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작가가 되고 싶은 당신에게 하고싶은 이야기

장정일 2022. 7. 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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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엘렌 식수 지음
신해경 옮김
풍월당 펴냄
ⓒ이지영 그림

엘렌 식수의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풍월당, 2022)은 글쓰기 책처럼 보이지만 글쓰기에 필요한 실용적인 조언은 없다. 어쩌다 글쓰기에는 “오랜 수습 기간이 수반”된다는 하나 마나 한 말도 있지만 그런 친절조차 희귀하다. 독자는 이런 불가해한 문장과 마주쳐야 하죠. “글쓰기를 시작하려면 죽음이 있어야 합니다.” 알제리에서 태어난 유대계 프랑스인 엘렌 식수는 그와 똑같이 알제리에서 태어난 또 한 사람의 유대계 프랑스인 자크 데리다와 함께 탈구조주의 비평을 구상했고, 평생 동안 그와 교유하며 공동으로 글을 쓰기도 했다. 페미니스트 이론가인 지은이는 남성 중심적 언어체계와 사고체계를 전복하는 여성적 글쓰기 이론으로도 유명하다.

지은이는 자신에게 영향을 주고 모범이 된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 책을 가득 채웠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마리나 츠베타예바, 잉에보르크 바흐만, 토마스 베른하르트, 프란츠 카프카, 장 주네. 이들의 특성은 다음과 같죠. 스스로 불결해지기, 이 세계에서 나오기, 낮아지기(몰락하기), 다른 곳으로 가기, 상투성 벗어나기, ‘남(男) 성경(성경의 기자들이 모두 남성이라는 뜻)’과 싸우기, 국경 넘나들기, 자연(=초자연)을 부각하기, 동물로 변하기, 남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거부하거나 남자와 여자 사이를 오가기 등등. 이제 “글쓰기를 시작하려면 죽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이해되죠. 어떤 작가는 작게 죽고 어떤 작가는 크게 죽는다.

글쓰기를 가르쳐준다고 해놓고서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에 대한 존경으로 일관했으니 독자를 기만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작가가 되려면 두 가지 것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첫째, 꼭 하고 싶은 말. 둘째, 좋아하는 작가. 한 가지만 있으면 되지, 두 가지 모두 갖출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만 있어야 한다면 단연 후자라는 것이다. 꼭 하고픈 말이 있어서 작가가 되기보다, 작가가 되고 나서 꼭 하고픈 말을 찾아간 작가들이 많기 때문이다(한 작가의 작품 세계가 전기·중기·후기로 나뉘는 것이야말로 그가 하고픈 말을 찾아갔던 증거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하고픈 말이라기보다, 좋아하는 작가의 유무죠. 지은이의 말로 대신하자면, “인생을 바꿀 책”을 만났던 사람이 저자가 된다.

나에게 벼락을 내린 작가 혹은 내가 닮고 싶은 작가를 발견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작가가 될 확률이 높은 것은 딱히 글쓰기의 세계에서만 가진 특징이 아니다. 대중 연예계에서든 스포츠계에서든 입문 과정에는 항상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 시절부터 따라하고픈 모델이 있죠. 그런데 1993년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은 대중 연예계나 스포츠계에서와 달리 흑인 청소년은 글쓰기의 모범이 되는 작가를 발견하는 것이 원천 차단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를 테면 엘렌 식수는 자신의 글쓰기 모범을 백인 작가들에게서 찾아낼 수 있었지만, 흑인 작가 지망생에게는 그런 자연스러운 선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김훈이나 당신이나 “오로지 실천뿐”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엘렌 식수 지음신해경 옮김풍월당 펴냄

자신의 글쓰기 경험을 기록한 〈보이지 않는 잉크〉(바다출판사, 2021)에서 토니 모리슨은 “정전(正典)을 구축하는 행위는 제국을 구축하는 행위다. 정전을 방어하는 행위는 민족을 수호하는 행위다”라면서, 미국 문학에서 정전은 항상 백인 남성 작가들이 차지했으며, 흑인 작가의 작품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과목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문학에서 서구의 유럽 중심적 태도가 ‘보편’일뿐더러 ‘인종과 상관없다’고 옹호하는 행위”가 흑인 작가 지망생들의 문학적 전두엽을 절제해왔다고 고백한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에세이 가운데 가장 긴 두 편은 정전으로 추앙받는 미국 문학작품 속 흑인성(blackness)이 어떻게 구축되어 있는지 밝히고 있어서 흥미롭다. 에드거 앨런 포, 너새니얼 호손, 마크 트웨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F. 스콧 피츠제럴드, T. S. 엘리엇, 윌리엄 포크너 등 쟁쟁한 백인 작가의 작품은 흑인을 위해 쓰인 작품이 아닌데도 미국 사회의 타자인 흑인의 그림자가 맴돌고 있다. 허먼 멜빌의 〈백경〉이 무엇에 대한 우화인가를 놓고 온갖 의견이 나왔는데, 지은이는 노예폐지론자였던 멜빌이 자연의 절대악으로서 백인성(whiteness)을 흰고래로 나타냈다고 보죠.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과 〈보이지 않는 잉크〉가 글쓰기에 실제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유명 대학에서 글쓰기 강좌를 열었던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나의 단어로〉(마티, 2022)는 도움이 될까. 지은이 또한 그럴 생각이 없죠. 대학은 물론 크고 작은 글쓰기 교실에서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창의적 글쓰기 101가지 비법’ 유의 기초적인 조언을 학생들에게 해왔지만, 부사와 느낌표는 최소한 적게 쓰라거나 말줄임표도 마찬가지라는 등의 허다한 규칙은 오히려 창의력에 금기를 설정할 뿐이라고 한다. 작가 지망생에게 경험한 것만 쓰라는 주문도 그렇다. 저 주문은 연쇄살인마가 나오는 소설을 쓰려는 작가 지망생을 교도소로 인도한다.

대니 샤피로 역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작가가 되겠다면서 이제껏 독서량이 많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하다. 책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서 자양분과 영감을 얻지? 어떤 학생들은 자기 글쓰기에만 집중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읽을 시간이 없다고. 아니면 독감에 걸리듯 다른 작가들의 목소리에 휘둘릴까 봐, 영향받을까 봐 두렵다고.” 한국의 어느 문학잡지에서 이런 설문을 했죠. “당신은 어느 때에 글을 씁니까?”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고서”였다. 글쓰기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는 백지에 쓰는 것이 아니다. 모든 저자들은 누군가의 글이 쓰인 양피지(palimpsest)를 깎아내고 그 위에 글을 쓴다. 내가 쓴 글 밑에 덜 깎인 필체가 드러나는 것을 영향이라고도 하고 표절이라고도 하죠. 어느 쪽이든 우리는 누군가가 펼쳐놓았던 사유 위에서 사유한다. “잘 쓴 산문은 그 자체로 영향이다.”

지은이에게 글쓰기의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되기 위한 열망과 계속 작가로 살기 위한 자세다. 글쓰기에 필요한 인준은 외부(등단!)가 아니라 스스로 내리는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초상을 내 책상 앞에 붙이는 것, 혹은 머리카락을 모두 자르는 것, 아니면 글을 쓰기 위한 노트를 장만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는 것. 이런 사소한 의례를 마쳤다면, 글쓰기 교실을 기웃거릴 게 아니라 “오로지 실천뿐이다”. 김훈이나 이제 막 글을 쓰기 위한 의례를 마친 당신이나 글이 되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기는 마찬가지죠.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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