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아무도 안 믿을 군산 '홍집' 이야기

박찬일 2022. 7. 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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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밥 먹다가 울컥'] 매화 두 송이 핀 '홍집'의 여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 인사를 건넨 뒤엔 입구에 나란히 놓인 아이스박스를 열어 시린 얼음더미에서 잘 '칠링'이 된 술을 집어 드는 게 순서다.
‘홍집’의 아짐은 원래 주인인 ‘각시’를 기다리며 군산 신영시장에서 40년 넘게 장사를 하고 있다. ⓒ최갑수 사진작가

두괄식으로 써야 한다. 이런 설화는. 어차피 아무도 안 믿을 것이니까. 아, 요즘 유행하는 기묘한 이야기다. 군산 앞바다 째보선창(죽성포)에 항공모함이 들어온다는 건 믿어도 이 말을 누가 믿겠는가.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 각시를 기다리고 있는 건가요?”

“그런 것이제.”

“그럼 각시가 돌아온다면 이 가게를 돌려준다는 말씀인가요?”

“그런 것이제.”

“장사는 아주머니가 지금까지 하셨잖아요. 권리관계를 따져볼 때 가게를 넘겨줘야 할 의무가 있을까 모르겠습니다만.”

“오면 줘야제.”

그러고 끝이다. 마치 가게를 잠시 맡게 된 40년 전 어느 날 같은 표정과 말투다. ‘홍집’ 아주머니의 태연한 대꾸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막걸리 잔을 들었다.

술을 마시면 안주를 내주는 오래된 술집의 관행이 요즘 화제다. 통영의 ‘다찌’, 마산의 통술, 진주의 실비 같은 곳이다. 군산의 ‘홍집’도 그중 하나다. 대원칙은 이렇다. 술을 마시면 안주를 준다. 술 주문이 거듭되면 또 안주를 낸다. 더 줄 게 없으면 과일을 깎아 낸다. ‘더 없으니 술자리를 마치시오’라는 신호다. 요즘은 관광객이 몰리고 인건비며 재료비가 올라서 상에 미리 값을 매겨두는 방식으로 형식이 바뀌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실비 집에는 술 주문을 ‘카운트’하고 안주를 내는 옛 방식이 살아 있다.

군산 시내에 가면 신영시장이라고 있다. 지방도시는 어디든 한잔하고 싶으면 여러 고려를 할 필요 없다. 그냥 중앙시장으로 가면 해결된다. 거기에 국밥도, 안주도 다 있다. 군산도 중앙시장이 있는데, 원래 술집들이 몰려 있던 째보선창에 붙어 있는 시장은 중앙시장이 아니라 신영시장이다. 그 아래에는 공설시장도 있다. 나야 외지인이니 시장의 연혁은 모르고, 째보선창에 가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몇 생선 파는 가게를 걸터듬거나 아니면 신영시장 ‘홍집’으로 간다. 아주머니는 오면 오나 보다, 가면 가나 보다 하시지 표 나게 반색하는 법이 없다. 몇 번 와서 얼굴이 익으면 살짝 웃는다. 또 와서 반갑기는 한 표정인데 금세 얼굴이 어두워진다.

“줄 것이 없어서. 날 더울 때 오면 더 없어. 바다에 뭐 없어서 그래. 추울 때 오면 먹을 게 있긴 한데.” ‘홍집’ 안주는 주는 듯 마는 듯 툭툭 나온다. 생선이 물릴라치면 고기가 나오고 달걀말이로 기름진 맛을 보고 나면 선어가 담백하게 나온다. 홍어회로 톡 쏜 뒤엔 반듯한 회가 석 점 지나가는데 그다음은 소라와 처음 보는 노랑조개 한 접시다. 다시 얼큰한 것이 아쉬울 즈음엔 ‘자랭이’라고 하는 병어 새끼나 싱싱한 고등어가 조려져 나오고 철에 따라 준치회도 식탁에 오른다. 노상 박대구이는 빠지지 않으며 간재미찌개와 묵은지로 밥 생각 나게 했다가 오징어전, 부추전 그리고 다시 병어회를 꼬숩게 썰어 낸다. 그러면서도 항상 뭐 없다 하신다. 어제 연속극 보느라고 공부 하나도 못했다는 전교 일등이 만점 받는 소리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이 아짐의 입에서 ‘차린 게 많아서 오늘은 아주 좋소’ 하는 말이 나올 리가 없는 것이다.

