건, 2017년 181건, 2018년 149건, 2019년 150건, 2020년 163건이었다.
막대한 벌금으로 당초 신고한 집회·시위 범위에서 벗어나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보기 힘들다. 지난 26일 마드리드 도심에서 열린 대규모 반전 시위에서 수천명의 시위대는 경찰 펜스가 설치되지 않았음에도 행진 내내 신고된 도로로만 이동했다.
이날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던 활동가 소피아(24)는 "인도로 다니는 게 아니라 큰 도로로만 행진해서 시민들 불편은 크지 않을 걸로 보인다"며 "신고된 구역을 벗어나면 벌금을 물어 신고된 장소로만 다니려고 한다"고 말했다.
◇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도 시민안전법으로 폭력시위가 줄고 집회·시위로 인한 시민 불편이 줄어들었지만 집회와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비판도 거세다. '재갈 물리기 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스페인 반전 시민단체 활동가 마누엘 파르도(69)씨는 "무엇이 공공안전에 위협이 되는지는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달려있다"며 "아무리 조심해도 나도 모르게 과도한 벌금을 내야 할 수도 있어 시민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꺼린다"고 말했다.
전직 언론인이자 사회활동가인 스테판 그루에소(49)씨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시위는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강력한 처벌과 벌금 등으로 집회의 자유 자체를 옥죄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시민안전법이 통과될 당시 국제앰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 등의 국제인권단체와 유엔 등의 국제기구도 이를 두고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하지만 스페인 경찰은 '정당한 공무집행을 돕고 폭력시위 근절에 효과적이다'며 시민안전법에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11월 마드리드에서는 수천명의 경찰관들이 국회 앞에 모여 시민안전법 개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당시 이들은 "시민안전법이 사라지면 폭력시위가 판을 친다"며 "경찰과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법이다"고 주장했다.
스페인 시민활동가들은 최근 국내서 활발히 논의되는 집시법 개정에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집회·시위로 인한 무분별한 소음 등의 피해는 막되 표현의 자유는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르도씨는 "시민들이 시위를 통해 정부에 목소리를 내고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도록 광장 같은 공적인 공간에서 하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루에소씨는 "시위는 절박한 시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며 "다만 정당한 요구가 아닌 욕설과 조롱, 소음만이 난무하는 시위는 괴롭힘일 뿐이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법적인 대응이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집회·시위 자유를 보장하면서 타인의 권리도 지켜주는 장치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jaeha6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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