가게를 마감할 즈음엔 아저씨가 오신다. 칠순 부부인데 여전히 정정하다. 아저씨는 인근에서 ‘국제이용원’을 운영하는 이발사다. 조금 일찍 가서 그 집에서 머리를 깎고, ‘홍집’에서 ‘차린 거 없는’ 상을 받으면 된다. 매화 두 송이 핀 ‘홍집’의 여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 인사를 건넨 뒤엔 입구에 나란히 놓인 아이스박스를 열어 시린 얼음더미에서 잘 ‘칠링’이 된 술을 집어 드는 게 순서다.

차린 안주에 비해 늘 저렴한 청구서

‘홍집’의 안주상. 생선이 물릴라치면 고기가 나오고 달걀말이로 기름진 맛을 보고 나면 선어가 담백하게 나온다.ⓒ최갑수 사진작가

이 집은 실비집이지만 관례대로 병 수에 맞춰 돈을 받는가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원래 다찌니 실비니 하는 집들이 타산을 맞추려면 인원수 넷을 기준으로 값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한 상 차리는 수고에 맞게 술을 마실 것이기 때문이다. ‘홍집’은 그런 것도 없다. 두 명이 가도 말없이 받아주되 안쓰러운 소리를 듣는 게 고작이다. 차린 게 없다지만 두 명이 다 먹기에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게다가 술 마시는 속도며 뱃구레 양 봐가며 아짐이 차린 안주를 맛보고 가게를 나갈 때는 늘 기대(?)에 못 미치는 청구서를 받게 된다.

“이렇게 받아서 장사 하시겠어요?”

“별게 없어서 미안하구만.” ‘홍집’은 40년이 넘었다. 찌개 냄비를 받다가, 회를 집어 먹다가 아짐이 가게를 하게 된 이야기를 한마디씩 얻어들었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의 압축은 이렇다.

아짐은 원래 이 시장 한구석에서 작은 잡화점을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술집 하던 어느 각시가 친정 상을 당해서 급히 대전엘 가게 됐다. 대신 그 술집을 맡아주었는데, 기왕 맡은 가게이니 성심껏 운영했다. 초상 기간이 끝나고 삼우제가 지나도 각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갔다. 오겠지, 오겠지 하던 사이에 광주항쟁이 나고 전두환이 집권하고 전두환 친구 노태우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3당 합당을 해서 김영삼이 하나회를 자르고 그러다가 IMF 외환위기를 겪고 김대중이 대통령 하고 월드컵도 하고 윤석열이 대통령이 됐다. 각시는 오지 않았다.

“가게는 한 번 옮겼제.”

상호도 없던 무허가 가게였는데, 세무서에 등록을 해야 해서 가게 이름을 뭘로 지을까 고민하다 ‘홍집’이 되었다.

“각시 남자 성이 홍씨여.” 언젠가 각시가 자기 가게를 찾아서 올지도 모른다.

“각시 기다리다가 사십 년이 넘었네, 넘의 가게를 맡았으니 비우지도 못하고 지키다가 늙어버렸어… 가게는 한 번 옮겨서 이 자리는 내 것이니 줄 수 없을 거고. 홍집이란 이름은 줘야제.”

이 가게는 어떤 단골도 열렬한 환대를 받지 못한다. 아마도 평생 ‘넘’의 가게를 맡아서 하는 것이라 그랬을까.

기묘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안주 맛도 기묘하게 맛있다. 차라리 ‘홍집’의 내력이 아짐의 농담이면 좋겠다 생각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믿을 시대를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진짜 믿었어?”

아짐이 이렇게 되물을까 봐 이야기가 진짜냐고 자꾸 재촉을 못했다. 이번에 가서 해볼 작정이다. 여러분이 먼저 가서 물어보셔도 된다.

박찬일 (셰프)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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